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1. 남자아이 키우는 법,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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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11. 남자아이 키우는 법, 따로 있다?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정바당이 만 1세가 되었다. 

기쁨과 환희로 얼룩졌던 첫 생일파티 이야기는 잠시 넣어두고, 육아란 산 넘어 산이라고 얘기 했던가. 아이의 돌을 맞이해 새로운 육아 미션이 찾아왔다. 바로 훈육. 

안그래도 좋고 싫음에 대한 표현이 분명하고 요구사항이 정확해져가고 있었는데 어설프지만 걸음마를 몇 발자국 뗀 후로 정바당은 엄청난 자신감과 의지에 그야말로 불타올랐다. 하루종일 손가락으로 이 곳 저 곳을 가리키며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요구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이면 냅다 던졌다. 펜스로 막아두었던 장식장을 흔들고 그 위에 올려두었던 캔들과 문진, 액자같은 것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싱크대 수납장과 집 안의 온갖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었다. 매번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기도 힘들었고 또 무엇보다 통하지도 않았다. 무얼하든 다 안된다고 하니 아이도 짜증 만발이었다. 때가 온 거다.

다사다난한 훈육

폭풍검색과 육아서 독파로 ‘훈육’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생후 12개월, 자율성이 생기고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때란다. 우선 지금이 가장 기초적인 ‘해도 괜찮은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제시해야 하는 시기인 건 확실해 보였다. 다만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요약해보자면 어떤 것이 위험하고 나쁘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든 나이라 설명을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에 남편과 상의 끝에 우선 집안에서는 위험한 것들을 치워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이의 행동을 제한할 상황을 최소화 시키기로 했다. 중요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행동이라면 일단 아이의 도전정신을 존중하기로 한 거다. 하지만 모든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꼭 필요한 경우에 아이를 제지시킬 방식이 필요했다. 

우리만의 훈육 사인을 정했다. ‘안 돼.’가 너무 부정적인 뉘앙스라는 말들이 있어서 ‘그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톡톡 가볍게 두드리기로 했다. 아이가 손에 전선같이 위험할 수 있는 물건을 쥐고 있는 경우에도 완력을 사용해 빼앗는 것과 같은 방식은 최대한 배제하기로 했다. 대신 다른 물건을 쥐어주면서 아이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다른데로 돌리기로 했다.

사실 간단한 결론이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했다. 아이가 하는 행동 중 정말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을 추려야 했고 어디까지 수용해 줄지를 미리 정해야 했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심술을 부릴 때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는 나의 태도나 반응들도 꼼꼼히 살폈다. 아이의 성향이 어떤 쪽인지를 파악해 대략적이긴 하지만 이런 특성을 지닌 아이들에게 보다 효과적이라는 방법들도 정리해봤다. 무엇보다 나와 남편이 일관된 태도로 아이를 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이 방침들을 유지해 나가면서 정바당의 짜증이 훨씬 줄었고 오히려 제한을 덜 두자 굳이 그 행동을 하려는 시도도 줄어들었다. 자율성을 존중해주어서인지 꼭 필요한 경우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면 아이도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받아들이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정바당의 성장에 따라 이 원칙들을 무수히 업그레이드하고 보완해나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기초를 잘 다져놨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러니 미션 컴플리트!
라면 좋았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이제는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전까지 육아서적을 거의 읽은 적이 없었는데 훈육법을 찾으면서 꽤 많은 책들을 들여다 보게 됐었다. 흥미롭게도 많은 육아서적 저자들이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키우는 법이 달라야 하며 남자아이를 키우는 게 여자아이보다 훨씬 힘들다고 전제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갓 1년차 엄마이고 남자아이인 정바당만 키우고 있을 뿐이지만 어쩐지 미심쩍은 구석들이 있었고 이 이야기들이 마음 한 켠에 찝찝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다 그 글을 보게 됐다.

남자아이는 세 살 이상이 되면 대형견 훈육하듯이 벌과 보상을 확실히 해서 가르쳐야 한다.

