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9. 쿠바의 파티, 피에스타

알다쿠바여행

떼아모 쿠바 9. 쿠바의 파티, 피에스타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정열의 상징, 피에스타!

그 동안 에피소드들로 쿠바 사람들의 이런저런 성격을 표현해보았다. 다소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나오미의 경험을 한 줄로 정리해 보자면, 쿠바노와 쿠바나는 관심받기 좋아하고 정열적인 성격이다. 이런 이들의 성격상 껌뻑 넘어가게 좋아하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피에스타(fiesta), 파티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파티는 항상 조용하고 성대한 모임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잔치라면 몰라도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늘 헐리우드 영화 속에 나오는 백인들의 파티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거대한 성에서 열리는 파티, 드레스코드를 맞춰입은 사람들, 샴페인 그리고 뷔페. 

쿠바에서는 그야말로 '놀아 볼 건수'만 된다면 곧장 피에스타로 연결된다. 격식도 필요없다. 최대한 눈에 띄도록 화려하게 꾸민 뒤 화끈하게 춤 추고 놀 수만 있다면, 장소가 어디든 그것이 피에스타인 것이다. 비교적 규모가 큰 피에스타를 예로 들어보자면 카니발(carnaval), 새해 첫 날, 15세 생일 등이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카니발은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다. 각 주에 속하는 도시나 마을마다 카니발을 시작하는 날짜와 기간이 다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카니발은 7월 말에 열리는 산티아고 데 쿠바의 카니발이다. 공식적으로는 매년 7월 20일부터 8일 동안이 축제 기간이지만, 산티아게로(santiaguero, 산티아고 사람)에게는 대략 한 달이 내리 피에스타 기간이다. 이 최고로 더운 기간에 모든 이들이 길거리로 나와 신명나게 춤추고 먹고 마신다. 축제의 정점을 이루는 본 축제 기간에는 까로사(carrosa)라고 하는 카 코스프레 행렬이 있다.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댄서들이 차 위에서 기가 막히게 춤을 춘다. 카니발이 열리는 8일 동안 산티아게로들은 잠을 한숨도 안자고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새해 첫 날은 전세계가 공통적으로 즐기는 축일이다. 저마다 즐기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떡국을 나누어 먹으며 송구영신을 기리는 것처럼, 쿠바의 새해에도 큰 피에스타가 기다리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일찍부터 가족끼리 모여 성대한 식사를 준비한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는 뿌에르꼬 아사도(puerco asado)라고 부르는 새끼돼지 통구이다. 직접 만든 화덕에 굽는 것이 전통인데, 수동으로 돌려야하므로 온 가족이 교대로 바베큐 바를 돌린다. 고기가 익는 동안 음악과 춤이 빠지면 섭섭하다. 

밤이 깊을수록 이미 지칠 만큼 춤 추고 논 것 같지만 이것은 전야제일 뿐이다. 1월 1일이 된 순간 모두의 파티가 '제대로' 시작된다. 각 지역마다 특색 있게 새해를 맞이하는 피에스타를 연다. 서로에게 새해 축하 인사를 나누고, 동네의 가장 큰 상설무대에는 가수가 초대되기도 한다. 아바나의 경우 좀 독특한 풍습이 있다. 집 밖으로 물을 끼얹으며 송구영신을 한다. 이 기간에 뭣모르고 걸어다니다 값비싼 카메라가 시원하게 샤워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새해 첫날 아바나에 있는 여행자는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자. 

입이 떡 벌어지는 킨세아녜라(Quinceañera) 체험기

마지막으로 소개할 성대한 피에스타는 15세 생일파티(킨세아녜라, Quinceañera)다. 쿠바에서는 15세를 기점으로 성인으로 간주한다. 15세를 앞둔 자녀를 둔 부모는 성대한 성인식을 위해 오랜 기간 각별히 준비한다.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 그가 원하는 컨셉의 예쁜 옷을 여러 벌 준비해 사진을 찍고 앨범을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가족들끼리 점심식사를 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부모님과 왈츠 같은 댄스를 추기도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날이 저물면 본격적 피에스타가 시작된다. 생일파티는 대부분 생일 주인공의 자택에서 진행하는데, 온 동네 잔치 수준으로 성대하게 열리곤 한다. 음향장비를 최대한 빵빵하게 준비하고, 돼지머리와 야채를 넣고 푹 고아 만든 깔도사(caldosa)를 냄비 가득 준비한다. 맥주, 럼, 음료수, 샐러드파스타, 케이크 등도 충분히 준비한다. 이것들은 춤 추다 탈진하지 않게 정신줄을 붙잡아 줄 중요한 에너지원들이다. 

