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마치며 - '다시'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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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마치며 - '다시' 페미니스트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이 연재를 시작하고 열 다섯개의 글을 쓸 때마다 매 번 떠올렸던 일이 있다. 아이를 낳기 전의 일. 

 “저기요. 좀 조용히 해주실 수 없나요?”

친구와 나는 둘다 이직 제의를 받은 상태였고 우리는 조용한 곳에서 진지한 얘기를 나누길 원했다. 일부러 프랜차이즈가 아닌 차분한 분위기의 동네 카페를 찾았다. 삼십분 정도 있었을까. 우리는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이제 두 살 정도 됐을 법한 아이와 아이의 엄마,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 때문이었다. 아이는 계속 돌고래 소리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맘대로 되질 않아 짜증을 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엄마와 친구들이 달래면 그게 또 재밌는지 까르르 웃기도 했던 것 같다. 하여튼 굉장한 고음이었고 카페의 높은 천장과 맞물려 엄청난 효과를 냈다. 엄마는 아이를 제지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귀여워하기도 했다. 친구와 나는 몇 번 말을 멈췄다가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우리는 그들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었다. 뻔한 얘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참다 못한 친구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한 마디 했다. “저기요. 좀 조용히 해주실 수 없나요?”

왜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마감을 앞두고 빈 문서를 열 때면 그 때 나와 친구가 뱉었던 말들, 그 아이의 표정, 아이를 안고 다급히 화장실로 뛰어가던 그녀들이 떠올랐다.

기혼 유자녀 여성 - 페미니스트

처음 이 글들을 쓴 건 순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나는 서사로 버티는 종류의 사람이다. 내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을,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나의 언어로 정리해야만 그런대로 흘러갈 수 있다. 아이를 낳은 후로 한참동안 그걸 하지 못해 괴로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나는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채로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어가고 있었고 나는 뭔가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버노트에, 아이폰 메모장에, 포스트잇에 조각조각 난 말들을 이어 붙여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글들을 쓰면서야 나는 내가 ‘기혼여성’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정확히는 정바당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비로소 ‘기혼유자녀여성’이라는 분류로 편입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아니, 되어야만 했다. 연재 초반에 털어놨듯이, 나는 이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워내는 것이 페미니스트인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라는 건 내가 언젠가 과거에 페미니스트였다는 건데 비교적 안전한 온실이었던 대학 시절의 일이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회사원이 되고 나는 망각했다. 괴로워서였든 용기가 없어서였든 그런 식으로 나도 방관자이자 가담자가 되어갔을 것이다. 그랬던 나를 다시 페미니스트로 만든 건 정바당이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혼유자녀여성이 된 후로 나는 이제 이 사회에서 꼼짝 없이 3등 시민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기혼유자녀 여성에게 여러가지 굴레가 씌워져 있다고 보는데 그 중 페미니즘의 영역에서 논의해볼만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가부장제에 복무한다'는 혐의와 ‘양육과 관련해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전선

기혼유자녀여성에게 가해지는 비난들을 잘 알고 있다. 남편이나 자식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본인만의 서사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든가, 온라인에서는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행세를 잘도 하면서 실제로 명절에는 시가에 가서 바닥에 앉아 전이나 부치고 있더라든가, 한남이랑 결혼해봤자 불행할 게 뻔한데 왜 결혼을 해서는 불평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든가, 그러게 한남유충을 낳아 놨으면 틈틈이 기를 죽이면서 키워야지 왜 싸고 도냐든가. 뭐 그런 말들. 악의적이라고 느껴져서 어디 한 군데가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고 그냥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한 명의 성인인 기혼유자녀여성이 본인이 한 선택에 대해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고 다른 가족구성원들과 갈등을 빚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안온함만을 택하지도 않고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또 함께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전선을 다지는 것이 왜 비난이나 조롱을 받아야 하는 건지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많이 그리고 오래 생각해봤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이런 얘기를 할 때면 눈물이 막 쏟아져서 제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 썼다. 나는 가부장제에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 아니며 양육의 책임은 나에게만 있지도 않고, 나 혼자 모든 것을 마법처럼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도와달라고.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기록되지 않을 투쟁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아동혐오'다. ‘노키즈존’이나 ‘맘충’으로 대표되는 국내의 아동혐오적 분위기는 결국 아동 뿐만 아니라 주양육자인 여성-육아노동자에 대한 혐오까지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양육자분들의 고민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와 세트인 삶을 꾸려가게 된 입장에선 어쩐지 점점 더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것이다.

나는 모두의 연대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각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의 화급함을 당신에게 풀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저 알아주길 부탁한다. 여기,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 각자의 전선을 긋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게 싸우고 있다는 것 말이다. 

나의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기혼유자녀여성의 이야기는 아마도 어느 투쟁사에도 실리지 못할 것이다. 좀 비관적인 단언인가 싶지만 사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될 것이다. 영유아 보육시설의 보육교사들에게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시키고 페미니즘에 기반한 보육/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달라는 정책 제안에 참여할 것이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간 이제 겨우 한 살이 된 아이에게 ‘이제 남자같네’ ‘씩씩해졌네’ 라는 얘길 웃으며 하는 놀이시설 선생님께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얘기를 꺼낼 것이다. 남편과 페미니즘에 대해 계속 공부할 거고 아이에게 성별과 관련된 편견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아이에게 자신의 성별이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이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껏 내가 해 온 그 어떤 일보다도 어려운데다가 중장기 프로젝트라 막막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흥미로운 일이 많았다. 주로 트위터에서 내 글을 동의의 의미로 리트윗하신 분들에게 쏟아지던 맹공격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괜히 송구스러웠던 기억이 많다. 산후조리원의 실상을 폭로(?)했던 회차나 동화와 동요 속 미소지니를 지적했던 회차의 글들은 주양육자분들 사이에서 나름 화제가 되고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노키즈존 논란은 이제 주요 언론사에서도 이슈로 다루면서 아동과 양육자에 대한 혐오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아직 자녀가 없으신 분들이 내 글을 읽고 ‘노키즈존’에 대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해주셨을 땐 정말로 감사했다. 나 역시 아이가 없을 땐 하지 못했던 일을 겨우 이 문장들을 빌어 해주시다니, 정말 멋진 분들이 많았다.

다른 곳이 아닌 ‘핀치’였기에 망설이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공격받거나 낙인 찍힐 거라는 두려움 없이 쓸 수 있다는 것, 정말 드물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 공간을 꾸려나가고 계신 핀치의 편집자 분들, 그리고 그렇게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모두 감사드린다. 여성-육아노동자와 아동에 대한 편견 없이 늘 좋은 일러스트를 그려주신 이민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에게 이 이야기를 준 정바당에게도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너는 아마도 이것만으로 내게 모든 걸 다 해준 거라고. 언젠가는 얘기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함께 목소리를 내주신 기혼유자녀여성 분들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정말로 많이 배웠다. 우리의 페미니즘이 어떤 내일들을 맞이하게 될 지 모르겠다.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저 여자가 대체 왜 저러나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나는 여러분들(!)을 떠올릴때마다 조금 애틋하다. 그 마음을 담아 이 문장을 다시 적으며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모든 어머니 동지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당신이 더 많이, 더 크게 떠들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을 하고 있고 이건 분명 프로의 영역이다. 우리는 충분히 멋지고 훨씬 더 근사한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당신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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