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본다 9. 어린이책 읽는 법

생각하다육아

엄마, 본다 9. 어린이책 읽는 법

Ah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대부분의 근로노동자가 업무 지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연차, 업무의 진행상황 등에 따라 하루 일과가 조금씩 달라지듯이 주양육자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매일 열심히 자라고 그에 따라 나의 일과도 조금씩 바뀐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업무는 '책 읽어주기’다. 새벽수유와 수면교육 등 지난날을 지배했던 과제들을 떠올려보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그래도 낭만적인 일이다. (물론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은 나의 책 읽어주기 현장과는 다를 것이다. 매일 똑같은 그림책들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 시간 가까이 읽어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미처 몰랐던 동화의 세계

그러니까 요즘의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은 소설도 에세이도 교양서도 아니고 바로 어린이책이다. 동화책을 다시 열심히 읽게 된 건 역시 임신 때부터다. 사실 아이를 가졌다는 걸 이유로 뭘 특별히 한다는 게 마뜩지 않았었다. 모든 것을 오로지 아이를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말 같아서 ‘태교'라는 말 자체에 반감이 들기도 했고 그저 ‘내가 좋으면 아이도 좋은 것 아닌가’라는 다소 안일한 마음으로 임신 기간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그래도 새로이 시도한 게 있었으니 그게 바로 어린이 책 읽기였다. 매일 걷는 동네 산책길에 어린이도서관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나는 하루에 한두시간씩 동화책을 읽다오곤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빌려와 남편과 함께 배 속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그 때 알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훌륭한 동화는 곧 훌륭한 문학이라는 것을.

그 전까지는 사실 동화는 어린이들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어린이 독자를 제1 독자로 삼는만큼 ‘다 큰’ 내가 읽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단순한 서사일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숙제를 하고 있는 어린이도서관 서가 한켠에서 사노 요코의 <백만번 째 고양이>를 읽으며 펑펑 울던 날, 그간 동화책을 얕잡아본 일에 대해 (누구에게든) 석고대죄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제는 안다. 동화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어린이의 세계 역시 아름다움과 절망, 기쁨과 슬픔을 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특별한 시간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책을 고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이미 어린이책과 상당부분 멀어진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출판사나 저자의 이름도 생소하고 또 그림책이라는 장르 자체가 낯설기도 하다. 아이에게 사줄 책을 모두 읽어보고 구매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이 드는 일이다보니 현실적으로 효율성을 따져 전집을 들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책 읽는 법>은 어린이책 편집자 출신의 저자가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만난 어린이들의 사례와 함께 어린이책을 읽는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 ‘어떤 책을 읽어라/읽지마라’, ‘어떻게 읽어라/읽지마라’같은 단편적인 충고가 아닌 어린시절부터 독서의 경험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몇 가지 노하우들을 코칭해준다. 양육자들에게 꽤 도움이 될만한 팁들이 많다. 

하지만 실용성을 제쳐두고라도 이 책은 정말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왜냐하면 나는 동화책이 한편으로는, 아니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욱 양육자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화책 읽기’는 아이들에게도 물론 그렇지만 양육자에게도 소중한 경험이다. 멀어졌던 장르를 다시 탐독하게 되고 또 소리내어 책을 읽는 특별한 시간을 갖게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내가 특별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이 갖는 의미란 더욱 각별한 것 같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미디어이자 제일 먼저 만나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 아닌가. 그러다보니 아이의 책을 고를 때 좀 더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어떤 책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말하자면 나만의 ‘어린이책 읽(어주)는 법’의 세부칙을 세우는 일에 대해 매일 고민하고 있다.

사실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그때그때 서점 어플리케이션에 들어가 약간의 터치와 검색 후에 후다닥 책을 사는 편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작가들 위주로 책을 고르고 관심있는 장르나 주제를 우선적으로 보긴 했지만 책을 사는데 아주 신중하거나 공을 들이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초에 트위터에서 시작된 ‘여성작가 읽기’ 캠페인을 접하게 되었고 나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독서를 시작하게 됐다. 7월까지 읽은 책이 40권 정도 되는데 그 중 세 네권을 빼고는 모두 여성 작가의 책으로 채운 것이다. 이 경험이 나에게 굉장히 많은 것들을 주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굉장한 ‘편독’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굉장히 새로운 시도였고 이전까지 내가 평균적으로 남성작가의 책을 여성작가의 책보다 평균 2.5배 정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등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여성이면서도 나 스스로가 ‘여성 서사’에 익숙지 못하다는 걸 알게되었고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에 당분간은 이 기준을 유지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아이의 책을 골라보기로 했다. 이전 연재에서 지적했듯이 동화책 역시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관습들이 많이 남아있다. 아이들에게도, 아니 아직 어떤 편견도 없는 아이들이야말로 더 많은 여성서사와 더 다양한 여성캐릭터가 필요하다. 동화는 비교적 여성작가들이 두드러지는 편이니 작가의 성별을 따지기보다는 동화 속 주인공의 성별이 무엇인지, 등장인물들의 성비는 어떤지, 여성 캐릭터들은 어떤 꿈과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는지를 주요 기준으로 삼아볼 생각이다. 양육자 분들도 아이의 성향과 본인의 양육 철학을 고려해 어린이 책을 고르는 본인만의 기준을 세워보고 아이와 함께 좀 더 특별하고 즐거운 ‘동화책 읽기’경험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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