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본다 2. 바깥은 여름

생각하다육아

엄마, 본다 2. 바깥은 여름

Ah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김애란 작가를 좋아한다. 장편도 좋지만 단편소설집들은 특히 좋아한다. 이십대 때, <비행운>같은 단편집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래서 지난 여름 그녀의 새로운 단편소설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주 오랜만에 설렜다.

아이의 늦은 낮잠을 재운 오후였다. 아이 옆에 조금 누워 있다가 책 생각이 나 거실로 나왔다. 마루로 햇살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던 날이었다. 아이가 자는 집은 모처럼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소파에 누워 첫 작품인 <입동>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야기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많이. 읽으면서도 울고 읽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다. 마음이 잘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가 낮잠에서 깨 나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영문을 알 리 없는 아이는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아이의 침대로 갔다. 그리고 아이 옆에 모로 누워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아이의 따뜻한 손을 잡아보고 아이의 얼굴을 한참 뜯어보았다.

최악을 상상하는 최고의 위로

사실 나는 최악을 상상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일종의 방어기제랄까. 나는 좀 힘든 이십대를 보냈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이 일어났고 후유증은 길었다. 나의 잘못이 단 하나도 없어도 어떤 비극이 내 삶을 완전히 집어삼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나는 생의 곳곳에서 약간의 불길한 기운만 감지되도 아니,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없다해도 언제든 내게 최악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정을 한다. 그리고는 곧장 괜찮다고 그런 일이 벌어져도 나는 괜찮을거라고 결론짓는 사람이 됐다. 의도하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그런 사고가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 최악을 떠올리는 건 어떤 면에서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인 셈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그건 바로 아이에 관한 일. 아이에 관해서는 전혀 그럴 수 없다. 최악을 떠올리지도 그래도 나는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을 할 수도 없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면 절대 괜찮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다른 어떤 일들보다도 아이가 잘못될까봐 걱정한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 그것도 행복의 한 가운데라 불릴 만한 순간들에 한 번씩 그런 생각들이 스치는 것조차도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럴 때면 그 마음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젓고 영문을 모르는 아이의 손을 괜히 꼭 잡고 아이의 뺨에 내 얼굴을 부빈다.

이런 생각들을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 낸 적이 없었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어 발음한다는 것만으로도 불온하다 느껴져 그 두려움을 속으로 가만히 삭인다. (지금도 내가 이 글에서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추상적인 단어들로 뉘앙스만 풍기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재우고 난 후면 아이의 가슴에 손을 슬며시 얹어본다. 아이가 소파나 미끄럼틀 같은데서 뛰어놀 때면 피가 얼어붙는 기분이다. 몇 주 전에 아이가 뛰어다니다 넘어져 침대 프레임에 눈 아래께를 부딪쳤을 때는 너무 겁이 나서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저 우는 아이를 안고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무탈한지

얼마 전 이런 얘기를 다른 엄마들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많이들 비슷하다고 했다. 아이가 잘 걷다가 넘어져 잠깐 주저 앉았을 때, 낮잠을 평소보다 오래, 중간에 깨지도 않고 조용히 잘 때, 아이가 잘못 됐을까봐 걱정한다고 했다. 내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걸까 생각도 해봤었는데 아이가 큰다고 해서 그런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밖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질 때, 학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에서 조금 늦어질 때. 아이가 무탈한지 한 번씩 걱정이 된다고들 했다. 한 분은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가 내가 보고 있지 않은 곳에서도 여전히 숨을 쉬며 두 다리로 잘 걸어다니고 있다는 게 가끔은 무슨 판타지 소설같이 현실감이 없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내심 원래도 생각많은 성격인 나의 유난함과 과민함이 아닐까, 걱정했었다. 내가 그런 사람인 게 싫다고 생각해본 적은 딱히 없지만 아이 키우기엔 영 부적합하다고 나를 책망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 날 처음으로 남편에게 그런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사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잠들고 난 후에 한 번은 꼭 가슴께에 손을 얹어본다고. 남편은 나도 그래, 라고 했다. 아이가 잘 자고 있는건지 너무 걱정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고. 그러고보니 기억이 났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첫 날 밤에 아이를 겨우 재우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럼 이제 우리도 이제 자는건가? 근데 우리가 자도 될까?라며 난감한 얼굴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럼 도대체 잠을 평생 안 자고 애를 어떻게 보겠다는 얘기인가 우습기도 하지만 지금이라고 뭐 그리 크게 달라졌나 싶기도 하다. 나는 아이의 그 작은 몸에 숨이 붙어 아이의 몸이 주기적으로 달싹거린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고 그만큼 불안한 것을.

영원히 마음 쓰이는 존재

쓰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어쩌자고 부모가 되었을까. 어쩌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 소설을 하나 읽으면서 줄줄 울고 또 울고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서 글자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꺽꺽되는 사람이 된걸까. 정말 큰일났다는 생각 뿐이다. <바깥은 여름>에는 <입동> 말고도 <노찬성과 에반>, <가리는 손> 등 어린이, 청소년과 그들의 양육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세 작품들이 가장 좋았다. 아마도 아이를 낳기 전이라도 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지금의 감정과는 분명히 달랐으리란 생각도 한다.

아이가 얼만큼 자라든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나는 아이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영원히 마음 쓰이는 존재가 있다는 것. 가끔 떠올리기만 해도 어딘가 찌르르 하는 기분이 드는 것. 내 생이 끝날 때까지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것이라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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