2015년,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한 여성의 15세 생일파티에 초대 받은 적이 있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단지 내가 렌트한 숙소 옆 집에 산다는 것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몰랐다. 하지만 15세 생일에 외국인이 와서 축하해주면 딸이 기분 좋아할 것이라는 부모님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초대를 받았으니 빈 손으로 갈 수 없어 럼을 한 병 손에 들고 파티 장소를 찾았다.

나의 등장은 조금 떠들썩했다. 여기저기서 "어머! 중국 여자가 왔어. 친구인가?" 하는 뉘앙스의 웅성임이 들렸다. '희귀한' 초대객이 이목을 끌자 파티 주인공의 콧대는 점점 올라갔다. 나의 등장이 그녀의 생일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었다니, 안심이었다. 파티 장소에서 처음 만난 '내 친구'와 셀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나오미와 '친구'

잠시 후 대단한 음향에 이끌려 앞마당에 나가 보니, 맙소사. 선거 홍보 차량 같은 게 통째로 들어와 있었다.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가수도 초빙됐다. 지역 가수가 부르는 신명 나는 랩에 맞추어 어깨뼈와 골반뼈가 빠지도록 춤을 추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오미에겐 아는 이 한 명 없는 파티였다.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더운데 주인 아주머니는 계속 뜨거운 깔도사를 플라스틱 컵에 넣어 손에 쥐어주셨다. 고깃국 먹고 조금 더 힘내란 뜻이었나보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파티 참여 인원을 살펴보니, 구성원이 정말 다양했다. 3세 남짓한 어린 아이가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음악에 맞추어 골반을 씰룩거렸다. 곧 아이가 나올 법한 만삭의 임부도 있었고, 지팡이 짚은 할머니도 계셨다. 가족을 중시하는 쿠바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파티였다.

어린이 초대객들의 댄스
클럽을 방불케하는 15세 생일파티

즐길 준비 되었는가, 파티 애니멀! 

말이 나온 김에, 쿠바노들의 파티 체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쿠바노는 할 일 없이 늘 거리를 배회하거나, 몸을 가꾸기 위해 쉴 새 없이 운동을 하는 등, 대부분 몸 쓰는 일을 좋아하고 기초 체력 자체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그들의 체력을 제대로 검증하고 싶다면? 함께 피에스타에 가면 된다. 

쿠바노와 함께 놀다보면 마치 '마법에 걸린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가 된 기분이다. 이제 그만 추고 싶은데, 집에 가고 싶은데, 나의 댄스를 멈출 수가 없다. 2013년, R군의 생일파티에 초대 받았다. 20개들이 맥주캔 박스를 들고 그의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나는 귀빈이었다. 

R군의 생일파티에서 맥주를 즐기는 나오미
나오미를 귀빈으로 만들어 준 맥주들

그의 엄마가 준비한 간단한 파티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나니, 슬슬 파티가 시작되었다. 한국이었으면 백퍼센트 민원이 들어올 수준의 음악이 꽝꽝 울려퍼지자 너도나도 일어나 광란의 댄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피에스타는 꼭 어딘가 특별한 곳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이 날 깨달았다. 내가 사 온 맥주는 빠른 속도로 동이 났다.

홀로 칵테일을 즐기기 위해 구매한 작은 사이즈의 럼을 한 병 꺼냈다. 럼을 보자마자 우와! 하고 달려와 헹가래를 치려는 일동을 간신히 막아냈다. 오후 2시 경 시작된 파티는 밤 10시가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추가된 친구들로 집 전체가 파티장이 되었다. 심지어 문을 열어 옆 집까지 장소가 확장되었다. 

음식을 탐하는 파티 애니멀들

밤 12시가 되었다. 이를 악물고 춤을 췄으나 더는 못하겠어서 집에 가겠노라 말했다. 생일파티 주인공인 R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 표정을 외면할 수 없어 두 시간을 더 버텼다. 팔 다리에 감각이 없는 기분이었다. 세 번의 탈출을 시도한 끝에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어서야 겨우 파티 장소를 벗어났다. 어찌나 피곤한지, 옷도 못 갈아 입고 땀에 절은 그 상태로 침대에서 기절해 버렸다. 

서너시간 잤을까? 누군가 문을 강하게 두들기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문을 연 순간 할 말을 잃었다. R과 한 트럭은 될 법한 그의 친구들이 활짝 웃으며 서있었다.

"나오미, 푹 쉬었지? 이제 해변 가자! 춤 추고, 수영하고, 하루 종일 놀다 오자!"

R은 정말 사랑하는 나의 쿠바 남동생이자 베스트 프렌드이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두 발 달린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2014년부터는 그의 생일을 피해서 쿠바에 방문했다. 축하도 좋지만, 놀다 못해 과로 아니 과파티(過-party)로 쓰러지는 기분을 두 번 느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무한체력의 R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오늘 파티 주인공은 나야 나! 

