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공허 속에서 사라지다, 영화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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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공허 속에서 사라지다, 영화 <심판>

명숙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심판(2017)>

파티 아킨 감독

강렬하다. 영화의 주제의식도, 연출도, 주연배우인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도. 영화 <심판(In the fade, 2017)>은 독일의 파티 아킨 감독 작품으로 제7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제75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파티 아킨 감독은 터키계 독일인으로 주류사회에서 배제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주로 담았다. 부모가 이민자이기에 겪었던 주변인으로서의 경험이 영화에 잘 녹아있다.

<심판>은 독일 신나치주의자들의 인종테러, 즉 증오범죄를 다룬 영화다. 실제 2011년 독일에서 케밥집을 운영하던 터키인을 살해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당시 잡힌 범인들은 극우단체인 '국가 사회주의 지하당'에서 활동하면서 2000년부터 터키인 8명, 그리스인 1명 그리고 경찰관 한 명을 살해했다고 한다.

일러스트 이민

차별이 만든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바뀐 자리

영화를 보면 유럽에서 겪는 이주민 차별, 인종차별이 범죄사건에서 어떻게 투영되는지 알 수 있다. 영화의 서사나 인물 설정은 증오범죄를 다루는 우리의 시선을 깊게 뚫기라도 하듯이 피해자의 직업이나 아내의 인종 등 '디테일'까지 매우 세심하다. 

실제 사건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살해된 터키계 남편은 마약거래를 했던 전과자였다. 아내인 주인공 카티야는 독일인 여성이다. 전과자라는 것은 쉽게 피해자를 비난할 수 있는 조건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는 ‘순결한 피해자, 순수한 피해자’란 환상이 많다. 그러나 그런 환상에 딱 맞는 피해자의 전형을 그리는 순간, 우리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서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있는 독일 경찰과 언론은 사건을 접할 때부터 마약범죄 조직들 간의 싸움으로 단정 짓는다. 혐오범죄를 인정하기 싫은 독일 정부의 모습을 얼핏 엿볼 수 있다. 실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경찰은 살인 피해자들을 범죄자 다루듯 했다고 한다. 전 세계에 퍼진 인종 혐오를 비롯한 여성 혐오, 이주민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은 이런 점에서 혐오대상자만 다르지 양상은 비슷하다.

경찰은 유족인 아내 카티야도 범죄연루자인 양 대한다. 카티야가 테러 현장에서 보았던 독일계 여성에 대한 증언은 묵살되고, 그녀가 고통을 견딜 수 없어 흡입한 마약은 고인이 된 남편을 범죄자로 낙인 찍는 증거로 둔갑될 위기에 처한다. 여기에 시어머니는 아이를 남편의 회사 사무실에 맡기고 간 엄마로서의 책임을 카티야에게 묻기도 한다. 피해자들도 서로 동일하지 않은 위치(터키계 남성, 독일인 여성)에 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그린 증오범죄자들은 치밀하고 뻔뻔하다. 무죄를 받기 위해 숙박부를 조작하고 피해자를 비난한다. 그리고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속된 서로의 아내와 남편 만을 걱정할 뿐이다. 순결한 독일인의 국가를 지키는 것이 사람을 살해할 동기라도 되는 듯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한편 이들의 범죄 증거를 찾아낸 사람은 범죄자의 아버지다. 신나치주의에 경도되어 아들과 연을 끊고 산다는 아버지는 그를 신고했고 법정에서 증언한다. 그리고 유족인 카티야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떠올랐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상실감
뚜렷하게 그려내

영화의 주제의식에 감동하지 않더라도 모든 관객이 한 입으로 동의할 만한 요소는 주인공 다이앤 크루거의 뛰어난 연기력이다. 신혼 때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나 아이를 기르는 피곤함을 담은 표정, 그리고 남편과 아이를 동시에 잃고 다가온 혼란과 분노, 공포를 보여주는 눈빛과 한숨, 몸짓은 단연 돋보인다.

그 중에서도 기억 남는 장면은 살인범들을 직접 처벌하기 위해 그들의 거처 근처에서 기다릴 때다. 멍한 표정으로 새를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일어나는 표정과 몸짓은 압권이다.

이 장면은 다이앤의 연기력만 뛰어난 게 아니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과 영상을 주목할 만 하다. 인종테러범들은 해변에 있는 캠핑 차에서 나와 산책을 나가고, 그녀는 그들이 남편과 아들을 죽일 때 사용한 사제 폭탄을 똑같이 제조해서 차량 밑에 둔다. 차량을 보며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차량 위에 한 마리 작은 새가 맴돈다. 아무 죄 없는 한 마리 새! 평화롭게 바닷가에 있던 새는 폭발로 죽을 수도 있다. 어딘가 죽은 그녀의 아들과 닮았다. 정신을 차린 듯 그녀는 후다닥 뛰어 폭발물을 수거해온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통에 잠식 당할 뻔 한 영혼이 구해졌구나.

심리를 반영한 듯한
카메라 워킹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가족들과 함께 해변에서 놀던 영상을 보던 그녀는 다시 테러범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영상에는 아들과 남편이 손짓하며 이리로 오라고 한다. 그녀의 급격한 상실감이 느껴진다. 갈대밭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을 흔들리는 존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카메라는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하는 듯 촬영했다. 그녀가 들떠서 결혼식을 치를 때는 난잡하게 흔들리고, 사건이 나기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은 짧게 눈길을 주듯 스치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 나온 바다와 하늘의 모습은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바다인지, 바다가 위에 있는지, 하늘이 위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니 바다로 사라진 그녀인가, 하늘로 사라진 그녀의 가족인가. 아련하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이 반복된 혐오와 고통의 사슬을 상징하는 듯하다. 아프다.

아쉬운 건
한국어판 제목

한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의 단점, 나는 한국어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심판>이라는 제목은 영화에서 다룬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피해자가 겪는 각종 고통과 비난, 슬픔, 인간적 고뇌 등을 뛰어나게 그리는데 지나치게 단순한 제목은 그걸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 개인적 보복과 심판으로만 영화를 해석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영어 제목은 'In the fade', 독일어 원제는 ‘Aus dem Nichts’다. 직역하면 ‘공허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지다’이다. 영화는 혐오 범죄가 사라지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묻게 만든다. 고통이 잠식해버리는 삶, 가치관, 인간성. 

11월 14일 개봉하는 영화 <심판>에 핀치클럽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응모하시면 추첨을 통해 총 10쌍에게 영화 <심판> 예매권(1인 2매)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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