머릿 속이 연기로 자욱해진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였다. 노키즈존이 여자아이 때문에 생긴 건 아닌 것 같다. 가만히 못 있고 끊임없이 가게 물건을 만지고 뛰어다니는 애들은 거의 남자애들이고 이런 아이들을 정말 알아듣게끔 훈육하는 부모가 거의 없다. 오히려 남에게 피해를 끼쳤는데도 남자애가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런 생각의 흐름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이 글을 쓴 분은 동감을 표하며 아들 양육을 고민하는 분에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대형견 편을 보라는 육아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마 이런 얘기인 것 같다. 깊은 빡침을 금할 길 없지만 최대한의 선의를 갖고 해석하자면, 여자아이에게 세상은 유독 엄격하다. 남자아이들에게 ‘용기’ 혹은 ‘대범함’으로 여겨지는 행동들이 여자아이들에게는 ‘기가 쎈’ 내지는 ‘드센 행동’으로 여겨진다. 나도 경험해봐서 잘 안다. 근데 그래서 그게 남자아이들을 잡아서 해결할 문제인가?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는지 너무나 황당했다. 그저 한 명의 극단적인 의견이라고 넘기기에는 그 글에 동의하는 이들이 꽤 많았고 성별에 따라 양육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 쉽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훈육 서적을 검색해보면 ‘아들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육아인들 사이에는 공공연히 통용 되는 믿음이 있다. 바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키우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제목들을 가진 책들이 육아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큰 소리 내지 않고 우아하게 아들 키우기’, ‘리더십 있는 남자 아이 키우는 법’, ‘아들을 잘 키운다는 것’, ’아들을 잘 키우는 법’, ‘엄마는 아들을 너무 모른다’,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비슷비슷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들이 하는 말이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놀라운 건 몇 가지 책들이 남자와 여자의 ‘본능’을 원시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이어지는 흔들림 없는 흐름으로 파악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역할 분담을 했으며 남자의 본능은 ‘수렵’에 어울리고 여자의 본능은 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어울린다. 그리고 그 본능은 당연하게도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는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교육법이 필요하다. 특히 남자아이와 다른 성별인 엄마가 아들을 키우는데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그들이 말하는 ‘남자아이’ 양육법은 다음과 같다.

부모는 아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아들을 너무 착하게만 키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착한 아들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착한 아들로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만들어놓은 틀에 억지로 맞추기보다는 아들이 가진 욕구를 인정하고 그것을 만족시켜줄 때, 아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려면 무엇보다도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마음에 일렁이는 여러 가지 감정을 받아줘야 하지요. 아들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울어도 부모는 부모답게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들을 잘 키운다는 것)

남자아이를 다룰 때는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정과 존중을 받는다고 느끼는 남자아이는 스스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리틀 남자인 아들은 자신이 어른 대접을 받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 의젓해지고 책임을 질 마음가짐으로 대화에 응합니다. 부모가 어른으로 군림하며 관절인형처럼 조종하려드는 대화는 아들을 응석받이로 만듭니다. (큰 소리 내지 않고 우아하게 아들 키우기)

아들은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을 좋아하고 고운 음성을 원합니다. (큰 소리 내지 않고 우아하게 아들 키우기)

아무리 읽어도 이 문장들 속 ‘아이’라는 말 앞에 굳이 ‘남자’라는 말이 붙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이게 어째서 비단 남자아이에게만 유효하며 특별히 남자아이에게 효과적인 육아법인지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아예 노골적으로 성차별적 인식과 편견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최근에 유행하는 남자아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교육소를 운영하며 본인을 ‘남아미술 교육 전문가’로 소개하는 이는 창의력은 저항정신에서 나오는 건데 그런 특성은 남자애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고 얘기한다.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고. 세상에. 여성은 안 그런 줄 알아요?

사실과 차별 사이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에는 생물학적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뜬구름처럼 떠다니는 풍문들 중에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에 비해 언어발달이 늦다는 것처럼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이 ‘사실’이라고 칭할만한 것들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남자아이의 언어 발달에 더 도움이 되는 방식을 택할 수 있고 또 그럴 필요 역시 있다. 하지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보이는 모든 차이의 유일한 원인이 성별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다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타고난 차이이고 이후에 교육된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져만 간다. 정바당과 비슷한 개월수의 여자 아이들을 보면서 행동반경이 정바당보다 좁고 덜 활동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조금 지켜보다보니 아무래도 남자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가 위험한 곳에 올라도 크게 제지하지 않고 지켜보길 택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의 부모는 좀 더 빨리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아이를 안아 다른 곳에 데리고 가곤 했다. 그러니까 성별을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할 가능성 자체가 애초에 차단되기도 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차이를 강화하는 것은 사회화와 교육이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성차별에 기반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여자아이는 물론 남자아이 역시 억압한다.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캠페인이 있다. 글로벌 브랜드 Whisper의 ‘Like a girl’. 여자답게 뛰고 여자답게 공을 던져보라는 말에 성인 여성과 남성은 정확히 우리가 상상하는 그 모습을 재현한다.

성인 남성은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며 웃기도 한다. 어린 남자아이는 뭐 이런 시답지 않은 걸 시키냐는 표정을 짓는다. 같은 요구를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했을 때, 아이들은 그저 열심히 뛰고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진다. ‘여자답게’가 ‘소극적이고’ ‘얌전하게’ 굴라는 걸 의미하게 된 건 결국 특정 연령 이상에서 습득된 사회화의 결과물이라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 캠페인이었다. 올해까지도 같은 태그라인 아래 다양한 영상들이 제작됐는데 그 중 참가 여성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들었던 일’이 무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각자의 대답을 적은 박스를 쓰러뜨리고 발로 차버리는 영상은 몇 번을 다시 봐도 뭉클함과 동시에 묘한 쾌감을 안겨준다.

여성과 남성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우리가 모두 다 안다고 말하기에 우리는 성별 말고도 너무도 다른 다양한 조건들 속에서 존재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다양한 카테고리이고 그것 중 하나를 특권화, 본질화 시키는 것은 너무나 게으른 태도 아닐까. 그것도 이제 막 태어나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는 이 신인류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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