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우리는 치맛바람 휘날리며 바이크를 탄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치맛바람

  1. 치맛자락을 야단스럽게 움직이는 서술.
  2. 여자의 극성스런 사회 활동을 야유조로 이르는 말.

지난 9월 30일, 망원 한강 지구에서 첫 <치맛바람 라이더스> 행사가 열렸다. 

사진제공 치맛바람 라이더스

날이 쾌청했다. 한강을 등지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었고 바짝 마른 햇살이 내리쬐었다. “함께 치맛바람 휘날리며 달려요!”라는 말에 50여명의 페미니스트가 한 자리에 모였다.  말 그대로 치맛자락 날리며 바이크를 타기 위해서. 매우 극성스럽게. 모인 이유는 간단했지만 치맛바람 라이더스가 모이게 된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우린 부록이 아니다

치맛바람 라이더스는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도 안전한 공간이 필요해서 시작됐다. 여성으로 패싱되는 라이더는 젠더 규범을 강요당하고 편견어린 시선을 받는다. 더불어 기존 라이더 문화가 워낙 남성 중심적이다 보니, 여성 라이더가 메인이 되는 행사가 없었다. 소규모의 여성 라이더 모임은 지속되어 왔지만, 말 그대로 한 줌이었다. 모토 바이크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산업이다. 레이싱 트랙의 트로피 걸이나 여성을 대상화하는 광고도 그렇지만 바이크 시장은 남성에게 훨씬 접근성이 높다. 바이크 차체나 시트 높이부터 시작하여, 유명한 라이더 행사까지 대부분 남성 위주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행사에 참여하고 싶으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참가 하지 않는 것 뿐. 억울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라이더를 위한 다른 선택지가 필요했다.

나는 바이크를 탄 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트바움(*트위터를 하고 바이크를 타는 페미니스트라는 뜻)과 바이크를 탔기에 남성 중심적인 라이더 문화에 속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치맛바람 라이더스>를 기획한 사람들을 포함해 참가자들 중에는 남성 중심적인 라이더 문화에 질린 사람들이 많았다.  라이딩 실력과 바이크 배기량으로 서열 매기는 것부터 “진정한 남자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바이크 투어 같은 것들. (“혹한기 싸나이 투어”에 대한 얘기까지 듣자 그만 알아보고 싶었다.)

여성라이더는 언제나 소수였다. 그것도 부록 취급 받는 소수. 온전한 라이더가 아니라 ‘여성+라이더’로 취급 받았다. 여기저기서 여성 혐오를 마치 친절한 선물처럼 난사했다. “여성 분이 바이크를 타시고 대단하시네요” 혹은 “기름 혼자 잘 넣으시네요”같은 헛소리, 여성 모토쇼 무료 입장, 매번 레이스 행사에 쉬어가는 코너처럼 끼워져 있는 여성전. 배려와 칭찬처럼 보이는 것들은 사실 익숙한 혐오의 변주일 뿐이다. “안전을 위해” 혹은 “실력 차이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그 배려에는 교묘한 차별과 시혜적 태도가 깔려있다. <치맛바람 라이더스>를 함께 기획한 바바님은 말했다. 누구의 여자친구, 누구의 아내, 여성 라이더로 지칭되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라이더로서 참여한 건 ‘치맛바람 라이더스’가 처음이라고. 

사진 치맛바람 라이더스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의 내내,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소풍처럼 다과회도 합시다! 멋있게 차려 입고 사진도 찍어요! 페미니즘 단체에 기부합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시다! 모두 신이 났고, 말할 때마다 손짓이 조금씩 커졌다. 제스처가 더해질 때마다 행사 구성이 늘어났다. 

행사 전 날은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소풍 전 날 같은 설렘과 걱정이 곧 터질 듯한 김밥처럼 뚱뚱하게 말렸다. 수 차례 회의와 조심스러운 고민이 있었고 여러 번의 답사와 시범 주행을 거쳤다. 혼잡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시화되는 동선을 찾기가 어려웠다. 참고할 만한 행사가 많았다면 좋았겠지만, 처음 하는 것 투성이였다.

