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3. 지옥의 수유캠프

생각하다임신과 출산육아

어느 페미니스트의 육아 일기: 3. 지옥의 수유캠프

Ah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천국이라면서

천국이라고들 했었다. 나는 완벽한 천국을 맞이하고자 휴가지 호텔을 찾는 심정으로 지역 산후조리원들을 폭풍검색했다. 푹신한 침구와 맛있는 식단으로 유명한 곳을 예약했고 남편과 나는 임신 기간 동안 ‘밥이 그렇게 맛있대’, ‘우리 셜록 몰아보자!’같은 얘길 하며 낄낄대곤 했다. 정바당을 낳고 2박 3일을 보낸 산부인과에서 퇴원하던 날, 우리는 몹시 들떠 있었다.

조리원에 도착해 입소 서류를 쓰는 동안 한 대학병원의 간호사 출신이라던 원장이 처음 건넨 말은 “병원에 있는 동안 수유했죠? 가슴 좀 볼까요?”였다. 나는 브래지어를 내렸다. 원래의 나라면 조금 생각해보는 척 하고 싫다고 했을테지만 이미 산부인과에서 다른 산모들과 둘러앉아 수유를 하는 데 꽤 적응한 후였다. 양손으로 내 가슴을 쥔 후 문지르듯 이리저리 돌려보고 엄지와 검지로 집게 모양을 만들어 유두를 조물조물해 본 원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너무 좋아요. 이 정도면 완모(완전 모유수유. 분유 수유는 하지 않고 모유만 먹이는 것) 충분히 해요. 충분해.” 그녀의 말투와 표정이 거의 “축하해요! 로또 1등이네요!”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마냥 신나는 일인줄로만 알고 식당으로 가서 거하게 삼계탕을 먹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모유가 나오면 수유를 하면 되고 안 나오면 분유를 먹이면 되는 줄로만 알았지.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그 날 저녁이었다. 한 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양 쪽 가슴이 돌덩이가 된 채로 겨드랑이가 시작되는 부분까지 솟아 올라 있었다. 얼마나 단단한지 눌러지지가 않았다. 유두와 유륜은 너무 딱딱해져서 손가락으로 잡을 수 조차 없었다. 몸은 축축 처지고 온 몸이 뜨거웠다. 나는 원장실에 전화를 했다.

젖을 짜내더라

내 방에 방문한 원장과 실장은 큰일 났다며 모유가 꽉 들어찬 채로 빠져나오질 못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했다. 

젖이 차는 느낌이 있었을텐데 몰랐어요?

하는데 그제야 알았다. 아, 잠결에 뭔가가 회오리 모양을 그리면서 가슴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것 같더니 그게 젖이 도는 거였구나. 그걸 다 깨닫기도 전에 내 오른쪽 가슴에는 치밀유방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유선이 꼬여 있다 보니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유구도 막히고 유륜부까지 딱딱해진 거라고 했다. 게다가 오른쪽 유두는 편평유두란다. 유두가 돌출되지 않고 짧은 편이라 신생아가 물기 힘들다고 했다. 젖은 계속 차는데 빠져나오질 못하니 고이고 뭉치는 거라는 말에 나는 “아, 그런가요?”라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사실 그게 다 무슨 말인지 나는 전혀 몰랐다. 유두가 내 성감대 중 한 곳이라는 것 말고 내 가슴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원장은 빨리 젖을 빼내야 한다며 당장 가슴 마사지를 해야한다고 했다. 나는 침대 중앙에 누웠고 오른쪽엔 실장이 왼쪽엔 원장이 앉아서 내 양쪽 가슴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쥐어짠다는 것 말고 다른 표현을 찾고 싶지만 그것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내 자신을 그렇게 비유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라도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에서 농장 주인이 송아지의 젖을 힘껏 주무르며 우유를 뽑아내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나는 기본적으로 통증을 잘 참는 사람이다. 

대상포진도 걸려봤고, 멀리갈 것도 없이 고작 3일 전에 무통주사도 못 맞고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하지만 이건 단연코 그 모든 고통들 너머에 있었다. 섹스를 할 때도 애무 강도를 잘 조절하지 않으면 신음이 아니라 정말로 “아!!!”하는 소리가 바로 유두 아닌가. 그런 곳을 거의 남지 않은 치약을 짜내듯 쥐어짜고 있으니 미처버릴 지경이었다. 너무 아파서 허리는 계속 활처럼 휘어지고 발가락은 오그라들었다. 온몸이 뒤틀렸다.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침대 시트를 쥐었다. 그런 내게 돌아오는 말은 조금만 참으라는 것 뿐이었다. 초유는 정말 중요하다고. 고생한다고. 그런데 달리 방법이 없다고.

