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5. 태동의 기억

생각하다임신과 출산육아

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5. 태동의 기억

Ah

일러트스레이터: 이민

아이를 돌보는 게 유난히 힘든 날이 있다. 

아이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고 내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최악으로 둘 다일 수도 있다. 예쁘고 힘든 하루들이 매번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힘든 건 아니다. 어떤 날은 예쁨 지수가 유난히 높아서 ‘드디어 정바당과 내가 합이 맞는구나.’싶어 뿌듯하다가도 다음날은 힘듬 지수가 월등히 높아서 ‘대체 나는 언제나 베테랑이 되나. 아니 애초에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싶은 게 육아다. 그럴때면 임산부 시절이 그립다. 임신기간 동안 입덧, 치골통 등으로 이런저런 고생들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1인분의 인생만 살던 때. 어찌됐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자고 싶을 때 자는 일말의 자유라도 있던 그 때 말이다.

정바당을 만난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쩌다 엄마가 됐다. 남편과 나는 어느 영화에서처럼 ‘젊고 부주의해서’ 부모가 된 케이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해 본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보였을 때 왜 그렇게 신이 났었는지. 언젠가는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꼭 서프라이즈 선물 같았다. 하지만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내 배 속에 무언가가 아니 누군가가 있다는 걸 믿기 힘들었다. 나는 확신이 필요했고 서둘러 산부인과 예약을 잡았다.

가장 빠른 일정으로 예약을 잡았는데도 진료를 보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일주일이었다. 나는 그 일주일동안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테스트기를 했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던 날에는 하루에 두 개를 썼던 적도 있다.) 내 몸에 어떤 사건이, 그것도 내 몸 입장에서 보자면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답답할 노릇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병원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받고 “축하합니다. 임신 N주네요.”소리를 들어야 모든 게 확실해 질 것 같았다.

그 전에도 초음파를 본 적은 있었지만 그 날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다. 아기집, 태반, 그리고 아직 팔 다리도 없이 꼭 꼬리 달린 작은 공룡같던 무언가. 쿵쾅쿵쾅 심장소리도 들었다. 내 몸에서 내 심장소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숨소리를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꽤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초음파실 밖에서 다른 모니터로 화면을 보고 있던 남편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정말 울뻔 했잖아.”라며 울먹였다. 나도 그랬다. 그제야 내가 임신을 했다는 게 조금은 실감이 났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또 비슷했다. 내 배 속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남편도 비슷한 처지라 내 배를 한참 쓸어도 보고 어느 날엔가는 그래도 뭔가 들리지 않겠냐며 내 배에 귀를 갖다 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우스운 풍경이지만 그 때는 정말로 뭔가 반응이 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다. 그러는 동안 내 배 속에 자리잡은 1센치 짜리 공룡은 젤리곰이 되고 또 제법 길다란 팔 다리를 갖춘 미니어처 인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제 태동을 느낄 수도 있다고 했고 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첫 태동은 보통 임신 20주 전에 느낀다. 임신 기간 중 전성기가 시작되는 때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 시기 전에 입덧이 마무리되고 유산 위험도 줄어든다. 본격적으로 배가 불러오기 전이라 몸도 가볍다. 태동이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무언가를 이토록 알고 싶은 열망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내가 그것이 태동이란 걸 알아챌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난생처음 겪게될 그 순간을 내가 다른 것과 헷갈리거나 놓치지 않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배 속에서 팝콘이 터지는 느낌’, ‘거품이 나는 느낌’같이 굉장히 시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신기하면서도 전혀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찾아볼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둘만의 일

