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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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얼굴들

맥주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언니모자의 폭주하는 예술관람차, 이번에는 여성 동양화가  김정욱과 권순영을 만나본다.

당신은 동양화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닥나무 껍질을 곱게 떠내어 체로 걸러 만들어진 한지(몇 장 겹치느냐에 따라 3합지 등 종류가 결정된다)에 먹으로 호방하게 혹은 세밀하게 그려낸 그림을 떠올리고 있는지는 않은지. 맞다. 동양화의 기본은 종이와 먹이고, 그래서 동양화를 배울 때는 먹을 공들여 갈아 먹물을 만들고, 종이에 붓을 들어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한다. 즉 이 두 명의 화가는 흰색과 검정색을 다루는 데 달인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두 명의 화가의 흑과 백은 왜인지 긍정적인 감정들보다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특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다루는 색채화 혹은 도자 등 다른 매체에서도 그러한 느낌은 가시지 않는다.

각기 인물의 얼굴 클로즈업 화면(김정욱), 그리고 인물 군상들을 원거리로 잡은 화면(권순영)으로 유명한 이 두 화가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만큼이나 주제의식도 다르다. 김정욱은 각 개인의 특성이 드러나는 초상에 관심이 있고, 권순영은 물질로서의 몸, 인체가 엮어내는 관계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작가의 화면에 여성 인물들의 등장 빈도수는 꽤 빈번한데, 이들이 그려내는 얼굴과 몸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보면, 여성 인물이 갖는 부정적인 방향의 미묘한 감정들과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다.

빛나는 시선의 초상
김정욱

김정욱은 2015년 12월 3일부터 2016년 1월 15일까지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개인전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을 열었다. 전시 [빛나는 것들]을 포함하여 개인전으로는 6번째다. 김정욱은 클로즈업된 인물의 얼굴을 세밀하게 표현한 그림으로 유명한데 이는 턱이며 코, 이마 등 윤곽선은 물론이고 피부와 입술의 색, 흉터자국이나 점 등 피부의 트러블까지 사람을 관찰하고 묘사해내는 동양 초상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먹으로 피부의 결, 눈썹이 난 모양과 방향, 눈동자의 깊이감과 시선까지 표현해내는 김정욱의 회화를 보면 마치 사람을 대면하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을 클로즈업한 이 그림들은 코와 이마가 높아 보이도록 음영을 살리고 볼을 칠하여 생동감을 주는 식의 표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도, 무척 생생하여 살아 있는 사람을 마주대하는 듯한 실감을 준다. 화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인물의 시선이다.

김정욱, 2004년, 한지에 먹, 93*63cm, 출처 이미지검색엔진 네오룩neolook.com
김정욱, 2004년, 한지에 먹과 채색, 94*64cm, 출처 이미지검색엔진 네오룩neolook.com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혹은 빗겨 쳐다보는, 혹은 자신의 내면에 침잠해 있는 인물들은 지난 개인전 [빛나는 것들]에서 자주 사용된 성화나 불화의 모티브의 자세를 취한 인물들에서 한층 발전된 모습이다.

김정욱, 2012년, 장지 위에 동양화 물감, 27.2*34.7cm, 도록 [빛나는 것들] 발췌

붉은 색과 금색 등 색채의 사용이 눈에 띄며, 채색용 금 가루와 먹의 번짐 효과가 어우러져 인물 위에 여러 겹의 막을 씌운 듯이 화면을 채운다.

김정욱, 2015년, 회화, 장지 위에 동양화 물감과 금가루, 24*33cm, 도록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발췌  
김정욱, 2015년, 도자, 24.5*21cm, 도록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발췌

이번 전시에는 새로운 매체로 도자가 등장했다. 작품을 보며 학생으로서 도자 수업을 배웠을 때 흙과 물이 섞이는 양을 조절하던 생각이 났다, 물의 양이 적을수록 질감이 거칠어지고 물의 양이 많을수록 질감은 매끄러워진다. 아마도 묽은 흙을 표면에 뿌리고 색을 칠하고 닦아내는 과정을 거쳐 흰 피부와 분홍빛 여드름의 색과 질감이 광택 없이 배치되었을 것이다. 도자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단하며 매끄러운 질감은 이 무광택의 작품들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데, 이러한 처리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주로 지하에 놓여진 도자 작품들의 배치는 각각의 초상들이 땅에서 혹은 벽에서 솟아나온 느낌을 배가시켰다.

