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본다 7. 엄마는 페미니스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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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다 7. 엄마는 페미니스트 (하)

Ah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편집자주: 이 글은 <엄마 본다 6. 엄마는 페미니스트(상)>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걱정이 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두 권의 책,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대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하는 법>, 이 올려진 책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정바당은 이제 곧 만 두 살이 된다.) 두 권의 책은 제목에 나와있듯이, “성”을 주제로 한 육아서였고 어떤 면에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던 ‘자기계발서’같은 인상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들을 보면서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남자아이에게 하는 페미니즘 교육이란 결국 성교육인걸까? 아직까지도 의문이 다 풀리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자아이가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는 동안 양육자 ㅡ특히나 페미니스트 양육자ㅡ 에게 가장 크고 어렵게 다가올 이슈는 “성교육”내지는 '아이에게 어떻게 건강한 ‘성 의식’을 길러줄 수 있을까’ 문제일 것 같다는 데까지는 정리가 되었다. ‘아이가 크면서일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은 결국 여성 양육자와 남자 아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젠더권력 때문이고 그 차이로 발생하는 가장 문제적인 상황은 바로 ‘성폭력’이니 말이다.

"남자아이"를 기른다는 것

시간이 갈수록 ‘양육자’와 ‘페미니스트로'서의 내적갈등이 더욱 첨예해질거라 생각하는 건 내가 “남아”를 기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육자가 늘 아동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성인이라는 점을 인지하라고 권한다. 사실 지금처럼 아이가 어릴 때야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아들을 키우는 여성 양육자에게는 어떤 시점부터 이 당연한 명제에 균열이 생긴다. 아들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유독 엄마를 우습게 보고 아무리 말을 해도 전혀 듣지 않는다는 고민이 쏟아진다. 물리적 대치 상황이라도 벌어지는 순간에는 어차피 물리력이 역전당한 지 오래이기 때문에 최대한 이 점을(그러니까 양육자가 약자라는 것)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들이 엄마들 사이에서 팁으로 통용된다. 말 그대로 아이가 '성별 권력'으로 양육자를 찍어 누르는 날이 오는 것이다.

'기를 죽여놓지 않으면'?

임신 중에 아이의 성별을 확인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보고 들은 다양한 사례를얘기 해주었다. 내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그럴 땐 어쨌든 아이를 때리거나 그에 준하는 물리력을 과시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덧붙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평소에 전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째서 나에게 아동학대범이 되라고,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쨌든 현실에서는 그런 것이 ‘아들 훈육법'으로 통용된다. ‘기를 죽여놔야 한다.’ , ‘그 때 때려서 이기지 못하면 영원히 못 이긴다.’ 같은 말들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내가 고민스러운 부분은 이런 것이다. 나에게 그 일들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떤 순간에든 아이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양육자의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아이의 그런 행동이 결국 젠더권력을 기반으로 한 폭력적인 행동이라는 걸 지적하고 그 문제를 ‘여성주의적으로 올바른 방향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직 머나먼 일이지만 이렇게 쓰기만 하는 것으로도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같아서 머리가 아파온다.)

그러니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어떤 언어로 어떤 때에 어떻게 설명하고 보여줘야 하는지 말이다. 유아동/청소년에 대한 페미니즘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막 이야기되고 있는 주제다. 첫 발을 뗐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선례가 전무한 상황에서 어떤 사례를 참고해야 할지, 누구와 이런 고민을 나누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또, 양육은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하지 않고 어떤 훌륭한 시도가 있다 한들 특정한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특수성도 있다. 모든 양육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이다.

남자를 다루는 남자만의 룰은 없다

두 권의 책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페미니즘적인 양육을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확실히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만하다. 물론 육아의 모든 단계별 미션에 관한 이야기들은 바로 내 눈앞에 닥친 상황이어야 스펀지처럼 흡수되기 때문에 비교적 좀 거리를 둔 채로 읽었지만 언젠가는 내게 바이블같은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읽어나갔다. '나도 나중에 이렇게 해봐야지', '이런 단어를 사용해야지’ 메모도 해두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성교육’을 해야할 시기는 아니다보니 좀 한갓진 마음이었달까. 

다만 성교육은 2차 성징이 나타나는 특정 시기에만 하면 된다는 건 내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개념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려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다. 타인의 신체에 대해 언급하고 판단하고 마음대로 신체적 접촉을 일삼지 않게 하기 위해 유아기부터 아주 사소한 스킨십이라도 아이에게 동의를 구하고,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드러내야 할 때 양해를 표하는 방식들이 유효할 수 있다는 부분은 새로웠다. 또, 엄마가 아들 성교육을 하면 한계가 있을 거라는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이거야말로 뭔가 '남자의 성'을 다루는 ‘남자들만의 룰’이 있다는 빻은 생각은 아니었는지 깊게 반성했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여자들의 입장과 여자들의 감정에 대해 더 많이 들어야 한다. 성교육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얼마 전 초등학생 남아들이 유튜브를 비롯한 사이트에 “엄마 몰카”, “선생님 몰카”를 올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끔찍했다. 정말로 너무 끔찍했다. 이 사회에서 남자들이 드러내는 여성혐오는 날이 갈수록 하한선을 경신한다. 이런 일들을 목격할 때마다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무력함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아이들이 벌인 일에 대해 ‘끔찍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 어른이기에,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아마 어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일 것이다. ‘양육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내가 서 있는 쪽은 이 쪽이다. 나 역시도 이 모순된 감정들과 갈등들을 내가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난 2월 초중고교의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대해 청와대는 “인권 및 성평등 요소를 정밀 분석하는 등 통합적 인권교육의 내용부터 체계화해 선생님들을 위한 교수, 학습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교육부 예산 중 12억 원이 여기에 쓰일 것이라고 한다. 다만 ‘여성’ 뿐 아니라 ‘종교’, ‘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에 대해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와 인권 문제를 바탕으로 접근하겠다는 답변에서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고 싶다. 

아이의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만 자라면서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메시지들을 습득하고 그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사회화’를 거치게 된다. 그 시점이 되면 부모가 개입할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미디어와 또래 집단 문화의 영향력이 커진다. ‘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교정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최소한의 암묵적 합의마저 무너진 현실에서 최후의 보루 역할 정도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육자 개인이 올바른 성관념을 가르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결국 한 사회에서 ‘표준’으로 취급받는 것이 무엇인지가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부모들이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보다도 페미니즘 교육이 의무화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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