이렇게 즐거운 걸
이제서야 하다니

9월 30일인 행사 당일, 쏟아지는 햇살이 강바람 냄새와 섞여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라이딩 하기 좋은 날씨가 손에 꼽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보다 더 좋은 날을 고를 수는 없었다. 한강 공원 주차장에 참가자들이 주차를 시작했다. 각자의 손목에 행사 띠를 두르고 모여 차를 마셨다. 바람에 치맛자락이 날리는 걸 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걱정이 무색하게 치마를 입은 참가자들은 소풍에 온 것처럼 행사를 즐겼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간이 체육대회처럼 땅 따먹기, 제자리 멀리 뛰기, 그리고 고무줄 놀이 등을 하였다. 헬멧에 동전을 던지기나 후원 받은 KTM 경품 추첨과 같은 이벤트도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망원 한강 지구에서 박정희 기념관(박정희는 이륜차 고속도로 통행을 금지한 장본인이다)까지 단체 주행을 했다.

영상제공 @dronicattd


아니, 이렇게 즐거운 걸 이제서야 하다니. 역시 억울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행사가 필요하다. 연대를 감각할 수 있는 공간,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곳, 치맛바람 날려도 안전한 세상이 간절했다. 서른 명 남짓의 치맛바람 라이더스와 달리며, 우리는 서로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했다. 사륜차는 많았고, 빵빵거렸고, 깜박이를 켜지 않은 채 차선을 변경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약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팔 뻗으면 닿을 거리에 치맛바람 날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로한 일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피로한 일이다. 관계를 맺고 지속하는 기본적인 일부터 내가 말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모두 쉬운 게 하나 없다. 페미니즘을 배우고 난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간혹 내가 내는 홑겹의 목소리가 거대한 가부장제나 젠더 규범의 벽에 바늘 구멍 하나 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회사를 다니고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보도블럭처럼 서로 간격을 애써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나 혼자 울퉁불퉁 잘못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종 버거웠다.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가 설 자리는 매우 비좁다. 이륜차에 대한 계급적인 경멸과 차별적 시선은 매우 노골적이며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편견은 아무렇지 않게 도로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재생산된다. 탄환처럼 달리던 사륜차가 마치 내가 없는 듯 차선을 밀고 들어올 때, 터무니 없이 비싼 보험료와 마주할 때, 오토바이에 아무렇지 않게 음료나 과자봉지를 버리고 갈 때, 남의 바이크를 화가 난다고 발로 차 넘어뜨리거나 앉아 볼 때, 이륜차를 향한 낙인과 혐오를 모르는 척 무시 할래야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 라이더에게 도로 위는 친절한 공간이 아니다. 치마를 입었거나, 긴 머리이거나 왜소한 체형이라면, 다시 말해서 “여자” 로 보이면 별 일이 다 생겼다. 바이크를 탄 지 한 달 조금 넘었을 때였다. 가뜩이나 복잡하고 빽빽하게 밀리는 종로의 어느 길 위였다. 혼잡한 흐름 속에서 내가 버벅대니 옆 차선의 빡빡머리 남자가 단번에 창문을 내렸다. 공사다망하신데 길까지 막히니 화가 참 많이 나셨겠지만 목청껏 벅벅 소리 지르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분노에 찬 그의 정수리에는 힘줄이 한껏 돋아 있었고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야! 운전 그 따구로 할거야?” 로 시작한 그의 고함은 결국엔 이 년 저 년이 등장했다. 신호가 정지하는 내내 계속된 욕설은 초록 불이 되어서야 멈췄다. 뭐래 이 빡빡이가! 따위의 말이 목구멍에서 허우적거리다 가라앉았다. 나는 고집스럽게 앞만 보며 달렸다. 응수하기라도 했다가 그 빡빡이가 욱한 마음에 나를 차로 밀어버리면 정말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았으니까. 그 쪽이야 소리지르는 게 정당한 분노 표출이었겠지만 나한테는 살인 위협과 다름없었다.

