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7. 동화책도, 동요도, 나도 다 빻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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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7. 동화책도, 동요도, 나도 다 빻았다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연재 초반에 정바당을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키워내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 일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면…총체적 난국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소지니’의 영향력은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도 건재했다.

동화책을 읽다 착잡해졌다

처음 불편함을 느낀 건 동화책이었다. 정바당에게 태담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동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전까지는 동화를 그저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여겼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어른이 된 내가 읽기에도 좋은 책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사노 요코의 <백만 번 태어난 고양이>는 정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 어린이도서관에서 처음 읽던 날은 초등학생들 틈에 둘러 앉아 몰래 눈물을 훔칠 정도였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책을 빌렸고 그날 저녁에 정바당에게 읽어주었다. 

그런데, 소리 내어 읽다보니 낮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띄었다. 주인공인 얼룩무늬 고양이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인 하얀 고양이가 갑자기 얼룩무늬 고양이에게 “네에”하는 게 아닌가. 응? 아니 어째서? 얼룩무늬 고양이가 자기가 살아온 백만 번의 생을 자랑하며 으스댈때도 “으응” “그래” “그러니”로 일관했던 하얀 고양이는 어디로 가고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거지? 아니 설마 지금 둘이서 새끼 고양이를 낳고 같이 살아서 그렇게 됐다는거야? 세상에, 맙소사. 동화에서 마저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다니. 나는 그야말로 짜게 식었다. 너무 좋아하는 동화책이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광광 울며 혹시 번역을 하며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닐지, 심지어는 “네에”가 존댓말이 아니라 고양이 울음소리는 아닐지 온갖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그럴수록 착잡해졌다.

많은 동화책들이 아무렇지 않게 고정된 성역할을 그대로 재현한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장을 보고 수프를 끓인다(멜리사 이와이, <수프 먹는 날>). 아빠가 장난감을 사서 퇴근을 하면 엄마는 아빠에게 “오셨어요?” 같은 인사를 한다(쿠도 노리코, <삐악삐악 크리스마스>). 계속해서 이런 책들을 본다면 누구라도 요리는 엄마만의 일이고 아빠는 식탁에 앉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할거다. 위기의식을 느껴 서점에 가서 엄마 아빠가 요리나 집안일을 같이 하는 동화책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제보해주시길.)

늘 반복되는 돌림노래처럼

뭐 그깟 동화책에 그렇게 심각하게 구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거실 매트에 누워 정바당이 틀어놓은 ‘개굴개굴 개구리’ 동요를 듣던 날이었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라니. 별 생각없이 가사를 따라 부르다가 속이 뒤틀려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아니, 뭐야 왜 아들 손자만 있어? 딸이랑 손녀는 어디로 갔는데? 그건 그렇다치고 며느리가 어떻게 아들 다음도 아니고 아들 손자 다음이야?” 폭주하려는 나의 낌새를 알아챈 남편이 정바당에게 앞으로 우리 집에서는 이 동요는 딸-손녀-사위로 부르자고 얘기하는 걸 듣고서야 일단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며칠 후 호주제 폐지와 관련된 기사들을 읽다가 문제의 개구리 동요와 호주제 사이의 엄청난 평행이론을 발견하게 됐다. 호주제가 있던 시절에는 호주가 사망하거나 국적을 상실하는 등의 이유로 호주를 승계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승계 순서를 법으로 정해두었는데 그 순서가 바로 아들-손자-딸-손녀-아내-며느리가 아닌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개굴개굴 개구리와 호주제라니. 미소지니가 이렇게 막대한 영향력과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물론 농담이다. 작사가가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그럴 필요 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애당초 손녀-딸-사위라는 옵션을 떠올릴 가능성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우리가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사람의 디폴트가 ‘남성’이고 그들이 모여 ‘부계중심’사회를 이루는 것만큼 확실한 미소지니 코드가 또 있을까. 여성들이 배제되어오고 지워져온 바로 그 방식 그대로, 동요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것 뿐이었다. 무의식의 산물로, 우연을 빌어 늘 똑같이 반복되는 돌림노래가 여기에서도 그대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동화책이나 동요는 내가 어느 정도 선별하고 컨트롤 할 수 있지만 정말 어려운 건 사람들이다. 정바당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엄마가 눈웃음 짓는 정바당을 보며 “아유 사내애가 어쩜 이렇게 애교를 피우니”라고 할 때나 카페에서 마주친 아주머니가 “여자애죠? 예쁘게 생겨서는 얌전하기 까지 하네. ”라고 할 때면 좀 아득해진다. 그것이 어째서 성차별적 발언이며 나아가 미소지니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발상인지 설명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가족들에겐 우리의 원대한 포부를 선언해 놓은 덕분에 조금 수월하고 쌓아놓은 토대가 있어서 대화가 진행이라도 되지만 완전한 타인이 그것도 ‘칭찬’의 의미로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 지 여전히 모르겠다. “아니요, 아주머니. 예쁘고 얌전히 잘 있다고 여자애라고 하시는 말씀은 듣기 거북하네요. 여자애만 얌전한가요? 남자애도 얼마든지 얌전할 수 있지요. 얌전하다는 걸 곧바로 여성의 특성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그러니 취소하시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내 안의 빻음

