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3. 엄마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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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3. 엄마의 자격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에는 고생을 할 대로 하고 정말 힘들게 얻은 것만이 값진 거라고 인정하는 이상한 풍습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가 최악인 건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불행배틀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누가누가 더 힘든가 대회를 열어 네가 아무리 힘들어봤자 그래도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고 그러니 내가 더 대단한 거라고 외치는 이들을 보고 있다 보면 결론은 우리 모두 다 같이 최대한으로 불행하게 살자는 건가 싶어진다. 이런 분위기가 엄마들의 삶을 예외로 둘 리는 없다. 조금 슬픈 게 있다면 이러한 불행배틀이 엄마들에게도 내면화되어 있고 가장 잘 아는 엄마들끼리 서로의 선택을 깎아내리곤 한다는 것이다. 

엄마들끼리의 불행배틀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고 사회적으로도 표면화되어있는 갈등은 아무래도 전업주부-워킹맘 구도일 것이다. 전업주부에게는 사회적, 정서적으로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혹은 이미 고립되었다는 두려움이 있다. 경력단절과 전업주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문제다. 하루종일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된 인정이나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괴로움이란. 반면, 워킹맘들은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워킹맘인 한 선배는 등원 때 자기를 보며 가지말라고 엉엉 우는 아이에게 하루쯤은 ‘그래, 그럼 오늘 하루는 가지말고 엄마랑 있자! 엄마랑 실컷 놀자!’고 말해주지 못하는 게 사무친다고 했다. 거기에 워킹맘은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엄마로서도 직업인으로서도 자꾸만 실수를 하고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자책하고 실망한다. 

그러다 보니 전업주부는 워킹맘들의 어떤 시간을, 워킹맘들은 전업주부의 어떤 시간을 부러워한다. 그래도 깔끔한 옷을 챙겨입고 나가 출근길에 좋아하는 커피 한 잔 사 마실 수 있는 시간, 아이 낮잠시간에 잠든 아이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잠깐 옆에 누워 잠이 드는 그 시간들 말이다. 그런 부러움들이 가끔씩 내면의 불안과 만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방식을 폄하함으로써 자신의 ‘옳음’, ‘행복’, ‘무고함’ 등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습성일까. “할머니나 시터들 손에서 큰 애들은 확실히 좀 눈치도 많이 보고 애 같지가 않다.”거나 “맨날 엄마랑만 있는 애들이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말들로 서로를 찌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분만 방식에서부터 수유 형태,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들까지 어떤 게 가장 힘들고 또 아이에게 좋은 것인지에 대한 순위매기기는 계속된다. 자연분만-제왕절개, 모유수유-분유수유, 직접 만들어먹이는 이유식-배달이유식, 어린이집-방문교육같은 식으로 말이다. 

자연분만-제왕절개

우선 분만부터 시작해볼까. 이미 밝힌 바 있듯이 나는 무통 없는 자연분만을 했다. 어쩌다보니 출산형태 중 거의 고통의 극한점에 있다고 회자되는 방법을 택하게 됐는데 역시 그것은 내가 겪어본 고통들 중 단연코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제왕절개를 할 걸, 같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사뿐사뿐 걸어 신생아실에 수유를 하러 갈 때 옆 병실의 제왕절개 산모가 등을 새우처럼 구부린 채로 링겔 거치대와 남편을 붙잡고 가까스로 걸음을 떼는 연습을 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왕절개를 한 여성들은 온갖 사람들에게 ‘그래도 너는 그렇게까진(?) 힘들지 않았잖아.’ 같은 말들을 들어야 한다. 진통도 겪지 않고 그저 마취하고 수술 하는건데 뭐가 고생이고 아프냐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의 출산 고통 순위는 예로부터 “자연분만>>>>>>제왕절개”인 거다. 어이없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애는 자연분만으로 낳아야 한다는 신화가 여전히 조국의 구천을 떠돌아다닌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무통을 맞는 게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오히려 해롭다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풍문이 인터넷 상에선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연분만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열달 동안 배 속에 있던 아이가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나올 준비를 해 산모가 진통을 느끼고 아이가 산도를 통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조건들이 맞아 떨어졌을 때 ‘자연스럽다’는 의미일 뿐 ‘당연하다’는 뜻이 아니다. 제왕절개는 많은 것들을 고려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산모의 병력(자궁경부암, 자궁의 혹 등이 있던 경우 혹은 심장병, 폐병, 뇌동맥류 질환 등이 있는 경우), 산모의 골반과 태아의 크기, 태아의 위치(예정일이 임박해서도 아이가 역아일 경우 자연분만은 불가능하다), 첫 출산의 형태(첫 출산이 제왕절개일 경우 다음 출산을 자연분만으로 진행하기는 어렵다. 브이백이라는 방식이 있지만 이 역시 갖춰야 하는 조건들이 있고 산모의 위험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흔한 방식은 아니다.), 양수의 양(양수과소증의 경우 아이가 내려오지 못해 제왕절개가 필요하다.) 에 따라 제왕절개가 권장된다.

