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14. 마틸다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14. 마틸다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뮤지컬 <마틸다(Matilda)>

초연 Courtyard Theatre, Stratford-Upon-Avon(2010)
Cambridge Theatre, London(2011)
Shubert Theatre, New York, NY (2013 - 2017)
작곡 Tim Minchin
작사 Tim Minchin
대본 Dennis Kelly
원작 Roald Dahl
연출 Matthew Warchus
수상
 2012년 로렌스 올리비에상 
신작뮤지컬, 연출, 여우주연, 남우주연, 안무, 무대 디자인, 조명 디자인, 여우주연(마틸다 역 4인 공동 수상) 등 8개 부문 수상
2013 토니상
대본, 남우조연, 무대 디자인, 조명 디자인, 특별상(마틸다 역 4인 공동 수상)

 

예전에 한참 인기 있었던 TV 미니 시리즈 중에 <환상특급>이라는 독특한 시리즈가 있었다. 그 중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는 내용의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아이는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이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부모를 부모들의 동물원에 버린 후 참한 새 부모를 얻어 돌아온다. 부모로 간택 받고 싶은 어른들은 아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주겠노라 유혹하지만, 아이가 선택한 부모는 그저 사랑을 많이 주고 싶다는 부부였다.

로알드 달의 소설 <마틸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티비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가 없다. 놓친 앞부분에 분명히 마틸다의 입양 장면이 있을 거라 굳게 믿었건만, 도서관까지 달려가 일주일이나 기다려서 빌려본 바에 의하면, 아뿔싸. 마틸다는 정말로 웜우드 부부가 낳은 진짜 그들의 아이였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천재, 초능력자, 여섯 살 반의 완벽한 여성

마틸다의 나이는 여섯 살 반.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미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을 게 틀림없었을 아이다. 태어나자마자 아이는 깨닫는다. 다른 가족들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 마틸다는 천재로 태어났지만 웜우드 가족이 원하는 것은 천재가 아니라 사기꾼이었다. 가족들이 어린 마틸다를 혼자 두고 집을 비울 때면 마틸다는 스스로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해서 제대로 식기를 갖추고 식사를 했고, 아무도 묶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머리를 묶고 도서관을 찾아가 어린이 섹션의 책을 걸신들린 듯이 읽었다. 

마틸다는 학교를 가는 게 소원이지만 집 볼 아이가 필요했던 부모 탓에 학교를 가지 못하다가, 성격이 불 같은 트런치불 교장에게 아버지가 다 망가진 차를 속여 팔면서 학교에 가게 된다. 두근거리며 학교에 도착한 마틸다는 독재자 트런치불 교장이 학생들을 개처럼 대하는 와중에도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허니 선생님을 담임 선생님으로 만나고, 친구들을 사귀며 행복함에 차오른다. 

아버지에게 화를 내다 자신에게 사물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까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마틸다는 자신의 초능력을 사용해 트런치불 교장이 빼앗아간 허니 선생님의 유산을 돌려주고 트런치불 교장을 학교에서 영원히 추방한 후, 사기죄로 도망가는 부모에게 자신을 파양하고 허니 선생님에게 입양시킨다는 서류에 사인까지 받아 허니 선생님과 진짜 엄마와 딸이 되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


'환멸' 속에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는 마틸다

몇 년 만 늦게 영화에 등장했더라면 마틸다도 <X-Men>의 일원이 됐을 지도 모르지만, 책에 의하면 마틸다는 점점 초능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니 엑스맨들이 판을 칠 때도 마틸다는 평온하게 허니 선생님과의 인생을 즐겼을 듯 하다. 화를 낼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섯 살 반에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다 이 책을 찢어버린 아버지에게 분노해 티비 모니터를 폭발시켰던 이 아이의 스무살이 너무나 궁금해지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로알드 달은 마틸다의 후속편을 남겨주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마틸다가 7살이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마틸다가 자신의 초능력을 알아챈 때는 마틸다가 6살 반이 되었을 때였다. 흔히들 마틸다를 두고 소설 <해리 포터>의 헤르미온느의 전신이라고 할 정도로, 마틸다는 이미 여섯 살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개척해 나가는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마틸다가 인류애를 잃지 않았다는 데 있다. 마틸다는 TV만 볼 것을 강요하고 책 읽는 자신을 비웃는 오빠와 부모와 함께 살면서도 인간에 대한 동경과 애정을 잃지 않는다.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 덕분에 자신의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과 다른 환경의 세상이 집 바깥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동반자, 허니 선생님

천재들은 때로 매우 외롭지다만 마틸다는 다른 천재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외롭다. 격려는 커녕 누구로부터도 위로나 따듯한 애정 어린 말 한디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책 속의 세계를 통해 인간애를 익힌 마틸다는 단숨에 우정을 구별하고 다정한 선생님을 알아본다. 그들을 만났을 때 경계하기는 커녕 활짝 문을 열고 그들을 받아들인다. 애정에 대한 목마름과 여섯 살의 순진함이 만나는 순간이다. 영화 속에서도 이 장면은 뭉클한데, 뮤지컬 속에서도 마틸다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허니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은 큰 감동을 안겨 준다.