하지만 타인의 빻음보다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내 안의 빻음이다. 나 역시 그런 동화책들을 읽고 동요를 부르며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살아왔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내가 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다고 해서 여성혐오의 혐의에서 자유롭다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는데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이 빻음은 정말 당황스럽다.

심지어 한 날은 자주 읽던 동화책들 중 한 권이 왠지 정바당이 재미없어 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은 이사를 온 한 여자 아이가 옆집에 사는 같은 나이의 여자 아이와 숲 속 비밀의 공간에서 들풀과 꽃들로 화관을 만들어 나눠 쓰고 소꿉놀이를 하는 내용이었다. (미야코시 아키코, <비밀의 방>) 다른 사람 줄까 한다고 말하자 남편이 약간 의아해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여자아이이고 여자아이들끼리 꽃을 만지고 소꿉장난 같은 걸 하는 얘기는 남자아이인 정바당 입장에선 흥미가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에. 남편에게 대답을 하면서 뭔가 굉장히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고 서로의 빻음을 가장 신랄하게 지적해주는 남편이 제 역할을 해줘서 얼른 마음을 고쳐먹긴 했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접해온 서사는 대부분 남성 중심이었다. 제제도, 어린왕자도, 라이온킹도 모두 남자였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읽고 거기에 이입하면서 성장해왔다.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이나 되어서였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예외적이라 생각하고 어색함을 느끼다니. 슬프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언젠가 장난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던 분이 썼던 포스팅이 기억난다. 여전히 부모들은 아이의 성별에 따라서 특정 장난감들을 권유하지만 그래도 여자애들이 총이나 로보트 같은 걸 사달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한 번은 사준단다. 하지만 남자애들이 인형놀이같은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면 당황하고 어떻게든 아이를 설득한다고 했다. ‘양성성’ 교육이 꽤 주목을 받은 덕택에 여자아이가 남성성을 갖추는 것은 권장하고 응원하면서도 남자아이가 여성성을 지니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해하고 꺼려한다. 그만큼 ‘여성적인 것’이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선 ‘계집애같다.’가 욕이나 조롱으로 쓰이지 않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슬퍼진다. 정바당이 그런 욕을 내뱉는 남자가 될까봐 걱정스러움과 동시에 정바당이 그런 남자들 때문에 자기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숨기고 자신을 속이며 살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나는 정바당이 이런 분위기에서 최대한 자유로웠으면 한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할거다. 정바당이 그저 정바당으로 존재할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며칠 전에는 내가 동물들이 등장하는 동화책을 읽어줄 때 몸집이 작은 토끼나 여우 대사는 여자 목소리로, 몸집이 큰 사자나 코끼리의 것은 남자 목소리로 읽는다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이후론 일부러 반대로 바꿔서 내거나 최대한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톤을 유지하려고 노력중이다. 너무나 사소한 일들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부터 고쳐나갈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나의 자리에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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