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친구'들의 인맥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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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구'들의 인맥사회

김평범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씨가 극비문서인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 보고, 심지어 수정까지 했다’는 내용을 단독보도 했다. 연설문 수정 내역을 보면, 최순실이 단순히 대통령의 측근을 넘어서 빨간펜 선생님, 혹은 대리 대통령의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국정농단도 이쯤되면 수준급이다.

최씨는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로, 최 목사는 박 대통령이 무려 20년 동안이나 매우 가깝게 지내왔다는 인물이다. 최순실은 현 정권의 사실상 막후 실세로 군림해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연일 언론을 통해 제기되는 중이다.

과거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박관천 전 행정관(경정)이 검찰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을 운운하며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라고 했던 발언이 새삼 힘을 받고 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은 우리 사회의 각종 비리가 굴비처럼 얽혀 줄줄이 딸려나오면서 그 끝판왕으로 등장했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미덕처럼 여겨진 '인맥''신뢰'가 그 비리의 굴비를 엮은 줄이었다.

비리의 굴비를 따라가 보면

이번 의혹의 시작점에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의 도박이 있다. 정운호 전 회장이 원정도박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자신의 항소심 변호를 맡은 전관 변호사를 접견 도중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거액 수임료 논란'이 인 것이다.

이는 법조계 전반에 걸친 전관예우 비리와 현직 판·검사까지 확대되며 각종 게이트 의혹으로 비화됐다. 또 이 불똥은 우병우 민정수석과 진경준 전 검사장, 김정주 넥슨 대표의 삼각 커넥션까지 이어졌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아들의 '꽃보직 특혜' 논란과 함께 가족회사 정강의 회령 및 배임 의혹에 휩싸였고, 진경준 전 검사장은 김정주 넥슨 대표로부터 뇌물 성격의 공짜 주식을 받아 대박을 터뜨린 혐의가 드러났다. 김 대표가 우 수석 처가의 강남 부동산을 매입할 때는 진 전 검사장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보도됐다.

여기까지 오니 골치가 좀 아프다. 이 논란이 또 우 수석의 비리를 보도한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싸움으로 번졌다가, TV조선의 K스포츠와 미르재단에 관한 의혹 제기, 한겨레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사실 단독 보도가 연이어 터졌다. 

그 뿐인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2천여건의 민원을 제기했던 이대 사학비리의 물결 속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결국 '최순실'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다. 숨이 찰 지경이다.

이 모든 일의 끝을 파헤치다 보면 우리 사회 어딘가에 '진짜 인맥'으로 얽힌 한 덩어리의 커다란 실타래가 나올 것만 같다.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친구’들

<20세기 소년> 속 '친구'의 표식

일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20세기 소년>이라는 만화책이 있다. 이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으로 그린 만화 속에서 예고했던 지구 종말의 미래가 '친구'의 이름을 딴 절대 악에 의해 실현되면서 차츰 지구가 멸망의 위기에 놓인다는 내용이다. 이 만화에서 악의 무리들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요즘의 상황을 보면 마치 이 만화책 속 이야기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만 같다. 무슨 목적인지 알 수 없는 친분으로 이어진 박근혜와 최순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검지 손가락을 편 손등을 보이는 일종의 '친구만의 표식'을 하면서 서로 비밀리에 복종한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핵심 측근의 총탄에 잃고, 그 뒤에 다른 측근들이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박 대통령은 배신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최순실이 박근혜의 집착이라 해도 좋을 ‘우정'을 바탕으로 실세가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봄직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전이었던 2012년 1월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나와서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는 이경규의 질문에 

"굉장히 많은 사람을 보면서 살았다. 저러던 사람이 이렇게 변하고 이런 사람이 저렇게 변하고…지금은 직감 같은 게 있다. '마음으로 이럴 거야' 느끼는 게 있는데 가끔 맞는 것 같다"

고 말한 적도 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일기를 묶어 1993년 출간했던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의 곳곳에서도 알 수 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몇 번 만나만 보아도 그 됨됨이를 훤히 알 수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몇 년을 보아 와도 그 진짜 모습을 모를 수도 있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 어수룩한 체 하면서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고, 뒤로는 음모를 꾸미고 음흉했던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
(1989년 1월13일 일기)

아, 이쯤 되면 한마디로 대통령에게 직감적으로 믿음을 주는 '진짜 친구'가 되면 내 삶의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수 있었다는 허탈감 마저 든다. 아니면 박 대통령이 말하는 '진짜 친구'가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이었고, 대통령 역시 그 주변 친구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상황에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검찰 수사 뿐인데, 문제는 거기도 '진짜 친구'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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