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3. 임신 6~7주차

생각하다임신과 출산임신중단권

임신일기 3. 임신 6~7주차

ND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18년 2월1일

우리 사회가 임신한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장소는 지하철이다. 임신 이후 지하철에서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비참함이다. 제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서 가고 싶다고 트위터에 넋두리를 올리면서, 나는 비참함을 느낀다. 내 가방에 예쁘게 매달려 있는 이 핑크색 임산부 배지가 너무 부끄럽다. 이미 누군가가 앉아 있는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임산부 배지를 달고 한두시간씩 서서 가는 내 모습에 가끔은 웃음도 난다. 블랙코미디 프로그램을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다. 

임산부가 앞에 왔을 때 자리를 양보해주면 된다면서 언제 탈지도 모르는 임산부를 위해 지하철의 자리를 남겨두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매일 마주하는 그들은 스마트폰만 쳐다보거나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 앞에 누가 오는지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별 수 없다. 임산부 태그를 달고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으면, 혹시라도 거친 사람을 만나 임신이 벼슬이냐고, 지금 비키라고 시위하는 거냐고 할까 봐 긴장이 되지만, 이런저런 비참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정말 서 있을 힘이 없고 일단 살아남아야 하니까 오늘도 지하철 임산부석 앞에서 머문다. 아무도 비워주지 않는 자리 앞에 서서 목 위로 터져 나올 것 같은 구토를 간신히 삼킨다.

2018년 2월2일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남자 동료 A와 임신 이후의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그게 내 안부이고 일상이니까. A는 기혼 남성이지만 아기와 함께 살 계획이 없다. 임신과 출산을 직접적으로는 물론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일이 없는 것이다. A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임신출산과 관계 없이 지내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가늠된다. 

얼마 전 보건소에 받아온 임산부 배지를 보여주며 "이제 이거 있으니 의자에 앉을 수 있을 거야"라고 좋아했다. A는 "그게 임산부들이 달고 다니는 거야?"라고 되물었다. 지하철에서 종종 배지를 단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그저 임산부에게 자리를 비켜주라는 캠페인 태그인 줄 알았단다. A는 늘 임산부가 보이면 바로 자리를 양보한다고 이야기해왔다. 임산부 배지도 모르면서 임산부를 어떻게 식별했냐 물으니 배만 보고 양보했다고. 배 나오지 않은 초기임산부가 이렇게 힘들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지는 내가 아니었다면 알 길이 없었을 거란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요즘 저녁만 되면 구토를 한다. 그렇게 밤새 토하다 아침이 되면 실신 상태가 된다. 일상생활이 가능할 리 없다. 결근을 종종 하다가 오랜만에 회사에서 A를 만났다. 안부를 묻기에 이렇게 지냈다 하니, 그래도 입덧은 없어서 다행이라며 진심으로 나를 걱정한다. A는 이게 입덧인 줄 모른다. 

A와 한참 이야길 나누다 보면 멍해진다. 딴에는 나를 아끼고 걱정한다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얘기를 나눌수록 나에겐 피곤과 환멸만 쌓인다. A만도 못한 타인 중에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에게 유난이라 할 지 상상도 안 된다. 그들은 무지의 죄를 입고 임신한 여성, 임신하지 않은 여성 모두에게 눈빛과 말과 행동으로 무례를 가한다. 하지만 이걸 개인의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은폐되어 있다는 생각이 갈수록 뚜렷해진다. 2016년 행정자치부는 "작금의 심각한 저출산 상태에 경각심을 가지고 모두가 참여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며 각 지역의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표기한 대한민국출산지도를 발표했다. 여성을 아기 공장으로만 보는 이 어처구니 없는 프로젝트에 국가의 예산을 마구 쏟아가면서까지 출산 좀 해달라고 외쳐대기에, 사실 임신으로 인한 병원비가 걱정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국가에서 모두 보장해주거나 건강보험으로 감당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임신하니 임신이 확인된 시점부터 출산까지 산과 진료를 수행하는 병원에서 50만원을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 카드를 안내해주더라. 열 달에 50만원이다. 이마저도 직접 여러 카드사를 비교하고 공단에 신고하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고, 신청한 카드가 배송되기 전까지는 5-6만원씩 진료비를 계속 냈다. 임신 주기에 따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과 횟수가 정해져 있고, 지원되는 돈은 아무튼 산과 진료에만 적용된다.

임부나 태아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지도 말고, 중간에 절대 아파서도 안 되고, 열 달을 평범하고 별일 없이 기계처럼 살아내다가, 딱 출산만 하란 이야기일까? 심지어 제왕절개는 지원이 안 되니, 자연분만으로만. 국가의 존속을 위해 출산은 장려하겠지만, 일단 임신한 사람은 각자 도생하라는 정부의 메시지. 너무 노골적이다.

