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안 괜찮은 이야기

생각하다퀴어

사실 안 괜찮은 이야기

유의미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뭐, 우리나라 아직 살만하잖아. 나는 성소수자여서 받은 차별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

몇 년 전 내 입에서 나왔던 대사였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삽화처럼 선명하다. 내가 평소처럼 술자리에서 내 지론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아니 솔직히 혐오하면 뭐? 마음대로 하라 그래. 누가 뭐래도 상처 안 받으면 그만 아니야? 그냥 개가 짖는구나 하고 넘기면 되잖아. 내가 괜찮다는데 뭐가 문제야.”
“그래. 너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잖아. 근데 다들 너 같지는 않아. 안 괜찮은 사람도 있어.”
“야. 내가 레즈비언이라서 내가 괜찮다는데 너희가 뭘 아냐? 그거야말로 동성애자 다 불쌍하게 보는 거 아니야?”
“아니, 나는 알아. 내가 성소수자고, 나는 안 괜찮으니까.”

그 순간 시간이 멈추고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내가 애인 이야기를 할 때 제일 열심히 들어주던 고등학교 친구였고, 자기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하던 친구였다. 머리를 무언가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뒤돌아 그날 내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보았다. ‘지들이 멘탈이 약하니까 그렇지. 마음 똑바로 먹고 더 짓밟아주면 되잖아. 아니 어느 누가 내 앞에 와서 레즈비언 더럽다고 욕할 거야?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럼 그걸 가만두냐? 내가 더 잘나고 내가 더 예쁘면 아무도 뭐라고 안 그래. 그리고 혐오할 테면 하라니까? 오히려 그게 자유지.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잖아.’ 다 주워 담고 싶었다. 그래, 안 괜찮았다. 그 친구의 말이 맞았다. 안 괜찮은 사람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사실 안 괜찮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안 괜찮아도 괜찮다.

나는 언제나 삶을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목표 없이 멍한 눈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승리하는 게 내 목표였다. 삶은 전투고 나는 거기에서 이겨야 했다. 지는 건 곧 죽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뭐든지 잘했다. 공부나 일도, 사회생활도 인간관계도 다 열심히 필사적으로 해냈다. 이기면 괜찮았다. 내가 다른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의 편견을 누를 수 있었다. 마치 약육강식 정글의 생리처럼 아주 단순했다. 학창시절 당연히 내 앞에서 레즈비언이라 더럽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전교생이 함께 밥 먹던 식당에서 레즈비언 얘기를 하는 누군가에게 ‘뭐라고 했어? 내 앞에서 말해 봐.’ 할 수 있을 만큼 잘나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누나, 레즈비언이에요?’ 하는 무례한 질문을 한 후배에게는 술을 원샷 시킬 수 있었다. 나는 선배라는 권력이 있었고, 학과 사회에서 늘 인정받는 중심 멤버였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막연히 돈이 많아지거나 사회적으로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못하게, 혹시 뭐라고 하면 그럴 때 쓸 카드를 준비해뒀다. 누군가 공격하면 오직 내가 나를 방어해야 하니까.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당연하게도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또래에 비해 이기고 있지 않았다. 이길 수 없게 되자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 SNS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고, 빚을 내서라도 돈을 썼다. 옷과 화장품을 사고, 멋져 보이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멋진 장소마다 방문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썼으며,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삶을 즐기는 청춘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분주하게 노력했다. 레즈비언인 것만 빼면 다른 면에서 완벽한, 레즈비언인 것마저 쿨하게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오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점을 제외하고 다른 면에서 분발해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예쁘고 세련되어야 해. 그래야 아무도 뭐라고 못해.

내가 애인에게 늘 하던 말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줄곧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예뻐야 했다. 레즈비언은 못생겨서 남자에게 선택받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을 들을까 봐, 온 힘을 다해 반례가 되어서 내 인생을 통해 세간의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다. 스스로 들려주던 비슷한 말은 잔뜩 있었다. 나는 한순간도 약해 보여서는 안 되었다. 동성애자라서 그렇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공부를 잘해야 했다. 동성애에 빠져 성적이 떨어진다는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매 순간 삶의 과제들을 꽤 잘 해냈고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진 것들은 곧 내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나는 그것들이 없으면 자신감을 잃었다. 머리나 화장을 하지 않으면 자기애는 쉽게 사라졌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돈이 떨어지면 나 또한 다시 추락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정한 의무에 갇혀 아등바등 안개 너머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마침내 그 트랙에서 넘어졌다.

애인과 헤어져 아무것도 할 힘이 없어지자, 초라한 내 일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넘어지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삶의 모든 시간을 전속력으로 달리기만 하느라, 나 자신을 돌보는 데엔 소홀했다.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나는 무능함 그 자체였다. 삶에서 넘어진 건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 다른 잣대로 들이대면 사실은 내가 너무나도 무능하다는 사실에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무너졌다.

