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 살롱: 2. 보이지 않는 여성

알다여성의 노동

페미니스트 북클럽& 살롱: 2. 보이지 않는 여성

주연

여성 청년이 딛고 설 언어(세상)는 없다

“난 2010년부터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88만원 세대>출간(2008) 이후 완전히 ‘청년 담론’의 홍수 속에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청년 담론'의 ‘청년’은 ‘남성 청년’ 이었다.
아무도 ‘여성 청년’으로서의 나를 대변해주지는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건 내 언어가 아니구나’.”

"교과서의 문학 작품들을 생각해 봐도, 죄다 남성 작가다. 그러니 문학 속에 '남성 작가'가 상상하는 여성, '남성 작가'가 상상하는 여성만 있다.":

‘청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여성 청년'

한국의 ‘청년’은 괄호로 남성을 생략한 ‘(남성)청년'으로 쓰인다. 그래서 여성 청년에게는 그를 대변할 사람도, 그의 생애 주기나 일상을 반영한 정책도 여전히 부족하다. 청년 문제를 담은 ‘3포 세대’라는 말도 생각해 보면 남성에게 맞춰져 있다. (연애가 왜 권리일까. 나는 연애 할 마음도 없는데!) 

소위 ‘88만원 세대’ 담론도 마찬가지로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여전히 노동 시장에서 소외되어 있고 임금 격차도 크기 때문에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이처럼 여성의 노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담론일 뿐더러, 여성을 배제하는 데에 이 담론이 사용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88만원 세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된장녀’가 호명되는 식이다. 미래를 꾸리기 힘든 건 분명 여성 청년이나 남성 청년이나 마찬가지임에도, 여성은 ‘미래의 남편의 돈을 빼 먹는’ 존재로 호명당한다. 그래서 여성 청년이 삶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면 ‘취집’이 마치 좋은 선택지인 것처럼 제시되고,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가로 막히기 일쑤다. 이에 더해 아직 선택하지도 않았고 선택한 적도 없는 이 말에 담긴 비난과 모욕감도 감수해야 한다.

여성의 노동

<여성혐오가 어쨌다고?> 1장에는 1993년에 삼성에서 첫 여성 공채를 시작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여성 공채가 생긴 지 30년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지금도 물론 여성이 공채를 통해 대기업에 취업하는 데에는 남성에 비해 어려움이 있지만, 사실은 ‘기회'가 주어진 것조차 굉장히 최근의 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IMF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자 이 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해고 당한 것 역시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여성의 역사는 쉽게 지워지고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참가자들은 소셜 섹터의 노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실제로 현장에 여성 활동가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변자로 ‘드러나는' 사람은 남성이 대다수다. 

여성 활동가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만 대체로 센터장은 결국 남성인 경우가 많다. 사회복지사 같은 경우에도 대체로 여성의 비율이 높지만 보통 기관장들은 다 남성이다.

나아가, 보통 이러한 소셜 섹터(social sector)에 여성이 많은 이유로 노동 시장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소셜 섹터가 아닌 취업 시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탈락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성들이 주로 몰린다는 것이다. 소셜 섹터는 저임금 고강도 노동, 감정노동이 많은 직종이기도 하다. 

라벨링에서 ‘청년’ 담론, 그리고 노동의 문제에서 여성의 삶은 가시화 되지 않고 삭제된다.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이렇게 오랫동안 공고한 이유에는 닭과 달걀같이, 이런 기록과 가시화의 문제가 존재한다.

여성의 삶/역사는 늘 파편화된다

 20대 중후반까지 여성이 갖고 있던 관계들이 결혼을 기점으로 깨지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직장 때문에 이사를 간다거나 할 때마다, 여성의 네트워크는 손쉽게 무시당하고 깨진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책 전체에서 가장 절절히 공감되는 구절이라며 책 91쪽에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험과 기존의 언어는 일치한다. 그들은 언어없음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는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이 구절로 시작하는 3장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는 ‘남성은 역사, 여성은 에피소드’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파편화 된 언어, 파편화 되는 커뮤니티

H는 여성 커뮤니티는 어떻게 구성하든 가부장제, 남성에 의해 다시 깨져 버리는 역사 속에 있었다며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결혼’을 지적했다. 결혼 후 여성들은 각자 파편화 된 가정 영역에 묶여있게 되므로 실제로 모이거나 연대 활동에 참여하기가 어려워 진다. 최근에는 온라인 상에서 만들어지는 여성 커뮤니티까지도 라벨링 당한다. 거기에 더해, 때로는 커뮤니티 그 자체가 성애화, 대상화 되기도 한다.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을 희화화하고, 육아를 하는 여성들의 모임을 ‘유모차 부대’라고 비하하는 것, 육아하는 여성을 ‘맘충'이라고 이름붙이고 모욕하는 사례가 그렇다. 여성들이 서로를 연결하려는 움직임까지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 남성의 언어로 라벨링 되고 파편화된다. 

여성의 삶에 드는 비용은 보이지 않는다

10만원 이상 관리비를 내는 곳은 여성이 많고, 0원이 드는 곳에는 남성이 더 많다고 한다. 관리비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건 남성인 셈이다. 

세입자들의 성별에 따라 관리비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연구한 보고서를 보면 전체적인 관리비 평균은 남성이 더 높지만 10만원 이상의 관리비를 내는 곳은 여성이 더 많았고, ‘0’원인 경우는 남성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관리비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성별이 누구인가? 여성은 독립시 수많은 위협적 요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좀 더 방범이 잘 되는 지역, 건물, 잠금장치의 여부 등을 중요한 주거 요소로 꼽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듯 비용으로 치환된다. 이는 단순히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기 때문이 아니라 난방이나 방범 등 더 다양한 시설의 필요 때문이며,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본인의 삶을 지켜낼 최소한의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남자인 친구들을 보면 그냥 몸 하나 간수하는 데에 훨씬 돈이 덜 든다. 특히 외모 유지에 드는 돈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길을 걷다 보면, 여자는 힐 신고 원피스도 입고 정말 한껏 꾸미고 나왔는데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티랑 바지 입고 털래털래 나온 경우 정말 많이 본다. 그런데 ‘꾸며야 한다’는 걸 여성의 디폴트라고,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물론 성별 간 삶에 드는 비용의 차이를 드러내는 자료는 주거 부문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외모를 꾸며야 한다'는 메시지의 과잉과도 관련이 있다. 여성 청년의 경우 숨 쉬듯 외모에 대한 평가를 당하며 그것이 개인의 '경쟁력'인 양 여겨진다. 따라서 아무리 가난해도 화장품과 옷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어렵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물론 여성에게 필요한 생필품에 드는 비용일 것이다. 화장솜, 생리대부터 시작해서 브래지어까지. 생리대 외에도 여성이 여성의 몸을 ‘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품들은 여전히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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