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2. 내 아들은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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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2. 내 아들은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될 거야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아들이네요

임신 20주, 어느 덧 임신 기간의 절반을 지나고 있었다. 몸은 가벼운 와중에 태동이 느껴져 아기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게 드디어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기의 성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16주 정기검진 때, 담당 의사는 이 쯤부터 성별 판별은 가능하지만 정확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했었다. 그래도 한번 보자던 선생님과 나의 의기투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정바당은 잔뜩 웅크린채로 움직이지 않았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그 날이 온 것이다.

이번주에 보는 정밀초음파는 일반 초음파에 비해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했다. 심장이나 폐와 같은 장기들이 정상적으로 형성되고 있는지 체크하고 손가락, 발가락, 눈, 귀 등 외부기관도 꼼꼼히 살펴보는 검사였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태아의 머리부터 시작해 얼굴, 몸통으로 내려오면서 하나하나 자세히 봤다. ‘이건 간이에요’, ‘이게 탯줄이구요’ 하는 설명과 함께 선생님은 중간중간 확대된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상체를 훑어본 후 허벅지 둘레를 재던 선생님은 “여기 보이시죠?”라며 포인터로 화면의 동그라미를 쳤다. 얼마나 여러 번 치던지,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사실 초음파를 보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도 도대체 거기가 어디라는 건지 잘 못 알아보는 경우가 허다했던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더라. 어차피 집에가서 동영상을 무한반복할테고, 그러다 보면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될테니 대충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한 말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선생님이 웃으며 “아들이네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뻔 했다. 

“네? 아들이요?” 

물음표를 오십개 정도는 찍어야 마땅할 정도로 크고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글쎄, 왜 그랬을까. 어차피 딸 아니면 아들, 50대 50의 확률일 뿐인데 나는 왜 그렇게 놀랐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확실치는 않다고 했지만 16주 정기검진 때 “딸인 것 같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반전 아닌가.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딸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의외의 결과에 놀란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 뿐인가.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서 아기는 언제나 ‘여자 아기’였다. 정바당이 아들이라는 얘길 듣고서야 내가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늘 정바당을 여자로 전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 내 상상속에서 아이는 나와 같은 모양의 메리제인 슈즈를 신고 있거나 원피스를 입고 남편의 발등 위에서 왈츠를 추고 있었다.

조금 더 솔직해져보자. 

‘무의식’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나는 아들보다는 딸아이를 바라왔다. 남자아이라는 얘길 듣자마자 누구보다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같았던 정바당과 나 사이에 갑자기 백만 광년 정도 되는 거리가 생긴 기분이었던 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 나는 외동딸이고 가까운 친척들 중에도 남자 아기가 없었다. 가까이서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남자 아기는 내게 무척 낯선 존재였다. 자신이 없었다. 여자로만 살아본 나는 아무래도 여자아이가 겪게 될 일들을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딸인 쪽이 아이를 이해하는데 좀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한거다. 어떤 일들은 반드시 경험해 봐야지만 알 수 있으니까. 그나마 딸아이 마음은 비슷하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남자 아기라면, 내가 모르는 영역에 있는 미지의 존재였다. 그래서 내가 더욱 서툴러지고 어떤 상황들에서 그 아이를 오해하거나 상처주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이 가설은 ‘모성 판타지’라는 걸로 꽤 금세 정리가 됐다. 내가 무슨 수로, 설사 성별이 같다 한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상처주지 않고 그 아이의 미묘한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겠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의 성별이 무엇이든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 수는 없다. 우리는 아마도 영영, 서로를 모를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이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그런 것과 전혀 관계없이 나는 서투를 것이고 실수할 것이고 우리는 상처를 주고 받을 것이고 용서를 구할 거라는 사실을. 게다가 이 아이는 나만의 아이도 아니다. 낳는 것이야 일정부분 온전히 나의 일이기도 하지만 키우는 것은 나와 남편의 일. 내가 미처 할 수 없는 일들은 그가 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아이가 소년일 때, 소녀였던 내가 짐작할 수 없었던 일들은 소년이었던 남편이 채워갈 것이다.

그러고 나자 나는 마침내 거대한 진실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떠올렸던 건 다름아닌 내가 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남자들이었다는 것을.

