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0. 노키즈존을 찬성하신다고요?

생각하다육아

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0. 노키즈존을 찬성하신다고요?

Ah

정바당은 제주 출신이다. 그러니까, 정바당은 내가 병가 끝에 결국 퇴사를 하고 앞으로의 삶을 도모해보리라 굳은 결심을 하며 단기이주를 떠났던 제주도에서 생긴 아이다. ‘바당’은 제주말로 ‘바다’라는 뜻이다. 남편과 나는 그 시절에 매일매일 바다를 봤다. 기분 내키는대로 아무 바다나 가서 피크닉 매트를 펼치고 그 위에 누워 뒹굴거리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셀카와 바다와 구름사진을 이백장씩 찍었다. 그 좋은 시절을 알아차린 정바당이 늘 기특했다. 덕분에 제주는 더욱 각별해졌고 정바당과의 첫 여행지도 당연히 제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나는 일찌감치 에버노트에 ‘정바당, 제주에 가다!’라는 폴더를 만들어놓았다. 아이와 비행기를 탈 때 준비하면 좋은 것들, 조식에 아이 이유식을 만들어주는 숙소, 아기 의자가 구비되어있는 식당 리스트 등등의 내용을 야금야금 쌓아뒀다. 언제일진 모르지만 우리 세 식구가 제주에 가서 그 시절처럼 제주 바다에 누워 히히덕대고 사진을 찍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노키즈존

얼마전 그날도 ‘아이’와 ‘제주’라는 단어가 들어간 트윗들이 얼핏 보이길래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제주에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들이었다. 노키즈존 경험담(?)과 노키즈존이 아니더라도 식당이나 카페에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받았던 무언의 압박과 매서운 시선들, 무개념 부모가 되지 않으려 스스로를 검열하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참담한 마음들로 읽으면서도 동시에 내가 노키즈존을 찬성하거나 자신의 영업장을 노키즈존으로 지정하겠다는 이들에게 과연 무얼 요구할 수 있는 건지, 내게 그런 자격이라는 게 있는 건지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러다 즐겨보는 웹툰 작가님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 외식을 나가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체하지 않은 날을 꼽는게 어려울 정도지만 그래도 열심히 나갔다고. 왜냐하면 아이도 사람이니까. 아이에게도 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문장들을 읽는데 모든 게 분명해졌다. 이건 내가 누군가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부탁하거나 그들의 마음이 바뀌기를 조용히 기다릴 문제도 아니었다. 차별의 문제였다. 게다가 이건 너무 익숙한 방식 아닌가.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걸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듯이 아이들도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차별

자영업자들이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업장을 노키즈존으로 지정한 건 아이들과 무개념 부모로 인해 입은 명확한 피해가 있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사실일 것이다. 남편도 자영업자이고 우리 업장은 특성상 아기와 보호자들이 매우 많이 오는 곳이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스트레스 받게 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가 아기들을 위해 따로 비치해둔 유아용 물티슈를 통째로 들고 사라진다. 아이가 바닥에 토한 걸 치우는 시늉이라도 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 사실 자체를 알리지도 않고 그냥 가버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반말을 하고 찾는 물건이 뒤편 진열대에 있다고 가리키면 왜 직접 꺼내주지 않냐고 기분이 나쁘다고 짜증을 내고 계산대 앞에 진열된 천원, 이천원 하는 물건들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뒷 문장의 주인공들은 모두 성인이다.

