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본다 8. 이상한 정상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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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본다 8. 이상한 정상가족

Ah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도 아이를 낳고 기르기 전에는 아동인권에 대해서 무지했다. 아동인권까지 갈 것도 없이 아이들이, 그리고 아이를 동반한 양육자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불편과 불합리에 무감각한 사람이었다.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비장애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인에게는 일상적인 공간과 시설조차 아이들에게는 장애물이자 위험한 곳이 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아이에게 명백한 악의와 적의를 내뿜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했다. 그것이 아이와 함께 있는 여성인 나를 향한 적의가 아닐지 의심스러운 적도 있긴 했지만 어떤 이들은 아이가 배려의 대상이라는 사실마저 인정하지 않는 듯 보여 당황스러웠다. 대체 자기보다 몸집도 훨씬 작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은 문자 그대로 작은 인간인 아이들을 보며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고 또 궁금했는데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으면서 그 의문을 상당부분 해소했다.

'맞을 짓'

이 사회는 아동을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는다. 부모의 소유물, 내지는 부모가 갖는 권리(친권)의 객체로 본다. 너무 비약적이라고 느껴지나. 전혀 그렇지 않다. 책에서 인용한 국가인권위원회의 <2016년 국민인권의식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국민의 절반가량은 아동, 청소년을 체벌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보육시설의 아동학대 사례를 들며 불안함을 토로하지만 몇 년 새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끔찍했던 아동학대 사건들은 모두 가정에서, 양육자에 의해 발생했다. 사회 구성원의 절반 가량이 ‘특정 연령층에 대한 특정한 조건하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수용’한다. ‘맞을 짓을 했다’는 말은 그 대상이 아이들일 때 용납된다. 이는 결국 우리 사회가 아동, 청소년을 성인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며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거의 무한한 권리를 주었다는 뜻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는 이 부분에서 우리 사회가 아동을 바라보는 거대한 아이러니가 생겨났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이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여기지 않는 이들의 사고회로를 상상해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달까. 아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그를 돌보는 양육자의 ‘보호’아래 있으니 일단 양육자 내지는 보호자가 있는 아동들을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는 존재로 설정하고 사회는 그들을 ‘배려’하거나 ‘보호’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의식의 흐름이라면 아동과 양육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이는 태도들의 상당 부분이 설명 가능하다. 

굳이 유모차가 다니기에 비좁은 골목이 즐비한 동네에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나오는 것은 ‘자기 기분 좋으려고’ 정작 아이 상태에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부모를 비난하면 되고, 아무래도 아이를 상습적으로 체벌하는 것 같은 부모에 대해서는 좀 이상한 낌새를 느끼더라도 ‘자기 자식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어’라는 식으로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쪽이든 자신이 성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약자인 ‘아동’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은 회피하고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한다. 참으로 편리한 면피의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동반자살은 없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 사회의 최약자는 아동이라는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철저히 아이의 입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해로운가를 따진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흔히 ‘부모와 아이의 동반자살’이라고 불리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아이가 포함된’ 일가족이 동반자살했다라는 표현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여기에 아이의 뜻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며 부모가 자녀의 목숨까지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은 명백한 살인이고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뒤틀린 문화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해당 표현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사건들을 접하며 그간 내가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자기 자식까지 제 손으로 죽이다니) “오죽했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친권을 남용한 범죄자로 취급받아야 한다.

동시에 이 문제가 아프게 다가왔던 것은 서양은 자식 살해 후 자살하는 사건의 가해자 대부분이 남성, 즉 아빠인 경우가 많았던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여성, 즉 어머니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것만큼 우리 사회에서 양육이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는지 보여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자녀의 생존을 자신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게끔 만드는 사회, 내가 돌볼 수 없다면 누구도 아이를 제대로 건사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가장 부정적인 감정의 실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조금만 운이 없다면. 우리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여성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케이스다. 

이것이 그저 피해의식이거나 과대망상 같은 것이면 좋으련만 현실이 정말 그렇다는 게 절망적이다. 가족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구조, 그 중에서도 거의 전적으로 가족 내 특정 성별에 지워지는 노동. 모두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사회가, 정부가 나눠야 할 짐이라는 생각조차 없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는 것은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마치 아이들이 정상가족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구조에 의해 삶의 질 뿐만이 아니라 생존까지 좌지우지 되는 약한 존재다.

우리 사회의 영혼은 어떤 얼굴일까

최근에 다양한 행사나 세미나 등에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임산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둔 시위도 있다고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유아동 동반 우대/우선석은 보기 힘든 것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교통약자 좌석을 노약자석이라고 퉁치는 나라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걸까.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태아의 생명권을 운운하며 낙태죄 수호를 외치지만 그런 태아가 정작 태어나 아이가 되었더니 ‘노키즈존’이라며 식당에서 빵집에서 전시장에서 출입을 제한당하는 나라. 우리 사회의 영혼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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