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본다 5. 거의 정반대의 행복

생각하다육아

엄마, 본다 5. 거의 정반대의 행복

Ah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육아서는 읽지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쓴 글은 대체로 열심히 읽는 편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육아는 특히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대목들로 꽉 채워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공을 들일 필요없이 그저 활자를 읽는 순간 그 이야기를 흡수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 독자에게 ‘에세이’만큼 매력적인 장르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쓴 것이어도 어쩐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얼마전 작년에 읽은 책 목록을 정리하면서 아이를 낳고 난 후로 본 책들 중 대부분이 에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반면 좋아하던 ‘(장편)소설’이나 ‘교양서’는 확실히 덜 읽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돌보며 한 시간 넘게 오로지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주, 끊어 읽어도 흐름에 큰 타격이 없는 책들에 손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육아 에세이’는 지금의 내게는 거의 완벽한 장르인 셈이다. 거기에 평소에 좋아하는 웹툰 작가 난다가 쓴 육아 에세이라니, 팬심으로 펼치는 책도 아주 오랜만이었다.

공격적인 행복

<거의 정반대의 행복>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결의 감정들을 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제목에도 나와있듯 ‘행복감’이다. 난다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주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인생에서 이런 폭발적인 행복감은 겪어본 일이 없다. 너무 행복해서 행복이 명치를 죽일 듯 때리는 그런 공격적인 행복. (...) 평범한 내가 자식을 낳았다는 것만으로 이런 기쁨을 가지다니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행복. (...) 창작과 성취의 건실하고 은은한 행복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지면에서 이 책을 얘기하는 건, 이 글들이 내게 어떤 종류의 ‘해방감’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나만 아이를 이렇게 깊이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해야할 지 순간순간 너무 벅찬 나머지 당혹스럽고 때로 불안하고 그러는 게 나 뿐만이 아니구나. 싶으면서 계속 그래도 괜찮다고 응원받는 느낌이었달까.

사랑의 적당함

특별할 것도 없는 고백이지만 나는 '엄마로서의 나'를 끊임없이 검열했다. 재미있는 건 내가 이기적이거나 어설픈 엄마처럼 보일까봐 걱정하는 동시에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엄마로 보일까봐도 두려워 했다는 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는 때때로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이 ‘적당함’을 증명하고자 했다. 아이에게 푹 빠져있는 엄마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를 너무 사랑해서 나 자신을 잃지도 않았으며 아이를 뺀 나만의 인생 역시 존재하고 아이 말고도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여전히 많다는 걸 보이려고 애썼다. 비혼이거나 무자녀인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내가 너무 아이 얘기만 한 게 아닌가 신경이 쓰였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면 아이와 관련되거나 아이와 함께있을 때 찍은 사진만 연속으로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확인하곤 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만큼은 여전히 나와 남편의 사진으로 남겨뒀다.

왜냐하면 나는 모성애 신화가 불편하고 모두가 나를 엄마라는 역할로만 호명하는 상황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서사에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 그런데 그걸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때 듣게 되는 말들이 하나같이 불편했다. 역시 대단하다며 모성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쪽이든 여자들은 애를 낳으면 애한테 너무 빠져서 자기 생활도 남편과의 생활도 뒷전이라며 심각하게 얘기하는 쪽이든 비슷했다.

나의 적당함을 더 이상 증명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난다의 글들을 읽으며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커졌다. 나는 더 이상 내 사랑이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지 않다. 엄마들은 늘 너무 많은 걸 증명해야한다. 내 남편이 이런 일로 고민을 하던가? 도대체 무슨 기준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못하면 이기적이란 얘길 듣고 또 아이에게 다방면으로 충실하고자 하면 유난이란 얘길 듣는다. 내가 어떻게 하든 내가 엄마인 이상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아이와 나의 삶을 완벽히 분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거대한 착각이었다. 얼마전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에 아이를 데리고 갈지, 아니면 남편과 둘이만 갈지 고민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여행이 될 것이기에 생각이 길어졌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했을 때 천천히 벌어져 오랫동안 다물어지지 않는 아이의 입과 상기되는 뺨은 날 황홀하게 했다. 고작 오래된 쇼핑몰 건물에 걸린 만국기와 작은 전구들일 뿐인데 그걸 쳐다보던 아이의 표정이 내 인생의 ‘핵심기억’이 되는 식이었다. 동시에 아기의자가 있는 식당이 어딘지 알아보는 수고가 없는 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만능감이 들었다. 무자녀일 때는 일상적이었던, 오로지 나의 기분만 돌보면 되는 시간들이 내게 무언가 엄청난 영감이라도 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아이를 위한 여행이냐 나를 위한 여행이냐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느끼는 서로 다른 종류의 행복일 뿐이었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아이를 사랑하고 또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아이를 적당히 사랑할 수도 그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도 없다. 출산과 육아가 내 삶에 끼친 해악이 많지만 그것들과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별개다. 하지만 어떤 서사가 아무리 못마땅해도 그 서사 자체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마음가짐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엄마라는 서사는 너무 많은 금기와 권고로 채워져 있고 나는 늘 어떤 퀘스트를 통과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신경쓰고 싶지 않다. 그러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는 내내 했다. 이제는 아이가 내게 가져다준 행복에 집중해 볼 생각이다. 이전의 내가 누렸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거의 정반대의 행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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