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4.한국에서 덮어놓고 애 못 낳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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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4.한국에서 덮어놓고 애 못 낳는 이유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나는 원래 듣기 싫은 말이 좀 많은 사람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든가 “아프니까 청춘이다.”같은 말들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별 악의 없이 한거니 크게 마음 두지 말라는데 꼭 악의가 있어야지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이런 말을 듣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 대표적인 게 “애는 일단 낳으면 알아서 큰다”라는 말이다.

자매품 “아이는 자기 먹을 건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는 말 만큼이나 놀라운 말이다. ‘알아서’ 크다니! 정바당을 키우며 매일매일에 갈아넣고 있는 나의 시간과 체력과 정신력은 모두 불필요한 것이었던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바당의 13개월 인생을 돌이켜보면 더더욱 그렇다.

알아서 안 큰다

정바당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주양육자인 나와 보조양육자인 남편 손에서 컸다.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는 한 달 정도 있었던 시간제 시터분과 4개월 남짓 나의 육아를 도와줬던 우리 엄마가 정바당의 보육을 맡았던 전부다. 아마 이 다음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이 될 것이다. 선배 엄마들에 따르면 육아는 어린이집 이전과 어린이집 이후로 나뉜다는데 정바당은 언제쯤 내 손 말고 다른 사람의 손에서도 자라게 될까, 그런 게 궁금하긴 하다. 나와 매일 붙어있던 아이가 다른 곳에서 지낸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기도 하고 아이가 나름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단 생각을 하면 어쩐지 짠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없는 오전, 그리고 낮시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평화롭다. 예전처럼 다시 아끼는 그릇을 꺼내서 근사한 끼니를 챙겨먹고 필라테스도 하고 꽃시장에도 가고 전화일본어도 하고 낮잠! 그래 낮잠도 잘 수 있겠지.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는 내 작업도 속도를 낼 수 있을거고 남편과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이랑 점심도 먹고 넷플릭스도 실컷 보고 책도 볼 수 있겠네. 그럼 내년 3월부터 보내볼까? 20개월이면 너무 이른가. 그 다음 해 3월이 좋은걸까. 막연한 생각들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보육시설에 관해 나는 특별한 계획도 구체적인 생각도 없다. 계획왕인 내가 안일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알아보다 보면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걸 알기 때문이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정말 그 때가 닥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어느 정도는 그런 마음이었다.

막막했다

그러다 몇 주 전, 보육시설에 대해 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집에는 나와 정바당 둘 뿐이었다. 정바당이 소파 위에서 바닥으로 꽈당 추락하려는 걸 막기 위해 뛰어가던 내가 오히려 아이의 놀이공간을 빙 둘러 쳐놓은 울타리에 부딪치며 마루바닥으로 추락했다. 일생의 추진력을 다 쏟아부은 덕분에 바닥에서 족히 수십 센치는 떠 있었던 것 같다. 말도 안되게 오른쪽 뺨과 오른쪽 골반뼈로 착륙(?)했고 얼마나 세게 떨어졌는지 마룻바닥이 내 뼈 모양대로 파인 지경이었다.

아, 정말 아팠다.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턱과 뺨을 부딪쳐서인지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정말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꼼짝도 할 수가 없어서 어디가 부러진 건 아닌지 겁이 났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는데 놀라서는 눈물을 그렁그렁해 악을 쓰며 내게 오는 정바당이 보였다. 일단 아이를 안심시켜야 했다. 가까스로 팔을 뻗어 아이의 얼굴을 매만지면서 ‘엄마 괜찮아, 바당아 엄마 괜찮아.’ 하는데 아이는 계속 넘어가듯 울었다. 순간 너무 무서워서 나도 눈물이 막 났다. 아무래도 구급차를 불러야될 것 같단 생각에 아이폰을 찾기 위해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근데 구급차 타게 되면 정바당은 어떡하지. 남편은 지금 못오는데. 119에 전화해서 아기 봐줄 분도 같이 와달라고 해야 하나? 근데 그런 것도 해주시나. 그럼 구급차에 타고 같이 가야하나. 아니 카시트가 없는데. 아냐, 구급차니까 괜찮겠지? 아냐, 괜찮긴 뭐가 괜찮아. 근데 정서적으로 너무 안 좋을 것 같은데. 근데 우리 바당이 점심도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고기도 다지고 밥도 새로 앉혀야 하는데 어떡하지. 정말. 어떻게 해야하지. 모든 것이 너무나도 막막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진 곳은 없었다. 무시무시한 멍이 들었고 뺨과 턱, 골반에 통증이 엄청났지만 당장 정형외과를 가기도 힘들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 몸으로 유모차를 밀며 병원에 가는 것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기다리고 진료받고 사진 찍는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다음날이 되어서야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병원에 갈 수 있었는데, 그 때 심경이 복잡했다. 내가 정말로 부재중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정바당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구나. 아이가 나나 남편 말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여러모로 중요한 일이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 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응급상황에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국가나 시 단위에서 관리하는 시설이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지방의 중소도시인 이 곳에는 그런 시스템 역시 전무했다. (*서울에는 송파구의 “우리동네 아이돌봄기동대”와 같이 지역 시니어 센터와 연계하여 아이들의 등하원 지도, 보육시설/학교 등원/등교가 어려운 아픈 아이 돌봄, 부모의 외출 시 아이돌봄 등 짧은 시간의 긴급 아이 돌봄 서비스가 있었다.)

