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9. 전신 섹스돌에 반대하는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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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아와 반려 가전 이야기 9. 전신 섹스돌에 반대하는 이유 (1)

유포리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성인용품 팝니다만
전신 섹스돌 반대합니다

전신 섹스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목표치를 돌파한 이후, 치열한 찬반공방으로 인터넷이 달아올랐다. 전신 섹스돌 수입을 허용한 대법원의 6월 판결 전까지 전신 섹스돌(일명 '리얼돌')은 관세법에 의해 수입이 규제되어 국내 생산 제품만 유통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저렴한 수입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유통될 전망이다.

유포리아는 전신 섹스돌 수입 허가에 반대한다. 성인용품 업계에서도 찬반이 뚜렷하게 갈리는 토픽인 만큼,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찬성 입장의 비즈니스들이 미디어 커버리지를 장식하고 있는 요즘, 작은 목소리라도 같은 업계에 반대 의견을 가진 종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섹스돌이 성욕 해소 도구?

전신 섹스돌 수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섹스돌이 성욕 해소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중증 장애인의 성욕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섹스돌도 자위기구의 한 종류이므로 일견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섹스토이를 판매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자위 기구들을 제치고, 굳이 성욕해소를 위해 여성과 꼭 닮은 레플리카가 필요한 걸까?’

육체적인 성욕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최대한 효율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짧은 시간에 강렬한 오르가즘을 느끼는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새티스파이어를 포함한 많은 여성용 제품들은 쾌락을 위한 기능에 초점을 맞춰 개발되었으며, 전혀 인간의 신체를 닮지 않았다.

새티스파이어 럭셔리 High Fashion

전신 섹스돌은 이런 여성용 제품들과는 방향이 다르다. 효율적으로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인간 여성을 똑같이 묘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제품이다. 육체적인 성욕 해소가 목적이라면 효과적으로 빠르게 사정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도구가 크고 무거워질수록 사용성은 떨어지고 보관과 관리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 소비자들은 전신 섹스돌을 욕망한다. 10cm에 100g이면 충분할 것을, 굳이 160cm 37kg의 제품을 찾는 것이다. 합리적이지 않다.

사람과의 교류로 해소할 수 있는 성욕과 섹스토이로 해소할 수 있는 성욕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다. 무생물인 자위 기구를 사용하면 사람과 성적 교류를 하는 것보다 육체적인 쾌락을 빠르고 강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정서적인 성욕은 충족시킬 수 없다. 바이브레이터를 상대로 BDSM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즉 섹스돌의 목적은 육체적인 오르가즘 뿐 아닌 정서적인 성 욕구 충족까지 포함하고 있다. 섹스돌이 인간 여성을 닮았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 오르가즘 뿐만 아닌, 실제 여성과의 섹스를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비싼 가격과 사용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여성을 똑같이 묘사할 필요가 없다. 성적 도구가 여성을 모방하고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여성의 존재 가치를 성능 좋은 오나홀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닌가?

중증 장애인의 성욕 해소를 위해 전신 섹스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가 더 어렵다. 신체 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라면, 손바닥 크기의 마스터베이터를 놔두고 비장애인도 옮기거나 세척하기 어려운 전신 섹스돌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신 장애인을 의미하는 거라면 더 의아하다. 신체 거동이 불편하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자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파트너를 만나기 어려운 성소외자의 행복 추구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중증 장애인을 성소외자의 대체어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애 혐오이며, 성적 쾌락은 개인의 영역이며 국가가 나서서 보조하거나 보호해야 할 권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일러스트 이민

인간과 자위기구를 동일시하는 행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일은 전신 섹스돌만의 문제는 아니다. 똑같은 목적을 둔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여성용 제품과 남성용 제품의 양상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용 섹스 토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기능을 중점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한 편, 남성용 섹스 토이는 점점 더 여성을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거나, 캐릭터나 스토리를 입곤 한다. 예를 들면 옆집 누나, 여동생, 처녀, 학생 같은 캐릭터와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다. 마치 상품이 아닌 유사 인간을 구매하는 모양새가 된다.

유포리아는 공산품은 공산품으로서 판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위는 상상을 동반하는 행위이다. 어차피 상상은 제품을 사용할 소비자의 몫인 것이다. 제조업자나 유통업자가 억지로 극단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서 소비자의 상상을 부추길 필요가 없다. 실제 제품 사용 경험과는 무관한 패키징과 광고로 인해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만 난무하고 여성 인권이 후퇴한다. 심지어 제작비도 더 든다! 이제 상상은 사용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제조업자와 유통업자는 제품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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