이처럼 제왕절개와 자연 분만은 산모와 태아가 처한 상황에 따른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자연분만이 늘 옳은 것이 아니다. 둘의 장점과 단점은 무수히 많으며 무엇보다 제왕절개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낭설이다. 다만 제왕절개는 말 그대로 개복수술이기 때문에 부차적인 수술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 앞서 말한대로 몸을 가누고 움직이는데 자연분만보다 더 많은 시일을 필요로 한다. (제왕절개 산모의 입원일은 5~7일이며 자연분만 산모의 입원일은 3일이다.) 반면, 자연분만은 아이를 산도에서 밀어내는 과정에서 산모가 과도하게 힘을 주게 되며 또한 이 과정에서 골반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제왕절개보다 산모의 뼈와 관절에 더 큰 타격을 입힌다. 공통된 후유증 만큼이나 서로가 다 알 수 없는 각자만의 후유증도 많다.   

수유

다음 라운드는 ‘수유’다. 수유의 형태는 완모(완전 모유수유), 완분(완전 분유수유), 혼합(모유수유+분유수유)로 나뉜다. 나는 만 7개월 동안 완모를, 그 이후부터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는 완분을 했다. 초반에 완모를 고집했던 건 당연히 모유수유가 아이의 면역력 형성과 두뇌발달, 애착 형성 등등에 좋다는, 지옥의 수유캠프에서의 교육(을 가장한 세뇌) 덕분이었다. 혼합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모유와 분유를 병행한다는 게 굉장히 이상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엄마가 원하는 비율이 혼합은 거의 유니콘 같은 얘기다. 유두혼동(모유와 분유수유를 병행하는 아이가 엄마 젖꼭지와 젖병꼭지를 혼동하게 되어 엄마 젖을 잘 빨지 못하게 되는 현상)도 잦고 아이가 엄마 가슴이든 젖병이든 선택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이도저도 아니고 양 쪽의 어려운 점만 고스란히 다 짊어져야 하는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모유수유의 어려움이야 이전 화에서 많이 언급했으니 분유수유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우선 이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3분 카레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거다. 모유수유는 아이가 배고파하면 일단 젖을 물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단추를 푸르거나 티셔츠를 올리면 끝. 하지만 분유는 물을 끓이고 그 물을 또 식혀서 젖병에 담고 거기에 분유를 타고 뭉치지 않게 잘 흔들어야 한다. 너무 간단한 과정인 것 같은데 이게 왜 3분 카레가 아니라는 건지 의아한가?

이 간단한 과정이 아기에게는 너무나 길고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자지러지게 울 때면 대체 내가 분유를 지금 몇 스푼 넣었는지 까먹어서 다 쏟아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분유를 타야 하는 일이 한 두번 생기는게 아니다. 게다가 젖병 설거지는 또 어떻고. 젖병과 젖꼭지를 다 분해해서 각각 전용 세척솔로 깨끗이 닦아준다음 소독까지 마쳐야 한다. 나는 젖병을 많이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열탕소독을 했는데 아이를 재우고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설거지한 젖병들을 삶기 위해 커다란 냄비에 물을 한가득 붓고 그 물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자면 영원을 사는 기분이었다. 젖병소독기가 있지 않느냐고? 젖병 소독기는 일단 최대한 물기가 없이 건조된 상태의 젖병을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지런해야 하며 기본적으로 1회 살균 소독에 40분~1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여분으로 준비된 젖병이 많아야 하고 그게 없고 소독기는 돌아가는 중인데 아이가 배가 고파 우는 상황이 된다면? 아, 생각도 하기 싫다. 게다가 분유를 먹으면 아이가 게우거나 토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영아산통 확률도 높아 모유 수유를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양육자들의 애가 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모유를 먹이든 분유를 먹이든 그저 각각의 어려움과 고됨이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건, 어떤 선택을 하든 늘 양 쪽 모두에 대한 비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돌까지 완모를 했다고 하면 자기 인생을 희생해가면서 아이에게 올인하는 유난한 엄마 취급을 받고 분유를 먹였다고 하면 아이보다 자기 한 몸 편한 게 중요한 이기적인 엄마 취급을 받는다.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인다고 하면 그렇게 키우면 아이가 까탈이 는다며 타박을 듣고 배달시켜 먹인다고 하면 아이가 엄마밥도 못 얻어먹고 안됐다며 비난을 받는다. 사정이 있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조금 일찍 보내면 아이가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차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세 돌이 넘은 아이를 원에 보내지 않고 방문교육 등을 하면 그렇게 애 끼고 있는 것도 안 좋다고 아이가 무슨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무례한 간섭들까지 감내해야 한다. 이런 말들 속에 파묻혀 있노라면 정말로 아아, 어쩌란 말이냐 하며 트위스트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서로 버티는 엄마들에게

육아라는 걸 직접 경험해보지 않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기회가 없다면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알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하도 굳은 살이 박혔는지 이제는 경험이 없거나 그 경험이 너무 오래되어 그것이 주는 편견에만 갇혀 있는 이들이 ‘엄마의 자격’을 운운하며 이래야 한다더라 저래야 한다더라 하는 말에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막연히 동지애를 느꼈던 엄마들이 자신과 다른 방법을 택한 다른 엄마들에 대해 모종의 평가를 하고 편을 가르며 그들의 방법을 폄하함으로써 자신의 선택과 결정만을 올바른 것으로, 더 나은 것으로 얘기하는 걸 볼 때면 속이 상한다. 그저 각자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했다고, 모든 선택이 최선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기증 나는 현실의 모서리를 버텨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 누가 더하고 덜할 것 없이 오늘도 참 많이 수고했다고. 같은 진창을 헤쳐나가고 있는 우리 만큼은 서로를 그냥 그렇게 바라봐줄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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