믿고 보낼 데가 없는데

현재 미취학 아동들의 가장 보편화된 코스는 어린이집-유치원이다. 물론 어린이집 대신에 놀이학교를 보내거나 방문교육, 홈스쿨링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가 만0세-만2세 무상보육을 내세운 후로는 어린이집 이용률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애초에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으니 별다른 고민의 여지가 없어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랬다면 지난 대선에서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자의 ‘대형 병설 유치원 설립 자제’ 발언이 그렇게 큰 이슈가 되진 않았을 거다. 현재 국공립 유치원(만3세-만5세) 취원율은 25% 정도다. 대부분이 민간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 유치원’을 더욱 지원하겠다는 안철수 후보자의 말은 맘카페를 중심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안 후보자는 단설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유치원은 그 운영 주체에 따라 국공립과 사립으로 나눌 수 있고 국공립은 다시 단독으로 설립된 단설과 초등학교 내 설립된 병설로 나뉜다. 부모들이 병설이든 단설이든 공립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 사업자에게 운영 전권이 있는 사립과는 달리 국공립은 교육부의 관할 아래에 있으며 임용고시를 합격한 이들에게만 교사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원비도 사립에 비해 저렴하다. 이러다 보니 엄마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어린이집 대기부터 걸어놓는다. ‘믿을 만한' 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양육자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시설들의 경우 1년이 지나도 대기순위가 줄어들지 않아 연락이 안 온다는 경험담들이 파다하다. 게다가 입학 우선순위(다자녀, 맞벌이 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가 있기 때문에 대기 순번이 오히려 뒤로 밀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언제 입소가 가능한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당장 아이를 돌볼 풀타임 양육자가 없는 경우 원하지도 않는 고가 유치원이나 영어유치원 등에 보내야 하는 사례도 있다.

무상복지라는 국가의 보육 정책이 사실 누구에게나 돌아가는 무상 복지가 아닌 셈이다. 게다가 불필요한 행정들이 보육현장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다. 1화에서 지적했던 ‘맞춤형 보육’은 노골적으로 전업주부와 워킹맘을 구분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제한했다. 부모 중 유독 ‘엄마’의 경제활동 여부를 어린이집 이용 가능 시간의 기준으로 삼은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만0세-2세 무상보육'이라는 큰 틀을 부정하는 행정이었다는 게 흥미롭다. 많은 문제가 있었던 제도인만큼 정권이 바뀌면서 맞춤형 보육은 어떤 식으로든 손질될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시켰던 제도가 개선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나의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정책이 일년만에 손바닥 뒤집듯 달라지는 걸 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다만 현 정부가 국공립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의 비율을 2022년까지 40%로 끌어 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점에 약간의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임신을 확인하고 진료실에서 나오던 내게 간호사 선생님이 따라오셔서는 첫 초음파 사진과 함께 산모수첩, 임신확인증을 챙겨주시며 임산부에게 제공되는 지원내용을 설명해주셨었다. 간호사 선생님 개인의 선의도 커다란 친절도 아니고 그저 모든 임산부에게 지원되는 매뉴얼 그대로였지만 그 때 잠깐, 나와 내 아이가 이 사회로부터 조금이나마 환영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는 이 사회가 정말로 아이를 기를 준비가 된 곳인지 계속해서 의문이 든다. 출산율이 낮은데 왜 아이를 안 낳을까 여기저기서 이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하는데 답은 간단하다. 아이를 기르는 게 너무 힘든 사회이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보육시설은 적고 그마저도 운에 기대야 하며 그 운을 기대해보는 데에도 ‘(그 때까지 아이를 전담할 수 있는)시간’이나 ‘(그 때까지 아이를 전담할 대타를 고용할 수 있는)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알아서’ 크기를 기대하며 덮어놓고 아이를 낳기란 쉽지 않다. 정말로 출산을 장려하고 싶은 거라면 “일단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말보다는 “일단 낳으면 이 때는 이렇게 저 때는 저렇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도울게! 이러저러한 인프라들을 만들어 놓을테니까 이걸 활용하면 그래도 할 만 할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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