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발견 6. 어디까지나 근사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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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발견 6. 어디까지나 근사한 어른

조은혜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동정 없는 세상 개정판(2013) / 박현욱 저, 문학동네>

* <동정 없는 세상>은 <아내가 결혼했다>의 작가 박현욱의 첫 장편 소설이다. 박현욱 작가가 <아내가 결혼했다>로 한국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고정적인 성 관념을 난도질했다면, <동정 없는 세상>은 소년들의 왜곡된 성 관념 그리고 <아내가 결혼했다> 이전에 가족의 다양성을 다뤘다. 수능이 끝난 남고생 준호는 자신의 집안 환경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성장한다.

어른은 없었다

<동정 없는 세상>은 어쩔 수 없이 내 10대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이게 맞는 건지, 저게 틀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남들 다 있는 가족 구성원이 없다는 사실도 괴로웠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집이 아니라는 것. ‘부모님께’로 시작하는 가정통신문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 대학에 대한 확신도, “대학 따위가 뭐 대단한 거라고 거기 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겠”냐고 말해주는 집안 어른도 없었다.

10대는 또래집단에 취약하다. 집안 환경, 앞으로의 진로, 가치관 같은 것이 또래와 다를 경우, 그 다름이 부끄럽다. 이성과 섹스도 마찬가지다. 거의 여중이나 다름없는 중학교를 거쳐 여고에 다닌 나는 임신한 친구가 욕 먹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선택받아야 한다던 말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여자가 임신하면 욕을 먹는 게 맞고, 남자에게 선택받지 못 하면 비참한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 아이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내가 봤던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은 폭력적이었고, 섹스와 여자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을 때리는 남자 아이도 많았다. 여자를 ‘먹었다’고 말했고, 한 명 한 명의 여자는 그들에게 하나의 트로피였다. 누군 뚱뚱하고, 누군 못 생겼고, 누군 가슴이 작다는 소리를 여자애들 앞에서 말했다. 남고 애들은 교실 창문으로 지나가는 여자애들을 ‘몰래’ 훔쳐보다 못생겼다 판단되면 물건을 던졌다.

이건 아이들 스스로에게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그 주변에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는 데에서 기인한 문제다. 그 10대 아이들 주변의 어른들은 이성과 섹스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 쉬쉬한다. 정상 가족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는 말 대신 결손가정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섹스를 어떻게 하는지가 가장 궁금한 아이들에게 성교육이랍시고 낙태 영상이나 보여준다. 결국 아이들은 포르노로 섹스를 배운다. 다른 사람들과 달라도 된다는 걸 알려주고, 잘못된 가치관을 바르게 잡아줄 수 있는, 길을 정하는 것 대신 선택지를 알려주는 근사한 어른들은 정말로 없다.

꼰대 말고 조력자인 어른

<동정 없는 세상>의 주인공 준호에겐 이런 근사한 조력자가 둘이나 있다. 엄마 “숙경씨”와 삼촌 “명호씨”다. 이 가족은 권위적이지 않다. 아들 준호는 엄마와 삼촌이란 호칭보다 이름을 더 자주 부른다. 명호씨는 준호와 맞담배를 피고, 명호씨는 숙경씨의 담배를 훔쳐 피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 “콩가루같은” 이 집안은 엄마와 아들, 삼촌 같은 관계 뒤로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엄마와 삼촌의 이름을 부르면서 준호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준호는 아빠가 없다. 숙경씨는 왜 아빠가 없냐는 어린 준호의 물음에 “없으니까 없는 거”라고 말한다. 준호는 “다른 집에는 다 있”다고 받아쳤지만 숙경씨는 당황하지 않고 말한다.

우리 집에는 아빠만 없는 게 아니라 할머니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고 네 형이나 동생도 없어. 근데 어떤 아이들은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을 테고 또 어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기도 하지? 또 어떤 아이들은 형이나 동생이 있고? 식구라는 건 다 그렇게 집마다 다르게 있는 거야.

숙경씨는 준호의 미래를 지정하지 않는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준호가 수능이 끝나고 “대학을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도 정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숙경씨는 말했다.

“네가 한 제일 큰 효도가 뭔지 알아?”
“네가 태어나서 20년 동안 내 옆에 있었다는 거야.”
“대학 따위가 뭐 대단한 거라고 거기 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겠니.”
“나도 대학에 가지 않았는데, 네가 언제 대졸 엄마 아니라고 불평한 적 있었어?”

