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8. 좋은 아빠 그냥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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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8. 좋은 아빠 그냥 엄마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정바당 인생 9개월 차, 우리도 드디어 하드보일드한 문센(문화센터)의 세계에 입성했다. 보통 이 맘 때쯤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고들 했다. 아기가 안정적으로 앉아서 놀고 호기심이 많아지는 시기. 그렇다는 건 주양육자가 하루종일 아이를 밀착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이니까 아이에게도 양육자에게도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방법들이 필요해지는 때다. 정바당의 도전이기도 했지만 이 시기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사실은 나의 도전이었다. 아이와 둘이 처음하는 모든 것이 그랬듯 이번에도 머릿속으로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했다. 아이가 입고갈 옷을 꺼내두고 가방에 모자, 기저귀, 가제수건, 간식, 물, 제일 좋아하는 동요 장난감, 지갑 등을 챙겨두었다. 언젠가의 새학기 첫 날처럼 떨렸다.

문센 가는 길

사실 수업 당일까지도 나는 갈까 말까 망설였다. 망설임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로 남편이 이 일을 맡길 바랬다는 것이었다. 통상 아이가 5살 이전까지의 수업들은 아이 1명과 보호자 1명이 함께한다. 나는 우리가 육아에 있어 꽤 많은 부분을 함께 해 나가길 원했고 아무래도 아이와 남편이 보내는 시간이 적으니 정기적인 스케줄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처음에는 집이 아닌 곳에서 정바당과 단 둘이 오랜 시간을 보내본 적 없다는 데 자신이 없어했지만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정바당 또래의 개월수 아이들이 듣는 수업은 모두 평일 낮시간이었다. 남편은 비교적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긴 하지만 얼마전 조정한 근무시간과는 모두 엇박자였다. 문화센터는 내 몫이 됐다. 

그러자 두 번째 이유가 생겨났는데, 어쩐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사회생활의 시작같아 처음 입사하던 때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은 ‘문화센터’에 대한 이상한 거부감이 있었다. 엄마들의 줄임말이라며 ‘윰차(유모차)’ ‘얼집(어린이집)’ 등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문센’마저 가면 이제 정말 엄마의 세계로 편입되는 것 같았다.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랬다. 최대한 늦추고 싶은 마음이랄까. 거기에 가서 공식적으로 정바당의 보호자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바당은 활동적인 편이었고 나 역시 매일 아이와 놀아주는데 한계를 느꼈다. 결국 나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로 했다.

아이들

대망의 첫 수업 날, 그날은 말 그대로 컬쳐쇼크였다. 하긴 정바당 하나만 키우면서도 매일 요일과 날짜를 잊고 어제 있었던 일인지 그제 있었던 일인지도 깜빡할 정도로 정신이 없는데 고만한 아기들이 열 가까이 있었다. 거기에 스피커를 타고 들려오는 동요소리, 꼭 두번씩 반복되는 가사들, 아이들의 집중을 위해 한껏 톤업된 강사의 목소리, 여기저기서 아이 사진을 찍는 카메라 셔터음에 정말 넋이 나갈 것 같았다. 단언컨대 내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든 것들의 집합이었다. 나는 단정하고 조용한 일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하다. 게다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동요들, 아아. 세상에 음악 취향이 동요인 어른이 있을까. (어딘가 있을 수도 있겠지. 취향은 존중합니다.)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정바당에게 쉴 새 없이 떠들어가며 책장을 넘기고 블럭을 쌓으며 수업 활동들을 쫓아가야 했고 정바당이 낯설어하면 달래고 가제수건으로 침을 닦아주고 문센 첫 경험에 잔뜩 설렌 가족들에게 제공할 사진도 찍어야 했다. 정말 중노동이었다.   