하지만 ‘명백한 피해’는 아이와 그 아이들의 부모로부터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공공장소에서 경험했던 불쾌감의 원인 중 8할은 특정 연령대의 특정 성별이다. 지하철에서 이어폰도 꽂지 않고 최대음량으로 야구 중계를 봐서 전 승객을 강제 관람 시키고 내 발을 밟고도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던 사람들. 공중도덕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무례한 사람들이야 어디에나 있다. 내가 만약 가게를 연다면 이런 경험적 데이터에 근거해 출입금지를 시켜야 할 타깃은 명확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째서 아이와 아이를 동반한 부모(주로 엄마)에게만 이렇게 가혹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걸까. 몇날 며칠을 생각해봤지만 답은 딱 하나다. 약자이니까. 아동을 출입금지 시켜도 그들은 항의할 수 없고 그저 "아, 그래요?"하고 돌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노키즈존은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어떤 이들에게 아기 동반 손님은 달가운 존재가 아닐 것이다. 특히나 ‘분위기’를 파는 장소들에 모이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겠지. 그런데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내 기준에 부합할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 편하고 좋은 이들만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게 아니다. 그게 불만족스럽고 때론 불편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 기준 미달이면 그냥 배제하겠다는,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겠다는, 그들끼리 모여있는 곳으로 격리시키는 게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좋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 태도가 나는 정말로 무섭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운데 그 마음을 투명하게 드러내다니 정말 무섭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얘기해도 될까. 몇몇 이상한 남자들이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고 자꾸만 무개념으로 굴어서 내가 피해가 막대한데 아예 이 세상을 노 맨 존으로 만들면 어떨까!

고립된 육아

이 모든 일들이 아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거라는 생각을 한다. 육아의 경험이 너무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랄까. 다른 경험들도 그렇지만 사실 육아만큼 직접 해보거나 근거리에서 관찰하지 않는 이상 그 실체와 노동의 강도, 그리고 유아의 특성을 알기 어려운 일도 없다. 거의 모든 종류의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본인이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더 이상 아이를, 아이 키우는 과정을 볼일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유아동의 특성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그렇게 생긴 몰이해를 바탕으로 혐오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런 와중에 미디어에서는 제대로 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아이들의 특정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티비만 틀면 연예인의 아기들이 나오는 시절이 된 지 꽤 오래지만 한결같이 ‘아이답게’ 잘 웃고 애교를 피우고 어른들 말을 잘 듣고 뽀뽀를 해주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어른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칭찬을 받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감정이 있고 각각의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러 면에서 서툴다. 자신의 목소리 톤을 조절하는 방법 자체를 잘 모르고 식탁이나 바닥에 흘리지 않고 음식을 먹는 방법을 모른다.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우리가 모두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아이들은 고군분투하며 익힌다. 또한 아동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교육의 대상이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우려면 첫째, 아이가 공공장소에 있어야 하고 둘째, 그 곳에서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공공장소에서의 식사예절을 공공장소가 아니면 어디서 가르치란 말인가. 그 과정은 보고 싶지 않으니 알아서들 해결하라는 건가. 정말 그런거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안되면 무조건 드러눕고 울며불며 땡깡을 피우는 만 0세 정바당과 다를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세상을 누릴 자격을 앗아가지 않도록

그러니까, 아이를 예뻐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를 보고 웃고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일부라는 걸, 이 세상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잊지 말라는 얘기다. 아이들은 아직 자라나는 중이며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걸 모두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이 사회의 건강한 시민이라면 자신과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불편하다고 성가시다고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의 어떤 부분들은 아이들 혹은 양육자의 문제라기보다 그 시기의 인간이 갖는 자연적인 특성이다. 그러니 그 시기를 통과해 인간세계에 연착륙한 대선배로서 한창 그 혼돈의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같은 종으로서의 연민을 품고 무사히 해낼 수 있을거라는 응원 정도는 보내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정바당을 키우면서 그 전에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태어났으면서 마치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는 듯이 살고 있다는 거다. 모두들 까맣게 잊는 것 같다. 태어난 일 같은 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달까. 그러니 아이의 마음이나 입장이라는 것을 헤아리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우리는 모두 태어났다. 처음부터 이렇게 숟가락을 입에 정확하게 넣을 수 있었던 게 아니고 혼자서 화장실로 가 용변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게 아니고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 물건을 허락없이 만지면 안된다는 걸 알았던 게 아니다. 그랬던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났던 우리가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가 되돌려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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