미용사인 숙경씨는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추천한다. 고졸임을 부끄러워 여기지도 않는다. 자신이 고졸이란 이유로 준호에게 대학을 가라고 하지도 않는다.

명호씨는 숙경씨와 다른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좋은 대학 나오고도 백수인 삼촌은 준호가 “초등학교 때부터 전 과목 과외 교사”를 했지만 준호의 성적에 별 관심이 없다. 대신 준호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준다. “실제 여자의 몸은 남자의 악력만큼 그렇게 강한 압력을 주지 않는”다며 “마스터베이션도 잘해야” 된다고 충고한다. 준호가 “언제쯤 동정을 떼는 게 적당”하냐 물으면 관련 통계와 법을 말하며 “떼고 싶을 때 떼”라고 대답한다. 준호의 욕구가 이상한 것임이 아님을 알려준다.

명호씨는 준호가 쓴 야설을 “글”이라고 말하며 “잘 살려보면 네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지도 모”른다고 한다. 진로를 정하지 못 한 준호에게 “10년동안은 우선 네가 무얼 하고 싶은지 찾아보”라고, “대학에 가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한번 해보”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명호씨와 준호는 대등한 관계라는 거다. 명호씨는 준호에게 그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책을 추천하지만 읽는 걸 감시하지 않는다 준호가 공부를 못 한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준호의 친구들과 준호를 비교하지 않는다.

좋은 조력자를 둔 준호는 또래와 다르다. 아빠가 없다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성욕이 왕성하다는 이유로 “한 번 하자”며 여자친구 서영을 괴롭히긴 하지만, 또래처럼 그 이상의 폭력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 하는 서영을 보며 “똑똑한 여자는 피곤한 법”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이상하다 느낀다. “여자가 능력있고 똑똑하면 좋은 일이지 왜 그걸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하는지 모르”겠다. 여자친구와의 일을 떠벌리면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은 여자”라는 걸 알고 있고, “여자에게 민폐나 끼치는 하찮은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

어디까지나 근사한 어른

박현욱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한 김형준 문학평론가가 지적했듯 “준호는 여전히 아주 행복한 편에 속”하고 준호네 집은 일종의 “유토피아”다. 많은 아이들 옆에는 명호씨나 숙경씨같은 어른이 없다. 아빠가 없을 수도 있다고, 식구는 집집마다 다른 거라고,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네가 볼품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 시절에 참으로 궁금한 이성과 섹스를 주제로 설명이나 설교를 하는 사람은 더러 있어도, 아이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정말 없다.

경험은 중요하다. 어떤 요소로든 차별 받지 않고, 한 어른과 대등한 관계가 되어 대화하는 경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다. 준호가 나는 왜 아빠가 없냐고 물었을 때 숙경씨가 일부 드라마의 엄마들처럼 울기만 했다면 준호는 아빠가 없다는 것을 큰 결점으로 생각하며 자랐을 것이다. 준호가 명호씨와 마스터베이션과 섹스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포르노로만 섹스를 배웠다면, 더 강하고 폭력적인 자극에 반응했을 것이다.

전에 본 한 사회학 교수님은 여중, 여고를 나와 여대에 진학한 분이셨다. 교수님의 아버지는 교수님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집안일을 시킨 적이 없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여자라고 차별 받은 적이 없었다. 학계에 자리를 잡으려 할 때에야 벽에 부딪혔다. 동료 여자 교수들은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것도 그 분에겐 차별로 보였다. 교수님은 그래서 여대가 소중하다고 하셨다. 적어도 몇 년은 성(性)을 배제하고 경쟁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그 경험은 세상과 마주했을 때 소중한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준호는 성인이 되면 좀 더 크고 넓은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아마 아빠 없는 놈이라는 편견이,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단톡방이 있는 곳일 거다. 하지만 어렸을 때 유토피아를 경험했기에 준호는 이 동정(同情) 없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느낄 거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더라도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신념을 가질 거다. 세상이 자신을 바꾸지 않게 하려고 노력할 확률 또한 높다.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유토피아를 선사하는 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 될 지, 절망이 될 지는 현재의 어른들에게 달렸다. 숙경씨나 명호씨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디까지나 근사한”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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