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본다 3. 컨택트

생각하다영화

엄마, 본다 3. 컨택트

Ah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새해다. 하지만 다이어리에 벌써 몇 번 2017이라는 숫자를 적었다가 지웠을만큼 아직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느덧 1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지난 해와 올해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새해를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해를 정리하고 떠나보내는 일종의 ‘의식’같은 게 필요하다. 나는 오랫동안 여러 카테고리를 정해(영화, 숙소, 식사, 물건 등등) 그 해의 베스트탑10을 뽑는 전통을 지켜왔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렵게 됐다. 양육자로서 그 어떤 카테고리든 10개를 뽑는 건 무리다. 후보가 10개만 되도 감지덕지니까. 그래서 올해는 방법을 좀 바꿨다. 딱 하나씩만 뽑는걸로 말이다. 2017년의 영화는 컨텍트(arrival)다. 

<컨택트>는 언어학자인 루이스와 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는 루이스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던 때부터 자라난 아이와 함께 때로 즐겁고 때로 나쁘다가 결국 루이스가 병원에서 울부짓는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리고 장면은 곧장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도착한 날로 넘어간다. 루이스가 외계 생명체들이 이 곳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동안에도 루이스와 딸의 이야기는 중간중간 삽입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대목들이 좀 불안했다. 영화가 어설프게 모성애 같은 것을 얘기하려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기우였는지 알 수 있다.)

시지프스

아이를 낳고 두어달 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그 날도 아이를 재운 후 남편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손을 꼭 잡고 밤인사를 나누다가 “우리 다음 생에는 딩크로 살자. 어때?”했다. 이번 생에는 어쨌든 낳아봤으니 다음 생에는 그냥 우리 둘이서만 평생 한 번 살아보자고. 그게 좋겠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ㅡ정말로 아주 조금ㅡ흐른 후에 나는 그 말을 무르고 싶어졌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 생에도 꼭 이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이가 사랑스러워서도 맞고 아이가 커갈수록 새로운 기쁨이 있어서도 맞고 아이가 나를 너무 사랑해줘서도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시 한 번 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택하겠다는 건 그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상실, 슬픔, 고통까지 감수하겠다는 걸 의미하니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걸까. 나는 왜 마음을 바꾼 걸까. 여전히 임신과 출산이 내 몸에 일어난 가장 해로운 사건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고 내게 아이가 생기면서 그간 이 사회에서 겨우 유지해오던 2등시민 자리에서도 쫓겨나 3등시민이 됐다고 자조하는데 말이다.

일단 다시 <컨택트>로 돌아와보자. 후반부에서 루이스는 아주 중대한 선택을 하는데 이는 거의 즉각적으로 시지프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커다란 바위를 열심히 굴려서 언덕에 도착하는 순간 그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그것을 굴리는 시지프스 말이다. 무엇이 닥칠지 알면서도 감내하고 마침내 그것을 선택하고야 마는 루이스의 모습은 숭고함을 자아낸다.

한 번 더

나에게 루이스처럼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철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겨우 가능한 그런 중차대한 선택의 순간이 정말로 닥친 것도 아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아무것도, 내 배 속에서 갓 나온 아이가 내 가슴팍에 얹어져 새근대던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의 날들 중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그 날들을 한 번 더 살고 싶다고 말이다. 그 속엔 물론 애 재우다가 내 인생 다 가겠다는 한탄을 하며 울고 불던 날도 있고 도통 이유를 모르겠는 아이의 짜증과 땡깡을 하루종일 받아내다가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날도 있다. 그런데도 루이스의 대사를 빌어 고백하자면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산다면 ‘모든 걸 받아들이고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순간에 깃든 영원성을, 소중함을 내가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언젠가 이앓이를 하느라 잠에서 깨 삼십분이 넘게 울던 아이를 안아 달래면서 번뜩 “아, 이 순간은 우리에게 절대로 다시 오지 않을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힘들어서 정말 온 몸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은데 그런데 여하간 내가 아이를 이렇게 안아서 등을 문지르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다 지나갈거라고 속삭이는 이 순간은 지금 단 한 번 뿐이라고. 문득 깨달았다. 정말 다 그만둬버리고 싶다 생각해도 시원찮을 때에 어쩌다 그런 생각이 내게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제 정말로 안다. 아이와 함께 살면서 알게 되었다. 나와 아이가 보내는 시간들은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모든 순간은 한 번 뿐인건데. 그런데 나는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빴던 날들에는 물론이고 좋았던 날들에도 그냥 좋은거지 뭐,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거나 그런 마음이 어떤 건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살면서 비로소 나는 이 말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의미 없는 가정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묻는다. 아이랑 사는 건 어떠냐고, 남편과 둘일 때 보다 좋으냐고.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을 받았으니 대답을 했지만 자리에 따라 묻는 이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내 대답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 어떤 대답도 나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했었는데 <컨택트>를 보며 그건 애초에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가 없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이제 내게 어떤 의미도 없다. 영화 말미에 루이스가 이안의 “아이를 갖고 싶어?”라는 질문에 떠올린 것은 ‘baby’가 아니라 그녀의 딸, 수영을 잘하고 글 솜씨가 있고 ‘막을 수 없는’ ‘Hannah’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이제 ‘아이’란 곧 지금 나의 아이다. 반묶음한 내 머리칼들을 유심히 쳐다보며 수줍게 웃고 신기하다는 듯 쓸어보고 ‘호키포키’ 노래가 나오면 어디서든 빙글빙글 돌아야만 하고 하루종일 귤과 딸기를 엄청 먹어서 뒷통수에서도 달콤한 냄새가 나는 19개월 된 남자 아이.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 아이가 내게 와준 것에 늘 감사한다. 그 아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아니, 사실 상상하고 싶지조차 않게 됐다. 고작 19개월만에 말이다.

쓰다보니 아이를 향한 연서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컨택트>는 정말로 놀라운 영화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내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어떤 태도와 자세로 내 삶에 임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루이스는 선택의 순간에 앞서 이안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꿀 건가요?”라고. 지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질문이 있을까. 독자 여러분께 조금 늦은 새해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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