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결혼고발 0. 나는 나를 잃고 며느리가 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남편을 사랑하고 시가의 사랑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처음 사랑을 말한 지 8년, 결혼생활은 3년이 넘어간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벌어진 틈 없이 촘촘하게 함께 해왔다. 일상을 나누고 곁을 지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높게 둔 덕분이다.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자세히 알아가고, 상대 눈에 비친 자신을 알아왔다. 서로의 욕구를 파악하고, 채우기 위해 고민한다. 서로를 위해 궂은일을 하고, 안 좋은 습관을 고치려 노력한다. 누구보다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또 자랑스러워한다.

남편을 깊이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결혼제도로 인한 고통이 경감되지 않는다. 둘은 별개의 영역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 그리하여 누군가의 아내와 며느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듯 같이 따라가지만,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다. 후자는 본질적으로 전자의 부속일 뿐이지만, 전자를 압도하는 현실이다.

결혼제도의 괴로움을 견뎌낸다고 해서 남편에 대한 사랑을 지켜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구조적 가해자에 가까운 남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할 지경이다. 결혼하는 대가로 마땅히 져야 하는 고통이라면, 그것이 한쪽 성별에만 강요되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사랑이 반드시 결혼으로 이어져야 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게다가 남편은 나의 대단한 조력자인데도 그렇다.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는 완전한 동지이며 함께 투쟁한다.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평등한 부부관계를 만드는 데 힘쓴다. 시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불편할 만한 시부모 요구에 적절하게 선을 긋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가부장제, 남성지배사회에서 받는 억압은 여전하다.

시가를 생각해본다. 나의 시부모는 평범하게 좋은 분들이다. 나와 남편이 남들처럼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고 안심인 분들이다. 그러므로 평범하게 권위적이다. 한때는 여자가 남자에게 ‘죽어지내던’ 시대였다 말하고,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서 자식이 친근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동시에 자식은 무조건 부모 말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언제든 전화할 권리가 있고, 안부 전화를 정기적으로 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동시에 시부모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신다. 모순되는 일이 아니다. 나를 가부장적 결혼제도 안에서 가족으로 대해주시고, 며느리로 아껴주신다. 나는 그분들에게 사랑받는다, 며느리로서. 그분들에게 받는 사랑 중에 내가 나여서 받는 건 얼만큼일까? 나로서 받는 사랑이 전혀 없다 해도 놀랍지 않다. 그분들은 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가 아닌 누구였어도 며느리에게 주었을 사랑만큼을 주신다.

모멸을 전제로 한 사랑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받는 사랑에는 늘 소외감이 깃든다. 그 사랑이 향하는 곳에 내가 아닌 며느리가 있다. 그분들 앞에서 나는 나의 본질을 잃는다. 며느리라는 자리가 그렇다. 그 자리에 어떤 인격과 개성이 들어가든 며느리 매뉴얼이라는 게 견고하게 존재해서 모두가 동일한 과제를 할당받는다. 며느리라는 역할은 의무와 도리만을 남긴다.

역할은 개인을 지운다. 하지만 여러 역할 중에서 며느리가 유독 고통스러운 지점은 개인의 모멸감을 내재한다는 점이다. 며느리이기에 수행해야 하는 과제는 가부장제 피라미드 내의 최하층, 좋게 말해도 비서, 적나라하게는 노예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에 가부장적 결혼제도가 며느리 자리에 들어오는 개인을 필사적으로 지우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 업무는 세뇌가 필요한 일이니까. 본인 임무와 위치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게 며느리 역할이다.

그래서 내가 며느리임을 전제로 하는 이상, 시부모가 나를 위하는 마음이 아무리 정성스러워도 찜찜함을 떨치기 어렵다. 명절에 남편 큰집을 방문할 때 앞치마를 챙기라고 일러주는 시모의 배려가 그렇다. 결혼 첫날, 시부모 생일을 손수 적은 종이를 건네는 시부의 다정한 말투가 그렇다. 무의식적 차별에 기초한 나이브한 호의에 마냥 감사할 수가 없다. 그분들이 주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부장제가 예비해놓은 것

내 시부모가 특별히 나빠서 생기는 고충이 아니다. 물론 개인을 둘러싼 구조를 지울 수 없듯, 구조 안의 개인도 지울 수 없다.그렇지만 시스템은 개인보다 훨씬 힘이 세다. 무엇보다 이는 가부장제라는 체제가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억압이다.

구조의 문제임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운이 나빠서,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봐서, 가족을 사랑할 줄 몰라서, 혹은 이상한 남편과 시부모를 만나서 생기는 사건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짐작은 간다. 그가 만약 구조적 가해자라면, 부조리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려야 방관자이자 착취자인 본인에게 화살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구조적 피해자라면, 스스로 잘하면 괜찮을 거라 믿고 싶을 수 있다. 결혼제도에는 결함이 없으며, 따라서 본인에게 해당하지 않는 일이라고 애써 안심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결혼 전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혼여성이 겪는 온갖 놀랍고 기막힌 사례들을 접하면서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고르지도, 그런 시부모를 만나지도 않을 거라 막연히 장담했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가부장제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애초에 가부장제가 며느리에게 예비해놓은 고통이 있다.

그래서 고발한다

시스템으로 인한 불합리를 완벽하게 피해 가는 예외란 없다.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될 길은 요원하다. 그래서 지금 결혼제도를 고발한다. 결혼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이 그저 단순한 우연이나 자연스러운 관습이 아니라 명백한 차별이자 억압임을,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얼굴로 다가오는지 말하려 한다.

2018.06.19 16:07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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