2018년 2월5일

미국에 잠깐 거주할 때 한 집에 살았던 내 룸메이트는 그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옆방에 알콜중독 아시안 여자애가 들어왔어. 어울리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는 나와 첫 인사를 나누고 일주일 후부터 매일 밤 함께 취해있었다. 지금은 사람이 아주 많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 1층에 있는 카페의 직원은 내 얼굴을 바로 식별한다. “아주 뜨거운 카페 라떼에 우유 많이, 맞으시죠?” 매일 같이 드나들었더니 시끄럽고 바쁜 시간에도 주문이 간편하다. 

낮엔 커피가, 밤엔 술이 내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마냥 그것들을 사랑하며 살았다. 나의 임신 소식에 가까운 친구들이 가장 걱정했던 건 임신으로 망가질 내 몸이나, 경력단절, 승진박탈 등의 미래가 아니라 커피와 술 문제였다. 친구들은 네가 가장 좋아하던 일을 못해서 어떡하냐며 진심으로 걱정했다. 나 역시 커피와 술을 더 이상 마시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퍼서 디카페인 커피와 오르조(보리를 강하게 볶아 커피 맛을 내는 차)를 바로 주문했고, 내가 좋아하던 맥주들의 무알콜 버전을 낱낱이 알아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입덧이 시작되니 놀랍게도 커피와 술 생각이 하나도 안 나더라.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카페인을 과다 섭취한 것 마냥, 술을 마시지 않아도 새벽까지 과음한 것 마냥 울렁거리고 어지럽고 속이 쓰렸기 때문에 커피나 술 같은 건 생각도 하기 싫어졌다. 정말 슬픈 건,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와 술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보다는, 커피와 술의 부작용만이 내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은 해 본 적도 없는데 이별의 아픔만 내 것이 되었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커피와 술을 사랑했던 때의 내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내 행복을 하나 더 잃었다.

2018년 2월6일

솔직히 말해서, 낙태가 내 살에 직접 와 닿는 문제는 아니었다. 내게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남편이 있고, 그와 나는 아기와 함께하는 삶을 원했으니까. 피임에 실패했대도 ‘별 수 없군’하고 아기를 낳아 기를 나이브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낙태권에 대해 논쟁할 때면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성의 생식권을 온전히 여성에게 되찾아오는 건 내겐 그저 운동으로서만 작동했다. 

요즘은 잠들기 전, 남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임신중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밤이 너무 괴롭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속쓰림과 메슥거림이 치솟아 구토로 뱉어내지 않고선 못 견디겠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온종일 긴장하며 참았던 입덧의 괴로움이 마구 활개를 친다. 토하면 위산 때문에 식도가 아작 나지만 속은 잠시 편해지기에, 일단 지금 내가 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구토하는 쪽을 택한다. 구토조차 나오지 않으면 그날 밤은 정말 죽고 싶은 밤이 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임신중단의 권리가 왜 여성에게 있는지. 왜 여성만이 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임신중단권에 관한 해답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임신을 시작하거나 지속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롯이 나에게 있다. 내 몸이니까.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결정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갖은 근거와 사례를 대며 더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설득해야 할 이유가 없다.

본인이 원해서 아기를 가져 놓고 임신 중에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힘들다고 임신을 중단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누구 하나 동정이라도 할까. 직장을 다니고 사회에서 내 나름의 몫을 하고 있단 생각에 깜빡 잊었나 보다. 나는 여성이고, 이 사회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는 말에 가슴이 사무치는 밤이다. 나 아닌 누가 감히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한단 말인가. 내 고통은 오롯이 나만 느낀다. 그런데도 내가 임신중단을 선택하면 천인공노할 '낙태女'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건 물론, 대한민국 형법 269조 1항의 낙태죄를 범한 범죄자가 되어 처벌까지 받는다고? 나의 임신중단이 죄라면 임신한 여성의 진짜 삶과 고통을 은폐하고, 임신한 여성을 위한 연구개발에 나태하고, 임신한 여성에 대한 직장의 부당한 행태와 배려 없는 사회의 모습과 부족한 제도적 지원을 철저히 외면하고, 그리고 내 몸에 대한 내 권리가 제 통제 아래 있다고 오만하게 착각한 국가가 범인이다.

2018년 2월8일

  • 출근 전 : 프로바이오틱스 2회분, 양배추즙 1봉, 제산제 1알
  • 회사에서 : 두유 2개, 양배추즙 1봉, 방울토마토 10개, 체리 10개, 죽 1/3그릇, 녹즙 1병
  • 퇴근 후 : 양배추즙 1봉, 푸룬주스 1컵, 저녁 식사(주로 라면 반 개), 종합비타민 3알
  • 취침 전 : 엽산 2알, 제산제 1알, 철분제 3알

내가 하루 동안 먹는 것의 전부다. 다이어트 식단이 아니다. 언제 밥을 맛있게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속이 잠시라도 비면 울렁거리니까 쉬지 않고 두유나 과일 같은 뭔가를 먹긴 하는데, 먹고 나면 신물이 올라와 이내 후회가 된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속쓰림을 견디고 변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는 것도 얼마 없다. 위벽 보호와 변비 탈출이 내 모든 섭취의 이유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먹고 싶은 건 칼칼한 면류뿐이고, 먹으면 그대로 위벽이 깎이는 거 같다. 임신은 변비의 앞잡이다.