"3월에 너만을 위한 돼지 바베큐를 해줄게. 꼭 와야 해. 그 날은 너의 날이야."

지난 번 방문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해 준 내 사랑 마리엘라를 만나기 위해, 1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다시 산티아고 데 쿠바로 왔다. 이번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쿠바 가이드를 해 주고 있는 두 명의 고객도 함께 초대했다. 

도착하자마자 주먹보다 큰 구아바를 한 접시 내밀며 환영해주는 마리엘라. 그를 따라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을 가로질러 파티 장소로 향했다. 파티 장소에도착하니 이미 바베큐는 돌기 시작했고, 안뜰에서는 여러 가지 부재료가 준비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이 평화로운 장소와 따뜻한 사람들을 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O군의 모든 가족들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새끼돼지 바베쿠가 준비되는 모습

적정한 사이즈의 새끼돼지를 찾고 예약하기 위해 O군은 근교에 있는 시골 마을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숯을 구하지 못해서 친척 동생과 직접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 해왔다고 했다. 도끼질을 얼마나 했는지 그의 손은 물집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파티 장소 호스트인 둘째이모는 초조함에 잠도 못이루셨단다. 외국인들이 불편해할까 가장 걱정했다던 화장실 문을 연 순간, 둘째이모가 얼마나 고민하셨을지 맘 속 깊이 와 닿아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훤히 뚫려 있던 변기 뚜껑 자리에 박스를 잘라서 만든 뚜껑과 예쁜 덮개가 놓여 있었다. 신문지가 가득 있던 공간에는 평소 돈 주고 사지 않았을 두루마리 휴지까지 걸려있었다. 

손님을 위해 정성스럽게 치워 놓은 화장실
"혹시 너무 재미있어서 여기서 늦도록 놀다가 자고 가야 할수도 있으니까...."

이모는 수줍게 이야기 하시며 깨끗하게 정돈된 빈 방 한 군데를 보여주셨다. 마당 한 쪽에는 신주단지 모시듯 스피커가 진열되어 있었다. 살사, 레게똥, 키좀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흘렀다. 돼지바베큐는 수동으로 돌려야하기 때문에 가족의 모든 남성들이 교대로 돌리고 있었다. 고기가 익는 동안 코코넛도 따주고, 오는 길에 뽑아 온 사탕수수대도 잘라주셔서 입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세 이방인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얻어먹고 구경하는 동안 마리엘라는 점심상을 차려주었다. 돼지바베큐는 적어도 6시간은 돌려야한다며 그 동안 먹을 닭요리를 해주셨다. 예상했겠지만 '미친 맛'이다. 과장이 아니다. 두 동행인도 감탄하며 점심식사를 마쳤다. 

열심히 요리하고 돼지바베큐를 돌리다가도, 다른 사람과 교대를 하면 그 즉시 스피커 앞으로 와 신명 나게 춤을 추는 가족들. 이렇게 흥이 넘치는 가족들 속에서 과묵한 성격의 O가 태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드디어 6시간 동안 장작불에 기름을 뚝뚝 떨구며 담백하게 구워진 새끼돼지 통구이가 완성되었다. 하루종일 주워 먹어 배가 터질 지경이지만 상관없다. 이 돼지는 내 돼지니까!

마리엘라와 나오미

마리엘라가 각각의 손에 포크를 쥐어주더니 돼지바베큐 앞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리고 말했다.

"먹어! 다 너희들 것이야!"

바삭하니 잘 익은 껍질 부분을 포크로 쿡 찍으며 기념촬영도 마쳤다. 어디든 맘에 드는 부위를 포크로 뜯어 사정없이 씹어먹었다. 맙소사. 너무 맛있다. 먹을만큼 양껏 집어먹자 남성들이 바베큐 기둥을 뽑아 통돼지를 주방으로 가져갔고 돼지는 해체됐다. 잠시 뒤, 우리만을 위한 성대한 식탁이 또 다시 차려졌다. 돼지고기, 샐러드, 밥, 잊지 않고 냉장고에서 꺼내주신 고추장까지! 완벽 그 자체! 

후식으로 주신 샐러드파스타까지 양껏 챙겨 먹고 나니, 아쉽게도 예약한 택시가 도착할 시간이다. 일행들이 여기서 잘걸 떠나기 아쉽다고까지 말했으니 오늘 일정은 성공인 듯 하다.

하늘 가득 촘촘히 떠있는 별을 바라보며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마리엘라가 꼭 끌어 안아주며 우리에게 말했다.

"나오미는 우리 가족이야. 언제든 찾아와. 널 위한 피에스타는 늘 열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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