그런데 정말이었다. 정말로. 드디어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건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촉감이었다. 처음이라 확실지는 않았지만 태동을 느낀 것 같아 급하게 메모를 해두었었는데 그 감각이 정확했다는 건 나중에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그 느낌이 아주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처음 내가 떠올린 건 조금 엉뚱하게도 오키나와의 대형수족관과 그곳에서 봤던 아주 커다란 가오리였다. 정작 그 때 감탄해가며 열심히 사진에 담은 건 그 곳에서 가장 유명한 고래상어였는데 내 몸은 나 조차도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해냈다. 빠르게 움직이는 다른 물고기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이 완벽한 포물선으로 유유히 물살을 가르던 가오리. 그건 정말 완벽하고 내밀한 경험이었다. 아이는 내 배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걸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어떤 해석도 필요치 않았다. 완벽하게 우리 둘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내가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게 놀라웠다. 그제야 나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목숨이 붙어있는 어떤 것을 내가 품고 있음을, 내가 정말로 어떤 존재와 몸을 나눠 쓰고 있음을. 그 때부터였다. 임신이 단순히 결혼처럼 내 인생의 이벤트가 아닌 내 몸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온 건. 내 몸은 온갖 일들이 일어나는 하나의 장소였다. 

처음에는 수족관이었고 그 다음엔 아주 넓은 바다였다. 초반에는 그저 유유히 헤엄을 치는 것 같았던 정바당은 아무래도 여기가 심해바다인줄 아는지 잠수도 하고 종종 스킨스쿠버같은 것도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광경이 그려졌다. 다음은 아주 구불구불한 미끄럼틀이었다. 아이의 방향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내키는대로 방향을 전환하며 이곳 저곳을 누비던 아이는 언제부턴가 웨이브를 탔다. 잔잔하면서도 커다란 파도를 타며 반짝이던 근사한 서퍼들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거대한 핀볼 게임판이 되었다. 정바당은 당연히 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조그만 공이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툭! 하고 어디론가 튀어올라 한바퀴 조용히 돌고는 또 툭! 튀어간다. 얌전히 있는 것 같아 쓰다듬으며 말을 걸려고 배에 손을 댔다가 놀란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마지막으로 본 하얗고 두툼한 체육매트와 뜀틀같은 게 된 적도 있다. 그 위에서 구르는 게 영 성에 안찼는지 이후 며칠은 다람쥐통이 된 것 같았다. 거기에서 360도 회전같은 걸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내 배 속인데 제딴에는 엄청 큰 궤도를 그리며 빙글대고 있을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났다. 마지막엔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같았다. 정바당이 데이빗 보위의 목소리에 맞춰 양 팔과 다리를 쭉 편 채로 우아하게 떠다니고 있는 광경을 상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가끔씩 태동을 느끼던 때의 감각을 되살려보려고 애를 쓸 때가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말도 안되게 가깝게 있던 때, 아이와 내가 우리 둘만의 감각을 공유하던 때가 정말로 그립다. 게다가 정바당이 그 곳에서 무얼 하며 지냈는지 절대 알 수 없다는 게 오히려 그 경험을 더 낭만적으로 만들어준다. 그야말로 영원히 비밀에 부쳐질 시간들인 셈이다. 하지만 홀쭉해진 배로 그 때의 양감과 부피감을 재현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며 배를 있는 힘껏 부풀리고 손을 얹어보지만 이 곳에 수 킬로의 양수가 들어차있었고 그 곳에서 아이가 무려 10개월을 살았었다는 걸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풀었던 가슴이 줄어들고 튀어나왔던 배꼽이 제자리를 찾게 된 동안 정바당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베싯거릴 줄도 알게되었고 나를 꼭 끌어안아 주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내가 평생 지은 적 없는 표정을 짓게 된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되어 웃는 것이다. 아이가 나를 좋아하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저 내가 나이기 때문이라서 무조건적이고 거기에는 단 한치의 의심도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너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한번씩 가슴이 뻐근해진다. 우리의 이 시기는 아주 짧을 것이고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내 배 속을 떠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는 언젠가 내 품 역시 떠날 것이다. 태동의 기억을 더듬을때면 역설적이지만 필연적으로 점점 더 멀어져가는 일만이 남은 우리 둘 사이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된다. 가장 친밀하고 가까웠던 때의 기억을 보듬으며 가장 멀어질 때를 어루만져 본다. 아이를 재울 때 하는 ‘엄마는 항상 바당이 옆에, 엄마는 항상 바당이 곁에.’라는 인사가 사실은 나를 위한 것임을, 문자 그대로 우리가 정말로 늘 함께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만들어낸 것임을 영원한 비밀에 부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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