내 진짜 삶은 하나도 일구어지지 않은 채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철저하게 보이는 것 위주로 가꾸다 보니, 보이지 않는 일상은 망가져 있었다. 밥을 굶어가며 옷을 사느라 늘 위장이 아팠고,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들기 일쑤라 피부는 거칠었다. 핫하다는 파티를 돌아다니는 데에 시간을 다 썼기에 집구석은 엉망이었다. 내 방은 옷더미였고 나는 옷더미 위에서 잠을 청했다. 방에는 맥주캔과 재떨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늘 술을 마시며 안주로 배를 채웠기에, 밥을 따로 챙겨 먹을 줄도 몰랐다. 밥통으로 밥을 지을 줄도 몰랐고 라면 물도 맞출 줄 몰라서 배가 고프면 생라면을 먹었다. 옷을 세탁하는 게 익숙지 않아 옷이나 수건이 더러워지면 버리고 새로 샀다. 월세와 공과금은 8개월 치가 밀려있고,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아볼 엄두도 못 냈다. 갑자기 그 모든 게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더는 환상 속의 나에게 나 자신조차 속을 수가 없었다. 편집되지 않은 내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일부를 팽개치고 무언가로부터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대학교 성적은 낙제인 F 학점으로 가득했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나는 더 이상 알량하게 노력해서는 잘나 보일 수 없었다. 나는 취업을 하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할 것이며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그게 내 인생이었다. 그렇게나 열심히 살았는데, 사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빗속에서 길 잃은 작은 아이가 되어 홀로 남겨졌다. 나는 지금까지 가짜 날개를 달고 한껏 깃을 펼쳤던 공작새였다. 어쩌면 두려워서 꼬리를 한껏 부풀린 고양이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 가수 이효리는 힘들었던 시절 정신분석을 받고 돌아와 제일 먼저 먹을 것과 수건을 샀다고 한다. 그의 에세이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내가 쓸 깨끗한 수건 한 장, 신선한 우유 한 병 사본 적이 없었다. 늘 남들한테 보여야 하는 옷, 신발, 가방, 액세서리, 그런 걸 사는 데 신경을 썼지 진짜 나 자신을 위해 보약 한 재 지어먹은 적이 없었다.’ 1)

나는 그날 이효리를 떠올렸다. 내 서랍에 레이스 달린 예쁜 속옷은 잔뜩 있는데 집에서 입을 면 팬티 하나가 없었다. ‘이효리는 그래도 라면 끓이는 법은 알 텐데’하는 생각을 하자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당시 내가 성소수자라서 받은 차별은 정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파트너가 아픈데 수술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하거나, 혼인 관계가 아니어서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난 적은 아직 없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건강한 정신이 깃들 기회를 잃은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불안하고, 나 또한 오직 성소수자 정체성이 불안의 전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큰 비중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나의 치명적인 마이너스로 시작했다는 생각에 조급했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했고, 역량보다 많은 것을 끌어내려고 쥐어짰다. 국가고 정부고 동료 시민이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며, 나는 결국 혼자이고 어디에도 의존할 수 없으므로 더욱 철저하게 강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각자의 이유로 조금 더 잘나 보여야 했던 사람들에게, 숨 좀 고를 수 있는 틈이 있기를 바란다. 분명 이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시간이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속도전이라는 감각만 없어도,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조금도 아깝지 않을 텐데 말이다.

사실 이 모든 건 나 자신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다. 잠들 수 없던 수많은 밤에 불안과 무기력, 강박과 싸우던 날을 지나, 지금 나에게는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해졌다. 인생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삶에는 이기고 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며, 아무도 이기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더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고, 앞으로 가지 않고 멈춰있어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 알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벌써 괜찮다는 말을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2017년 5월 24일, 사적 공간에서 합의 하에 섹스를 한 동성애자 군인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지금까지 휴가 때 여자친구와 섹스한 남자 군인들은 아무도 유죄인 적이 없었으니까, 그의 죄는 성적 지향인 게 틀림없다. 그는 군인인 것만 빼면 우리와 비슷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쉬는 날에 애인을 만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섹스도 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군인을 꿈꾼 적이 있는데, 그 길로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도 해보게 된다. 군인권센터에 의하면 데이팅 앱을 통해 함정수사를 벌였다는데, 지금 내 얼굴도 레즈비언 만남 앱 몇 군데에 등록돼있는 게 떠오른다.

나는 과연 안전할까? 군인이 아니면 괜찮은 건가? 왜 어떤 시민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처벌받아야 하는가? 나와 친구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일상에서 자꾸만 싸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더 여유롭게 살자고 제안하고 싶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아직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좀더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다. 나는 정치적이고 싶지 않다. 끊임없는 전쟁 속에 살고 싶지 않다. 아무도 이기고 싶지 않고 이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나 상식으로 내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 담보되지 않아서 오늘도 여전히 그때처럼 가드를 올린다. 다시 언제라도 싸울 힘을 비축해둬야 할 것만 같아, 참담함을 삼키고 마음을 다잡는다.

1) 이효리, 『가까이』, 2012,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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