다른 아기들을 대하는 것도 어려웠다. 정바당을 키우고 있긴 하지만 가까운 친구들 사이엔 아직 아기가 없었다. 친한 대학동기가 나와 이틀 차이로 아이를 낳아 딱 한 번 다같이 본 게 전부였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10개월 가까이나 길렀는데도 다른 아이들은 아이 낳기 전과 마찬가지로 어색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내가 들고 있는 바당이의 빨대컵을 향해 전속력으로 기어오는 아기를 보면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옆에 앉은 아이가 바당이가 손에 쥐고 있는 블럭을 뺏다시피 가져가고 아이의 얼굴에 손을 올릴 때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내가 과민반응하게 될까봐도 걱정됐고 내가 그런 걸 걱정하느라 정바당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까봐도 걱정됐다. 정말 고단한 날이었고 생각할 것도 배울 것도 많았다.

그런 고단함 속에서도 문화센터를 계속 다니며 나도 정바당도 조금씩 적응을 해나갔다. 우리 옆에 다른 아이가 오면 “바당아 친구 왔네. 인사할까?”하며 말을 걸줄도 알게 되었고 다른 아이나 정바당이 서로의 얼굴에 과감한 터치를 하려고 할 때면 “그렇게 하지 말고 우리 친구 아 예쁘다 해볼까?”하면서 아이 손을 내 손 아래 포개어 쓰담쓰담을 해준다. 모두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엄마들에게 배운 것이다. 이제 문화센터는 나와 정바당의 수많은 루틴 중 하나가 됐다.

문화센터에서 남자 본 적 있으신지?

그리고 그 곳이 익숙해지자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문화센터에서 성인 남성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마트의 문화센터에서 짐보리로 옮겨와 수업을 듣고 있는데 짐보리에는 남자선생님이 2명 있지만 문화센터에서는 모두 여자선생님만 있었다. 게다가 보호자들은 모두 엄마 혹은 할머니 혹은 베이비 시터(당연히 여성). 오죽하면 반 이름이 ‘엄마랑 아이랑’이겠나. 문화센터에서 어느 날엔가 엄마들과 ‘아빠들은 아마 문화센터가 이런 곳인 줄 전혀 모를거다, 안와봤으니 이렇게 아수라장인 줄 모를 거다’, ‘그러니까 평일에 유모차 끌고 문화센터 들으러 백화점이며 마트며 다니는 팔자가 좋다 어쩌다 얘기가 나오는 거’라는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2년동안 수업했는데 아직 자기 반에 아빠가 아이를 데려온 적은 없었고 동료 강사 반에 세살짜리 아기가 주말 반에 엄마 아빠와 번갈아가며 온다는 걸 들은 적은 있다고 했다. 얼마전엔 휴가인지 같이 온 것 같았던 아버님이 아기와 아기 엄마를 여기 교실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차에 가 있겠다며 인사하는 걸 보셨다고 했다. 아니, 정말 문센은 금남의 구역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한 번쯤은 아이가 수업을 듣는걸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지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정기적으로는 힘들더라도 남편이 근무시간을 조정해 아이와 학기에 한 두번이라도 수업을 듣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아빠를 비롯해 다른 가족들 여러명이 함께 참여하는 패밀리 데이 행사가 있다고 했다. 정바당에게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니 일단 셋이 함께 수업을 들어보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편은 문센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우리 반에는 남편과 다른 아이 아빠까지 해서 두 명의 아빠들이 있었다.