내 아들이 한국 남자가 되면 어쩌지?

정말로 그랬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같이 비열하고 무례했으며 때론 그저 범죄자였다는 것이다. 야자시간에 나를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문제집을 한 권 건네며 내 허벅지를 주무르던 국어 선생부터 이자까야에서 합석을 했다가 같이 노래방에 가자는 제의를 거절하자 일주일이 넘게 핸드폰에 욕설과 협박이 담긴 음성메모를 남기던 옆 학교 학생, 최종 면접장에서 내게 “외동딸이네요?”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했던 한 방송국의 사장까지. 회식자리에서 “야멧떼~~~기모찌가 와루이요~~~”하며 포르노 영상을 따라하던 차장과 야근 후 겨우 잡아탄 택시에서 내가 지금 아가씨를 납치하려고 하는 거면 어떻게 할건지 말해보라며 킬킬대던 기사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양했던 남자들. 어째서 그 순간 내가 아는 ‘괜찮은’ 남자들을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싶었지만 의문은 금방 풀렸다. 괜찮은 남자들은 너무 적었고 자신의 성별을 무기로 삼아 되도 않는 행패를 부리는 남자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illustration by 이민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저런 바람을 갖는다. 나 역시 그랬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부터 시작한 이 소망들은 생각할수록 몇 가지씩 더해져 끝없이 늘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단 하나만 꼽는다면 나는 나의 아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바랐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사회를 원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어느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아이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것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비명을 지르는 상대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을 꺼내지 말기를, ‘너무 예민하다’며 그들의 경험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저도 모르게 누리게 될 특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염치를 가졌으면 했다. 마찬가지로 어떤 생득적 이유로든 차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 맞서 싸워나가는 용기 역시 가졌으면 했다. 무언가가 불편하다고, 불쾌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으면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기를, 설사 본인의 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그런 마음은 무엇일까 헤아려보는 사람이기를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 성별 따위를 이유로 행동이나 태도에 제약을 두지 않고 자신이 지닌 가능성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펼쳐나가며 성장하기를 바랐다.

내 아들은 페미니스트가 될 거야

하지만 태어난지 얼마안 된 어린 아이들에게 조차 성별을 나눠 ‘여자애는 얌전해야지’, ‘남자애는 씩씩해야지’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이 길은 너무 험난해 보였다. 많이들 “여자애 키우기 무서운 세상”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나의 아들이 이미 자신쪽으로 기울어진 무게추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다. 아들이 나를 절망스럽게 만들고 불쾌하게 만들고 때론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그들처럼 될까봐 나는 정말로 무서웠다. 그러니 우주의 기운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이 만들어낸 모든 편견과 그에 기반한 성역할을 물려주지 않을 책임이 나에게 있었다. 나는 정바당이 최초로 만나는 사람이고 사회이고 세상이니까. 아이가 살아나갈 세상을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것과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것은 결국엔 같은 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 부분에 있어 생각이 같았다. 우리는 아이에게 파란색 옷만 입히지 않을 것이며, 아이에게 “남자니까-여자니까”, “남자답게-여자답게”로 시작하는 말을 결코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양가 부모님께도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다. 우리는 정바당이 양성성이 잘 발달된 남자아이로 자라나길 원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 저러한 주의가 필요하니 협조해 주시길 요청드렸다. 부모님들이 어디까지 받아들이신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좋은 일이다.’ ‘당연하다.’ 같은 반응이셨다. 덕분에 그날 밤도 잠자리에 누워 정바당에게 늘 그래왔듯이 너는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될 거고 너의 성년식에 우리는 둘러 앉아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를 볼 거라고 굿나잇 인사를 했다. 너의 롤모델은 여전히 퓨리오사라고.

나의 아들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당연히 그렇게 될 거야, 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가도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에 휩싸이곤 한다. 당장 유치원만 들어가도 남자아이는 자신에게 예쁘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한 초등학교 교실 게시판에 붙어있는 ‘남자에게 인기없는 여자’ 설문조사 결과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김치녀’라고 적혀 있는 사진도 봤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는걸까, 하는 암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한 명의 페미니스트를 더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페미니스트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리고 나의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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