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개념맘과 맘충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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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개념맘과 맘충 사이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싱글 시절 얘기를 좀 해보자면, 나는 개념녀였다. 언젠가 타임라인을 휩쓸었던 그 해시태그처럼 꼭 그랬다. 게다가 나는 대부분의 그룹에서 명예남성이라는 작위를 받는 쪽이었다.내 머리가 숏컷이고,, 담배를 피우고, 힐보다는 운동화와 로퍼를 즐겨 신고, 결혼 전에 꼭 취업을 하고 싶어했고, 소위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리본이나 레이스같은 장식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함께 딸려오는 ‘외모와는 다르게 털털하다’, ‘## 출신 같지 않다.’ 같은 평판이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여성스럽다’는 수식어는 거추장스럽고 어떤 상황에서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는 아니었으니까.

개념맘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기혼 유자녀 여성이 되고도 나는 한동안 개념맘이라는 판타지에 빠져있었다. ‘맘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게 명백한 혐오이며 약자인 여성을 타깃으로 한 악질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내가 ‘맘충’이 되지 않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여튼 나는 아닐거라고 믿었던 거다. 

정바당이 7개월 때 쯤 처음으로 아이와 단 둘이서 카페에 갔었다. 그 전에도 유모차에 태워서 테이크 아웃은 여러 번 해 봤지만 이번에는 아이와 정말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거다. 목적지는 스타벅스였다. 집 앞 카페는 테이블 간격이 너무 가까웠고 유모차를 놓을 곳도 마땅치 않아보였다. 스타벅스에는 제대로 된 아기의자가 있고 매장도 넓으니 여러모로 눈치가 덜 보이겠거니 했다. 도착해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스탭에게 아기 의자를 문의했다. 그런데, 이미 다른 테이블에서 사용중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기의자가 없을 때를 대비한 다른 계획이 없어서 좀 난감했지만 간식이며 장난감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나온 게 억울해서 그냥 돌아가긴 싫었다. 대신 약간 낮은 소파처럼 생긴 자리로 옮겨 앉았다. 정바당이 제법 잘 앉아있으니 아이를 유리창과 닿아있는 안쪽 소파에 앉히고 바깥 쪽에는 내가 앉고 아이 앞에 있는 테이블을 최대한 당겨서 소파와 테이블 사이에 틈이 없도록 했다. 아이가 떨어질 염려도 없고 테이블 위에 간식이랑 물이랑 장난감을 올려놓으니 꽤 괜찮았다. 새로운 풍경이 신기한 듯 아이도 유리창으로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차를 보며 웃고 옹알이를 했다. 나도 덕분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기분을 냈다. 아이도 간식을 먹었다. 간식은 찐 고구마를 으깨어 아기치즈와 섞은 후 동그랗게 빚은 고구마경단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거라 신이 난 정바당은 웃으면서 하나씩 기분좋게 집어먹었다.

아이의 손과 입, 옷은 으깬 고구마로 금방 끈적끈적 해졌다. 그 손으로 유리창을 두드리고 테이블을 만지고 패브릭 소파를 짚었고 나는 건티슈로는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는 아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을 3초에 한 번씩 닦고 또 닦아야 했다. 내가 입에 넣어주고 싶었지만 아이는 한창 자신이 집어서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서 방법이 없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고구마경단을 다 먹은 후로도 잘게 잘라온 사과와 과자를 조금 먹고 동요가 나오는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사십 분 정도가 지나자 아이는 슬슬 짜증이 나는지 몸을 비틀기 시작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짐을 챙기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웠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를 정리했다. 마치 여기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던 것처럼, 특히 아이와 아이 엄마가 앉았을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들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쭈그려 앉아 아이와 내가 앉았던 자리의 바닥을 열심히 닦다가 문득, 내가 이전에도 카페에서 나갈 때마다 테이블 위를, 소파를, 심지어 바닥을 물티슈로 닦던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카페에 있는 동안 나는 계속 누군가를 의식했다. 아이가 소파 등받이를 잡고 일어섰을 때, 유리창에 얼굴을 비비적 댔을 때, 테이블을 양 손으로 두드리며 소리를 내어 웃었을 때. 나는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맘충이 될까봐, 아이와 내가 손가락질 당할까봐. 누군가 저거 보라고, 요즘 애들이며 엄마들이며 진짜 짜증난다고, 왜 밖에 나와서 저러고 있냐고 혹시 자신의 일행들에게 나와 아이를 두고 뭐라 하고 있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열심히 물티슈로 걸레질을 하다가 갑자기 좀 울고 싶어졌다. 내가 왜, 어째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부단히 애써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누구에게 뭘 인정받기 위해서. 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나는 그냥카페에서 아이와 간식을 좀 나눠 먹고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개념녀