나는 수업 내내 되도록 한 발 뒤로 빠져 있으려고 했다. 그래도 종종 엄마껌딱지인 정바당은 나를 찾으며 내게 매달리곤 했지만 어설픈 이어달리기도, 공굴리기도, 터널 통과도 남편이 정바당과 함께 했다. 남편은 중간중간 내가 처음 문센에 입성하던 날 지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표정을 지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곤 했다. 그 날 밤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이 육체노동인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정신노동 감정노동인 줄은 몰랐다고 고백해왔다. 전우애가 불타오르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출근 시간이 다가와서 행사 끝까지 있지는 못하고 중간에 먼저 나갔다. 다함께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미니 운동회를 마치고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남편들 얘기가 나왔다. 남편 분은 어디있냐는 얘기에 출근해야 해서 조금 먼저 나갔다고 했더니 선생님을 비롯해 같은 반 아이 엄마들이 입을 모아 쉬는 날도 아닌데 너무 부지런하다고 가정적이라며, 젊은 아빠라 그런지 아기도 아빠랑 친해보이고 많이 따르는 것 같다고 남편을 칭찬했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인사를 하고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좋은 사람, 좋은 아빠.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도 아이를 낳고 그런 얘기들을 타인에게서 들어본 적이 있던가. 글쎄,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늘 남편이 한 일들을 나는 매주 하는데, 내가 정바당을 데리고 문화센터니 짐보리니 다니는 동안 나는 그런 시선을 받은 적도 코멘트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그건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당연히’ 엄마가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겠지.

노력하는 아빠, 당연히 노력해야 하는 엄마

남편은 다른 사람들의 말 처럼 정확히 그런 사람이다. ‘자상’하고 ‘다정’하고 바당이가 태어났을 적부터 아이와 최대한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알고 지낸지 십 삼년, 그는 기본적으로 참 다정한 사람. 마냥 착하고 잠깐 잘해주고 자기 기분 내키고 편안할 때나 마음 한 켠 내주고 선심 쓰듯 굴고 친절을 베풀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마음 쏟는데 만큼은 성실하고 세심하게 살피며 골몰하는 이였다. 그런 성정은 아빠가 되어서도 여전해서 정바당이 우리에게로 오고나선 우리 셋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장 우선순위에 뒀다. 출퇴근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직업이라 최대한 바당이가 깨어있는 시간에 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바꿨다.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며 어떻게든 방법을 써서 시간을 마련해주고 주양육자인 내가 짊어진 무게를 잘 알고 늘 존중하며 그것을 자신만이 덜어줄 수 있다는 걸 알고 노력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으쓱해하거나 내게 칭찬같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남편의 이런 모습이 고맙다. 우리는 당연한 일에도 수고했어, 고마워, 사랑해 같은 말을 하는데 아낌이 없고 나는 남편이 책임감 있는 어른이라는 점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나와 남편을 대하는 시선들의 온도차는 가끔 마음 한 구석을 서늘하게 만든다. 남편은 늘 가정적이고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나는, 그러니까 나는 그냥 엄마다. 엄마라는 단어에는 저 모든것이 당위의 개념으로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좀 이상하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거나, 모성애가 없는 이기적인 엄마가 된다. 이런 분위기들이 때로 나를 지치게 한다. 나와 남편의 부모 경력은 같은데 어째서 한 쪽에만 그리 관대하고 다른 한 쪽에는 엄격하다 못해 때로 매서운 기준을 들이대는 것일까. 마치 남자는 이제 막 아빠가 되어 모든 것이 서투른데 그런 와중에 뭔가를 하려고 하다니! 심지어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그 ‘시도’만으로도 칭찬을 받아야 할 존재인 것 같다. 반면에 엄마가 되고 보니 사람들은 마치 내가 날 때부터 엄마였다는 듯 군다.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도 10키로가 넘는 아이를 안고 오르막을 오르고 갑자기 잘먹던 밥을 안먹겠다는 아이를 온갖 수를 써가며 구슬려 밥을 먹이는 게 처음이다. 아이와 식당에 가서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아이의 체형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도 모두 내게는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처음들이다.

정바당은 이제 곧 돌을 맞는다. 지난 일 년 가까운 시간동안 아이의 옆에 딱 붙어 살며 아이의 수많은 처음들을 함께하고 지켜볼 수 있었다. 내겐 가장 큰 기쁨이기도 동시에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엄마로 태어나지 않았다. 정바당이 곧 만 한 살이 되니 엄마로서의 나도 이제 겨우 만 한 살. 나의 엄마 인생에도 조용한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는 정바당의 처음들에 남편의 자리가 늘어나기를, 그리고 그것이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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