내 경우, 섭취가 가장 힘든 건 엽산이다.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데 꼭 먹어야만 한단다. 엽산은 기형아를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어 보건소에서 무료로 배분하면서 임신 후 13주까지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 외에도 엽산 섭취에 어려움을 겪는 임부가 많다. 평소엔 괜찮다가도 엽산만 먹으면 입덧이 심해진다는 사람도 있고, 자기 몸에 잘 맞는 엽산 제품을 찾느라 돈을 수십 만원씩 쓰기도 한단다. 내가 매일 고통 받는 오밤중 입덧의 원인에 엽산이 크게 기여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손으로 그걸 입에 털어 넣어야 할 때면 세상이 다 미워진다.

웬만하면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데 오늘은 배도 아프고 속이 너무 울렁거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분께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저, 제가 초기 임산부라 힘들어서 그런데..."
"그런데?"
"아...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요?"

그 분 옆에 앉은 사람까지 둘이서 내 얼굴을 한참 빤하게 쳐다보더니 결국 일어나더라. 괜한 용기를 냈다가 수치를 얻었다.

2018년 2월11일

인생을 살만 하게 하는 건 대단한 이벤트나 아름답게 넘실대는 풍요라기보다는, 행복의 작은 요소들이 내 사소한 일상을 장식할 때 오는 소소한 만족감이라고 생각한다. 퇴근을 기다리는 이유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시시콜콜한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지금 내겐 그런 행복이란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하고 요리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 요리라는 건 그날 그날의 냉장고 사정과 먹는 사람의 입맛까지 고려한, 섬세하고 다양한 변주가 필요한 거라, 요리하는 사람의 감각이 아주 중요하다. 내 요리는 늘 꽤나 맛있어서 자부심을 갖고 즐겨 요리를 해왔다. 집에 어떤 재료가 남아있는지 저녁엔 뭘 만들어 먹으면 좋을지 생각하는 건, 내가 회사 일과 중 티 나지 않게 할 수 있는 행복한 합법적 일탈(?) 이었다.

지금은 먹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 어떤 재료를 생각해도, 어떤 레서피를 봐도, 어떤 맛집 소개 글을 봐도 먹고 싶지가 않고, 오히려 구토가 나올 것 같다. 임신 전에 좋아했던 음식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토할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싶은 게 없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나는 먹고 싶은 게 없고, 하고 싶은 요리가 없어지면서 내 창의력을 임신이라는 괴물에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매번 다른 재료를 조합하면서도 괜찮은 맛을 내면서 내 요리 실력에 의기양양했는데, 이제는 다 잃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한 번에 잃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는 게 마냥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내 행복의 요소들이 사형 당했으니까.

2018년 2월13일

임신 전에는 스쿼트, 런지, 플랭크 등의 운동을 꾸준히 했다. 몸이 약해 근육을 유지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임신 후로는 그 놈의 '유산 위험' 때문에 가벼운 스트레칭도 하지 말라더라. 뱃속에서 아기가 자라나면 내 근육이 더 필요할 텐데, 아기를 살리느라 나를 죽여버려 앞길이 캄캄하다.

순산하려면 임신 후기에는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요가도 하고, 운동도 하고, 특히 허벅지 코어 근육을 키워야 한단다. 이미 임신 초기부터 다 망해 버린 운동을 무슨 수로 그 때 시작하고 그제서야 근육을 키운담. 임신과 출산은 모순 덩어리다. 자연분만 못하면 또 산모 탓하겠지.

순산이라. 사실 산모에게 순산이란 건 없다. 그저 아기를 낳고도 무사히 살아남길 바랄 뿐이다. 산모의 온 장기를 뒤틀고 회음부를 찢으며 아기가 나오는데 순산이 어디 있어. 타인이 말하는 순산이라는 건 무지이고 건방이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죽어 온 세상이 눈물 바다가 되도록 울고 있는데 누군가 ‘호상’이라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과 계속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내 가족의 죽음 앞에 좋을 호(好)를 붙일 수는 없는 것처럼 내 출산에 타인이 순조로울 순(順)을 붙일 수 없다.

가끔은 문제 없이 임신하고 편하게 아기를 낳은 '듯한' 여성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하나도 안 편했을 거면서. 모든 게 전쟁이었을 거면서. 왜 힘든 얘기는 안 해 준 거지, 싶다가도 그 고통을 꺼내기라도 하면 "임신이 유세냐" "남들도 다 겪어. 유난 떨지 마" 하는 말로 모든 게 차단되는 현실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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