하지만 이 작은 마틸다의 행복한 세계를 끔찍하게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 "애들은 벌레 같은 존재"라고 굳게 믿는 허니 선생님의 친척인 트런치불 교장이다. 허니 선생님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살던 집도 빼앗기고 그 근처에 초라한 오두막집을 지어 사는 매우 소심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학생들을 트런치불 교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은 매우 닮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 받지 못했지만 인류애를 포기하지도 상실하지도 않았다. 마틸다가 허니 선생님과 단숨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어찌 막으랴. 정의감이 넘치는 것조차도 닮았지만 구현하는 방식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허니 선생님이 트런치불 교장의 눈을 피해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면 마틸다는 그 트런치불 자체를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마틸다는 자신의 초능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연습을 한 후에는 두통이 따라오지만 마틸다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트런치불 교장을 물리친다. 도대체 우리는 이 여섯 살짜리에게 얼마나 더 감동해야 하는 것일까?

어른들을 물리치는 어린이 영웅

마틸다의 반대편에는 ‘어른들’이 있다. 부모와 트런치불 교장으로 대변되는 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입 다물기’를 요구한다. 그들이 원하는 아이는 잘 때 되면 자고 시키면 ‘네’하고 말하는 아이다. 아이에게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기를, 어디 하나라도 튀지 않기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이 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은 아이였을 때는 천재였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이 천재라고 착각하며 설레곤 한다. 

마틸다는 이렇게 쓰고 보면 완벽한 인물처럼 보인다. 천재에 초능력자이며 인간애와 유머감각, 정의감마저 갖추었다. 그러나 이런 마틸다에게도 약점은 있다. 마틸다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어린이’다. 비록 아무리도 마틸다가 주변의 어른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혹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낀다 해도 마틸다의 외관은 여섯 살이다. 뮤지컬의 즐거움은 이 여섯 살의 작은 몸 안에 갇힌 천재 초능력자가 어떤 방식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거나, 인생을 즐거운 것으로 변화시켜 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틸다는 야무지게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요구한다. 마틸다에게 무엇 하나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 어머니가 마틸다에게 해 준 가장 좋은 일인 파양과 입양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모습은 사실 기괴할 정도다. 이토록 어머니로부터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인물이 있다니. 영향을 받기는 커녕 주인공이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그런 어머니라니. 

핏줄이 뭐? 가족은 선택하는 거야

그리고 그들은 마틸다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다. 어떻게든 변화되고 결국은 사랑으로 마틸다를 감싸고 마틸다에게 좋은 울타리가 되어주는 그런 결말은 없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그토록 가족애를 강조했던 로알드 달이 맞나 싶을 정도다. 가족이라도 때로는 남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은 사실은 가족이라는 것을 그와 마틸다는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작은 마틸다가, 그리고 마틸다의 친구들이, 어른이 된 허니 선생님이, 아이 옷을 입은 어른들이 점점 가세하며 부르는 "When I Grow Up" 은 어른이 되면 하지 않을 것, 어른이 되면 꼭 하고 싶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는데 여전히 하지 못한 것, 혹은 여전히 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 등장한다. 

마틸다는 작품 속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도 다른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너무나 독립적이고 완성되어 있기에 오히려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섯 살 반의 마틸다의 인생은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가는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일곱 살에 사랑하는 허니 선생님의 아이가 된다. 그 마틸다가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고 스무살이 되었을 때, 더이상 초능력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행복해진 마틸다가 세상으로 뚜벅 뚜벅 걸어 나아가 다시금 초능력을 사용하게 될 순간들이 기대되는 것은 왜일까. 

뮤지컬 <마틸다>는 이번 가을 한국에서 초연을 한다. 지난 6월25일 제작발표회에서 "Naughty" 시연을 했다.

쬐끄맣고 힘이 별로 없다고 해도
쬐끄만 용기를 내면 할 수 있어
험한 세상 휩쓸리고 휘둘려
날 잡아 잡수라고 다 포기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가 않아, 똑바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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