지옥의 수유 캠프

그 때부터는 말 그대로 ‘지옥의 수유 캠프’였다. 아기가 배가 고파할 때마다-짧게는 50분 길게는 1시간 반마다-젖을 물렸고 그 사이사이에는 공포의 마사지를 받거나 유축기를 이용해 젖이 고이지 않도록 빼냈다. 모유수유라는 말에서 아기와 내가 마주보며 교감하는 평화로운 장면을 떠올렸던 나는 얼마나 무지하고도 순진했는지. 그건 판타지였다. 일단 아기가 젖을 제대로 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제대로’라는 건 유륜까지 무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그 조그마한 입에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거대해진 내 유두와 유륜부를 거의 쑤셔 넣다시피 했다. 신생아는 아직 젖무는 게 서툴러서 제대로 물었다가도 유두와 유륜이 빠지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한 번 수유를 할 때면 이 과정을 족히 십 수번은 반복해야 했다. 정바당도 나도 땀에 절었고 수유를 하는 30~40분동안 우리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졸면서 헤드뱅잉을 했다. 정바당은 잘 나오지 않는 젖을 빨다보니 먹다가 잠이 들기 일쑤였고 나는 조리원에 들어온 후로 3시간 이상을 붙여서 잔 적이 없었다. 2시간 마다 젖을 빼내지 않으면 가슴이 퉁퉁 부어서 혈관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젖몸살이나 다른 염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 양배추를 가슴 위에 올려놓고 겨드랑이에 아이스팩을 끼고 자야 했다. 그러고도 젖을 빼내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지면 겨드랑이에 부유방이 잡혔다. 틈만 나면 ‘부유방 수술’을 검색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내 가슴만 쳐다보고 있는데 제정신인 것도 이상했다.

수유를 하든 마사지를 받든 유축을 하든 어차피 가슴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옷을 제대로 입지 않게 되었다. 단추를 풀었다 잠갔다 하는 것도 일이었고 아기가 배가 고파 울 때면 그럴 시간 조차 없었기 때문에 앞섶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물론이고 신생아실이나 식당에 갈 때도 브래지어는 하지 않았다. 다른 산모들의 남편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내 사정권 안에 없었다. 한 번은 신생아실에 가는데 깜빡하고 원피스 단추를 잠그지 않은 적도 있었다. 복도에서 몇몇 사람들을 마주쳤던 게 뒤늦게 떠오르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아마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잘 모르겠다. 어떻다 한들 상관없었다.

이 가슴으로는 더 할 수 있어

원장이나 실장은 퇴근 전 방으로 와서 오늘의 총 수유 횟수와 함께 가슴 상태를 체크했다. 수유를 덜 한 날이면 오늘 분유 보충을 너무 많이 했다며 이 가슴으로는 더 할 수 있다고, 더 해야한다고 했다. 지옥의 수유캠프 교관들인 셈이었다. 신생아실 간호사 분들은 수유콜(아기가 배가 고파하니 신생아실로 데리러 오라는 전화)을 했을 때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내 방으로 찾아왔다. 노크를 한다지만 형식적이었다. 노크 소리를 듣고 내가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그들은 마스터 키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소한 날 미리 고지해준 방침이긴 했지만 당황스럽다 못해 울고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출산 때 꼬맨 회음부가 퉁퉁 부어 팬티도 입지 못한 채로 침대 시트에 오로패드만 깔고 누워있던 적도 있었다. 언젠가는 원장에게 배운 유륜 마사지를 하며 내 가슴에서 고인 젖을 빼내고 있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샤워중이기도 했다.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제야 산후조리원 홍보영상에 “모유수유 100%의 신화!”라는 카피가 여러 번 등장했던 게 기억났다.

열흘 정도를 보내고 나서야 유선이 어느 정도 트이고 유구가 뚫렸다. 마사지를 하면 모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물총처럼 찍찍 나오는 탓에 내 얼굴은 물론이고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의 얼굴까지 모유가 튀었다. 그 때 느꼈던 감정을 뭐라고 해야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웃기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게 웃길 만한 일인가 싶었고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게 뭐 그럴 만한 일인가 싶어서 그냥 무표정을 유지하며 가제수건으로 얼굴을 쓱쓱 닦았다.

공공재 가슴

복도에서, 식당에서, 신생아실 앞에서 나를 마주친 직원들은 내게 “가슴은 좀 어때요?” “수유 이제 잘 되죠?”같은 말로 인사를 건넸다. 원장과 실장은 거리낌없이 내 가슴을 만져보곤 했다. 나는 내 가슴을 다시 말랑말랑하게 해 준 그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내가 언제부터 이런 사람이됐나 생각했다. 더 이상 내 가슴이 내게 속해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냥 모두의 것 같았다. 하도 이 사람 저 사람 주무르니 공공재같다고 해야하나. 이게 내가 브래지어를 하고 또 그 위에 케미솔이나 나시티 같은 걸 입어가며 가려왔던 바로 그 가슴인가 싶어 우습기도 했다.

퇴소를 하는 날까지도 원장은 나를 붙잡고 신신당부를 했다. 울혈이 잘 생기고 젖몸살이 오기 좋은 타입이니 조심하라고. 수유횟수를 절대 줄이지 말라고. 조금만 고생하면 돌까지 완모를 하고도 남을거라며 덕담 하듯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날, 오랜만에 긴 잠을 잤다. 내가 방에서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내 방 문을 열지 않았고 아무도 자고 일어난 내게 내 가슴의 안부를 묻지도 않았다. 편안하고 상쾌했다. 훨씬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후조리원이 천국이라니 대체 무슨 어불성설인가. 아니, 어머니 동지들 우리가 아무리 엄마가 되었다지만 이렇게 기준을 낮춰서야 되겠습니까, 하는 한탄의 트윗도 썼다. 친구들에게 산후 조리원은 ‘지옥의 수유캠프’라며 2주간의 생활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그 때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양육가정에서 ‘천국’이란 누군가 삼시 세 끼를 챙겨주고 갈아입을 새 옷을 마련해주고 남편과 나 둘 말고 아기를 돌볼 수 있는 N명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조리원이 내 마지막 천국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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