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4.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거다

생각하다임신과 출산육아

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4.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거다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정바당을 낳은 후론 어쩐지 모든 대화가 결국 비슷하게 흘러간다. 내가 정바당이 너무 예쁘다고 하면 “그래도 힘들지?”가 돌아오고 정말 힘들다는 얘길 하면 “그래도 예쁘지?”가 돌아오는 식이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정바당은 예쁘다. 육아는 힘들다. 사람들은 종종 이 두 가지 문장이 어떤 상관관계에 있다고 믿는 것 같은데,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예쁘지?

나는 하루에 평균 12시간 정도 일한다. 매일매일. 주말도 황금연휴도 나와는 무관한 얘기다. 정바당이 일어나 나를 찾는 아침 7시가 내 기상시간이자 출근시간이다. 이 때부터 아이가 밤잠에 들어가는 저녁 8시 전후까지 내가 하는 일은 일종의 돌봄노동이다. 아이를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는 일. 이렇게 쓰니 참 간단해 보이지만 다른 모든 노동과 마찬가지로 육아 역시 고된 일이다.

짧은 육아 경력이지만 그간을 되돌아보면 가장 힘들었던 건 정바당이 6개월일 때였다. 아기들은 주기적으로 ‘급성장기’라는 시기를 맞이하는데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폭발적으로 자라는 때다. 그러다보니 근육과 뼈가 아프기도 하고 인지 영역이 확장 되며 혼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시즌이 되면 짜증이 늘고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에게만 붙어있으려고 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그 전에도 몇 번 겪어본 것이었지만 이 때는 정말 유난했다. 수면교육을 빨리 시작해 낮잠도 밤잠도 모두 침대에 누워서 자장가를 불러가며 토닥이면 금방 잠들던 아이가 잠투정을 한시간 씩 하고 그마저도 겨우 재우면 삼십분마다 깨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뒤척이고 깨서는 악을 썼다.

급성장기

처음에는 정말 어디가 잘못된 줄 알고 병원까지 데려갔었다. 다행히 아픈 곳은 없었다. 하지만 위안이 되진 않았다. 어디가 아픈 것도 불편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그리고 크게 울 수 있다니. 한 달이 가까운 시간동안 매일 새벽에 깨서 2시간씩 숨이 넘어가게 우는 아이를 보는 건 정말 고통스러웠다. 아이가 원하는 걸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괴로웠다. 내가 오늘 잘 못 놀아줘서 그러나, 너무 일찍 재우려고 했나, 아니 너무 늦게 재우려고 했나, 수유양이 부족했나, 목욕 하면서 귀에 물이 들어갔나, 그냥 이제 잘 안 자는 아이가 된 걸까. 온갖 경우의 수를 꼽으며 자책했다. 무엇보다도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아이는 하루에 열 두 시간도 채 자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깨 있을때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계속 보챘다. 아이를 안느라 허리는 끊어지고 다리는 없어진 것만 같았다. 정말로 다 내려놓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딱 하루만 죽은 듯이 자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게 가장 절망적이었다. 회사원 시절에는 휴가라도 쓸 수 있었지만 주양육자라는 건 조금 복잡했다. 엄마라는 건 하나의 몸으로 1인분의 삶을 추가로 사는 삶이라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야 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그 날도 밤 11시가 다 되어 겨우 잠든 정바당은 어김없이 새벽 4시에 깨서 미친듯이 울었다. 나는 부서질 것 같은 몸을 겨우 일으켜 아이를 안고 토닥이고 괜찮다고, 엄마는 여기있다고, 항상 네 옆에 있다고 백번쯤 중얼거렸다. 수유도 했다. 오십분이나 젖을 물려서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지만 아이는 잠들지 못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자장가를 부르며 거실을 빙빙 돌았다. 벌써 새벽 다섯시 오십분이었고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거의 잠든 것 같은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그 옆에 쓰러지듯 누워 이불을 덮는데 아이가 다시 흐느꼈다. 얼른 토닥여줬지만 이미 틀렸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얼굴까지 시뻘개진 채로 넘어가게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 터졌다. “제발, 바당아. 제발. 제발 좀 자. 제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엉엉 울었다. 한참 울다보니 정바당의 울음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그래 바당아. 그래도 엄마가 힘든 건 알아주는구나.’ 뭉클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세상에. 정바당은 꺄륵꺄륵 웃고 있었다. 아, 현자타임이라는 게 이런 걸까. 나는 재빨리 눈물을 쓱쓱 닦고 아이를 번쩍 안았다.

엄마의 업무는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돌봄노동이 나의 주된 업무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기저귀와 분유가 떨어지지 않게 신경써야 한다. 장난감이나 육아용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할 때 검색하고 또 검색해서 개월수에 적당한 품목을 알아보고 또 브랜드 별로 비교해 봐야 한다. 잠든 아이의 손톱과 발톱을 잘라준다. 아이와 나갈 때 챙기는 가방에는 여분의 가제수건과 간식거리, 모자, 물티슈, 기저귀 등을 챙겨둔다. 오늘 아기가 했던 특이한 행동들에 큰 문제가 없는 건지 육아서적을 뒤져본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라도 오른 날에는 새벽에도 한 시간마다 열을 재며 아이 곁을 지켜야 한다. 아이의 방에 온도와 습도를 늘 적정하게 유지해줘야 한다. 이유식도 만들어야 한다. 아기 개월수에 맞는 식재료를 고르고 재료 손질법을 익히고 식단을 짜야 한다. 업무 스펙트럼이 넓어도 너무 넓다.