색감과 번짐효과 도자 매체의 사용이 나타내는 것은 재료의 물질성이 갖는 질감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이다. 표정 묘사의 달인인 김정욱이 재료의 질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 질감이 때로 가림막 역할을 하여 시선을 가리는 듯 하면서 오히려 드러내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흥미롭다.

섹스를 바라보는 건조한 시선
권순영

권순영은 개인전 [눈물의 여정]을 2017년 9월 2일부터 10월 1일까지 갤러리 소소에서 열었다. [FLASHBACK], [뭇웃음], [슬픈 모유]에 이어 4번째인 이 개인전은 작가 권순영의 성장을 보여준다.  

권순영, 정물 6, 2013년, 한지에 먹, 72.5*61cm, 도록 [슬픈 모유] 발췌
권순영, LOVE 5, 2017년, 한지에 채색, 50*50cm, 리플렛 [눈물의 여정] 발췌

생선과 눈사람, 하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 포도송이와 복숭아, 등장인물들이 흘리는 눈물들은 반복적으로 꿰뚫리는 동작과 함께 섹스를 상징한다. 메마르고 날카로운 삽입의 묘사에 비해 찔리는 측은 내장과 같은 축축한 물체이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피부의 짓무른 물을 흘리며 능동과 수동의 역할극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역할극의 비중은 행위가 반복될수록 받아들이는 측에 무게감이 실려 간다. 결국 화면을 메우는 것은 이 ‘축축한-짓무른’ 물체들이기 때문이다.

이 화면을 해석하기 위해서 섹스라는 관계와 관계성, 과정에 대해 더 중점을 두어 보면, 작가 권순영의 관심은 그 삽입-고통의 순간을 최대한 늘여 보여주는 데에 있으며, 삽입하는 측과 삽입당하는 측 둘 다 그 관계성 안에서 존재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섹스에 대한 은유는 190*13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대작 3점으로 이뤄진 [세 개의 조각상] 에서 확실하게 가시화된다. 세 점의 회화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다리 사이로 애액을 흘리는 여성 형상의 마네킹, 과도한 크기의 머리가 꿰뚫린 상태로 녹아내리고 있는 인형 형상의 막대사탕, 폭죽이 꽂힌 눈사람 등의 세 형체가 꽃밭에 서 있는 형태다. 마네킹의 가슴과 엉덩이는 탐스럽게 동그란 모습인데 마네킹임을 짐작케 하는 팔 다리의 관절 부위와 잘린 발 때문에 관객은 마네킹의 매혹적인 자태에 쉽게 몰입하기가 어렵다. 인형의 머리를 가진 사탕 또한 산뜻한 새것의 상태가 아니며, 벌어진 입을 통해 막대로 꿰어진 모습을 드러낸다. 눈사람이 머리에 얹은 것은 곧 터질 폭죽과 초로 이루어진 왕관이다.

삽입되고 연결된 상태, 관계에서 아픔을 느끼는 감수성은 계속해서 유지하되 이번 전시에서는 화면의 묘사에 있어 중심부와 주변부가 나뉘는 것이 눈에 띈다. 권순영의 그림은 대체로 평면적인데, 이는 서사-관계가 중심이 되는 작품들이 많이 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픈 모유]의 ‘슬픈 모유’ 와 [눈물의 여정]의 ‘세 개의 조각상’ 의 화면의 깊이감은 사뭇 다르다. ‘세 개의 조각상’ 의 배경을 잘 살펴보면, 다른 두 개의 조각상이 원거리에 표현되어 있다. 각 인물들의 관계를 화면 안에서 살리되, 주인공과 부가적인 캐릭터의 무게감이 나뉨으로서 화면 내에 시선이 머무는 경로를 작가가 조절해내는 성취를 이뤄냈다.

권순영, 슬픈 모유, 2014년, 한지에 채색, 161.5*112cm, 도록 [슬픈 모유]에서 발췌
권순영, 세 개의 조각상 1/2/3, 2017년, 한지에 채색, 194*130cm, 이미지 작가 제공

우리는 이 두 여성 작가를 통해 얼굴과 몸을 다루는 각기 다른 방식들을 좇아 보았다. 이들의 인물들은 흔히 광고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여성 인물들의 형태와는 조금씩 다른데, 김정욱은 ‘여성이라는 범주(에서 상상되는 것들)’보다 ‘각 개인’을 부각시킴으로서, 권순영은 ‘관계 안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들과 습관적인 대응 방식에 대해’ 다루면서 차이점을 발생시킨다. 여성 인물의 시각화에 있어서 이들은 가부장제의 대상화라는 왜곡에 맞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인체를 조형해나가고 있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하게 변화하고 있는 이들의 탐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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