싱글일 때 내가 개념녀를 선택했던 것은 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있기는 있었지. 된장녀나 김치녀. 그걸 선택지에 포함시켜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내가 공식적으로 누군가의 여자가 되자 오히려 그 프레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단 느낌이 있었다. 나는 더이상 누군가의 성적 대상이 아니었고 그러자 아예 ‘기혼여성’ 혹은 ‘아줌마’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면서 개념녀/된장녀 분류에서마저 열외가 된 것 같았다. 그게 어색하고 기분 나쁘면서도 시간이 조금 흐르자 어떤 면에선 편안하단 걸 알게 됐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자 다시 새로운 선택지들이 내 앞에 놓인 것이다. 내가 오만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니. 나는 개념맘이거나 맘충이어야 했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맘충’논리를 체화한 엄마들이다. 여성이 너무나 쉽게 여성혐오를 하듯이 유자녀 여성이 다른 유자녀 여성을 혐오하기는 너무도 손쉬워 보인다. 당장 노키즈존이나 맘충에 대한 문제만 해도 실제로 그런 말이 나오게끔 하는 ‘엄마들’이 있고 그래서 나를 비롯한 괜찮은 엄마와 아이들까지 피해를 본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여지없이 슬프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우린 어쩌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애초에 그런 기준은 없었어야 하는 건지도 몰라요. 그런 말들이 목구멍을 맴돈다.

아이를 갓 낳고 하루에 8번씩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안고 달래고 씻기고 재우는 게 전부인 일상에 편입되었을 때 나는 모르는 별에 외따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연재 첫 화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정말로 간절히 어딘가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이 있기만을 바랐다. 그런 목소리를 찾고 또 찾았었다. 공식적인 매체들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게 큰 고립감을 줬었다. 하지만 일년 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최근에는 기사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장르로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이 이슈를 다루는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늘어나고 그녀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반갑고 힘이 될 때가 있다.

우리는 증명할 필요가 없는데

하지만 자신의 엄마 된 경험을 이야기할 때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엄마’들과 구분해가며 자신을 증명하려는 시도들을 볼 때면 안쓰럽기도 하고 힘이 좀 빠지기도 했다. 혹시 나도 이 글을 쓰면서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강요되어 온 모성애나 엄마의 역할, 자격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임을 안다. 나 역시 그랬고 여전히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해 개념맘이 되려 노력하고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자아’를 잃지 않고 아이가 전부만은 아닌 ‘쿨맘’이 되려는 시도들을 볼 때면 우리가 대체 왜 그래야 하는걸까, 궁금해진다. (다른 엄마들은 초음파를 보며 심장소리를 듣고 눈물이 났다던데, 모유수유 한다던데, 태명을 붙이고 태담을 한다던데, 이유식을 다 해서 먹인다던데) “나는 안 그랬는데요!” 하는 서사를 볼 때면 ‘쿨걸 판타지’가 떠오른다. 섹스와 함께 사랑과 결혼을 원하는 성녀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창녀 모두 거추장스러워진 이들이 오로지 섹스 그 자체만을 원하는 ‘쿨걸’이라는 새로운 이상형을 만들어냈듯이. ‘쿨맘’도 하나의 판타지는 아닐까. 아이를 사랑하되 ‘자신을 잃을 정도로’ 모든 것을 헌신해서는 안 되며, 그 사랑을 표현하는데 유난해서도 안 되며, SNS 계정에 아이 사진밖에 올릴 게 없는 ‘자기 인생 없는’ 엄마가 되어서도 안되고, 자기를 가꾸는데 소홀하지 않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새로운 금기들. 개념차고 거기에 쿨하기까지 한 엄마여야 한다는 기준점들. 그것은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애초에 그런 분할선을 그은 자들은 누구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에게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요즘 가장 많이 되뇌이는 말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녀”가 되지 않기 위해 혹은 “##녀”가 되기 위해 애를 썼던 흑역사를 또 다시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여전히 숏컷 머리를 하고 있지만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정바당이 차지한 지 오래고, 여전히 아이에게 말을 걸 때 나 스스로를 ‘엄마’라고 칭하는 게 어색하지만 태담은 열심히 했었고, 아이의 삼 시 세끼 차리는 걸 좋아하지만 한 번씩은 이걸 대체 언제까지 해야하나 싶어 앞이 캄캄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나이고 나는 “##맘”도 아니며 “&&맘”도 아니다. 아니, 내가 바로 “##맘”이며 동시에 “&&맘”이다! 이렇게 선전포고까지 했으니 이쯤이면 알아주기에 충분할까. 개념맘과 맘충 그 사이에, 많은 여성들이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인 인상으로 만들어진 몇 가지 단어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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