여성 라이더는 창문 내린 택시 기사의 맨스플레인이나 “김여사” 혐오의 오토바이 버전(“아가씨가 무슨 오토바이야!”)을 감내한다. 딱히 도로 위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헬멧을 들고 카페에 들어가거나, 오토바이 주변에 서 있을 때 원치 않는 말을 듣게 된다. “여자가 이런 거 타면 안 무서워요?” “여자인데 오토바이 타고 대단하네.” 손가락으로 툭툭 오토바이를 쳐대는 것은 자주 따라오는 옵션이다. 도둑 촬영 되어 #여라 라는 해시 태그가 걸린 채 SNS에 전시 되기도 한다. 현란한 욕설부터 과잉 칭찬까지, 혐오의 표현은 다채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루할 정도로 일관적이고 상투적이다. 여성 라이더가 된다는 것은 작정하고 미움 받을 준비를 하라는 말과도 같았다.

왜 안되는데?

치맛바람 라이더스 행사 이후 관련 기사가 나갔고 여러 댓글이 달렸다. 치마가 위험하니 입지 말라는 훈계부터, 꼴페미 라이더라며 낙인 찍는 말까지 온갖 혐오 댓글이 범람했다. 어디서 붕어빵처럼 틀에 쪄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판에 박은 듯 익숙한 댓글이었다. 나는 사회가 어떤 지점에 질문을 던지는지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낙인의 홍수 속에서 질문 없는 댓글 창을 보며 나는 대신 질문을 던져 보았다. 왜 치마를 입고 타면 안되는가? 왜 치마만 유독 위험하다고 손가락질 받는가? 왜 도로에서 ‘여성’ 라이더는 가시화 되길 거부하는가? 문제는 과연 치마인가? 왜 우리는 하필 ‘치맛바람’ 라이더스인가? 모토 사이클 산업은 왜 남성 위주인가? 바이크 뿐 아니라 위험을 간주하는 영역에서 왜 ‘여성’은 배제되는가? 왜 도로 위에서 젠더로 식별되는 것은 폭력이고 차별인가? 과연 ‘여성’만 치마를 입는가? 그리고 우리는 질문 없는 곳에서 과연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극성스러운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라고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치맛바람’이라는 단어는 특히 기사 헤드라인에서 마르고 닳도록 소비된다. 성공한 여성 디자이너부터 정치인, 인권 운동가에게까지 치맛바람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며 찍어내는 상투적인 여성혐오에는 여자는 극성스러워서는 안돼! 라고 외치는 해묵은 낙인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종류의 낙인은 세월이 지나며 치맛바람, 팔자 드센 년, 남자 기 죽인다, 와 같은 말에서 페미나치, 메갈년, 꼴페미로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었을 뿐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다. 페미니스트에겐 낡고 삭은 낙인일 뿐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언제 낙인이 두려워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낮춘 적이 있던가. 손가락질을 하고 낙인을 붙이려 애써보아도,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치맛바람이 더 날리길, 목소리가 더 커지길 원할 뿐이다. 페미니즘은 바로 지배에 저항하는 목소리, 그 자체이기에.

피곤하고 피로한 일

다시 말하지만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참 피로한 일이다. 피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피곤한 노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작은 힘을 반복하여 균열이나 틈을 만들고 단단한 무언가를 파괴한다는 뜻이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피곤하고 동시에 피로(fatigue)한 일인 것이다. 기동성을 가진 여성을 향한 폭력의 역사는 유구하다. 자전거를 타면 ‘여성 건강’에 좋지 않고 ‘여성성’을 해친다 따위의 말들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그 두개의 바퀴는 여성에게 자유와 페미니즘의 상징이었다. 서프레제트는 참정권 운동을 위해 자전거로 행진하고 자전거를 이용하여 시위를 했었다. 두 바퀴 위의 여성은 그렇게 도로를 가르고 균열을 내며 세상을 바꿔왔다. 아무리 작은 힘일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아스팔트처럼 견고한 도로 위의 젠더 규범에 균열을 낼 것이다. 치맛바람 휘날리며.

사진제공 치맛바람 라이더스

*<치맛바람 라이더스>의 행사 수익금은 전액 민우회에 기부되었다.

치맛바람 라이더스

Twitter @chima_riders

Instagram @chimariders

E-mail chimariders@gmail.com 

2018.11.09 15:46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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