게다가 만 0세는 기본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조금 크니 제 딴에 눈치가 생기긴 했지만 그 뿐이다. 눈치와 함께 고집이 생겨서 컨트롤 하는 건 더 쉽지 않다. 1분만 눈을 떼도 현관에 나가 내 슬리퍼를 빨아먹고 소파에서 다이빙을 하듯 뛰어내린다. 언젠가 봤던 육아서에 ‘아기를 크기만 작은 사람으로 생각해선 안된다.’는 구절이 있었는데 정확하다. 아기는 인간과는 아예 다른 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존재와 하루를 꼬박 보내고 그를 돌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대화가 되지 않는 아이에게 하루 종일 말을 걸고 우리 이거 해볼까, 저 쪽에 가볼까, 하며 혼잣말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단 생각이 든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엄마'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서 언제나 아이를 위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엄마여야 한다. 졸려해서 침대에만 데려가도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하루종일 어쩌지 못해 유모차에 태워서 공원을 배회하던 날에는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아기 키우기가 이렇게 쉬운데 젊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애를 낳기 싫어하냐고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50대 부부들과 마주쳤다. 옆집 할머니는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가는 내게 뒤집기 막 시작한 그 맘 때쯤 애들을 옆에서 잘 지켜봐야 한다며 자기 아는 집이 엄마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애가 죽었다고 그런데 애기 엄마는 지금 어딜 가냐고 애는 누가 보고 있는 거냐고 묻는다. 모든 육아 책에선 ‘엄마’만을 호명한다. 자연스럽게 엄마를 주양육자로 상정하고 모든 부담을 지운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모유를 2년 먹이는 게 좋다고 권장한다. 배달 이유식은 먹이지 말란다. 엄마의 정성이 최고라고 한다. 매일 세 끼를 해먹이는 게 어떤 일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사랑한다

나는 정바당을 사랑한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가슴이 쿵 떨어지는 것 같은 일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갓 나온 아이를 내 가슴 팍에 얹고있던 그 순간부터 다시 그렇게 되었다. 하루에 정바당의 사진을 적을 땐 열 장, 많을 땐 오십 장도 찍는다. 아이를 바로 세워 안을 때 아이가 내 목을 꼭 끌어안으며 “엄마, 엄마아” 하고 부르면 “아이구 그래 이 놈아”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찌릿찌릿 쿵쾅쿵쾅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들만 아이에게 주고 싶다. 매일 밤 남편과 손을 잡고 잠들어 있는 아이를 가만히 쳐다본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건 불법이 아닐까, 진지하게 얘기한다. 아이가 나에게로 와 준 것이 마냥 기특하다. 내게 무사히 와 준 것만으로도 너는 내게 모든 걸 다 해준 거라고 지금까지 수백번 쯤 말해주었다.

나는 아이를 위한 일들을 기꺼이 한다. 매일 맛있는 것을 해주기 위해 새로운 재료 조합도 고민해보고 레시피를 찾아 헤맨다. 나는 하루에 카스테라 한 조각 밖에 못 먹더라도 아이는 시간 맞춰 이유식 3번, 분유 3번, 간식 1번을 꼬박 챙겨먹인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나 싶어 기웃거리고 재미있어 보이는 게 있으면 스크랩 해둔다. 피곤해도 날씨가 맑은 날에는 아이와 함께 꼭 짧게라도 산책을 하려고 한다. 아이가 성장통으로 힘들어 할 때면 조리원에서 배웠던 마사지 동영상을 보며 이 곳 저곳을 주무른다. 나는 못 씻어도 아이는 꼭 매일 머리를 감기고 씻긴다. 낯선 곳에 가면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는 아이를 보면 찡해져서 아이를 안고 괜찮다고, 엄마는 항상 네 옆에 네 곁에 있다고 속삭인다. 

이런 걸 모성애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책임감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내가 씻겨 주지 않으면 씻을 수 없는 존재를 향한 아주 커다랗고 무거운 책임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네가 낳은 아이고 네가 그 아이를 사랑하니 다른 소리 할 것 없다는 태도는 몇몇 업계에서 자행되어온 ‘열정페이’와 그에 대해 “넌 네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라고 말하던 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러면서도 힘들고 그래서 가끔은 도망치고 싶고 정당한 대우와 존중을 받고 싶은 것이 잘못인가요? 그런 게 나뿐인가요?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다. 나는 엄마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여전히(!) 한 명의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육아는 힘들다. 정바당은 예쁘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어울리는 접속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고’다. 예쁘고 힘들다 혹은 힘들고 예쁘다. 이 쪽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예쁘다고 안 힘든 것도 아니고 힘들다고 안 예쁜 것도 아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마음에 품고 다니던 문장이 있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필립 로스, <에브리 맨>) 바꾸어 말해보자면 모성애를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하루를 시작한다. 예쁘고 힘든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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