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6. 마마 로즈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6. 마마 로즈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뮤지컬 <Gypsy> 

초연  Broadway Theatre, 공연기간 1959 -1961 
연출/안무 Jerome Robbins
대본 Arthur Laurents
작곡 Jule Styne
작사 Stephen Sondheim

 

너의 행복은 나의 방식대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기승전결의 드라마 형식을 갖추기 전에도 브로드웨이 공연계는 존재했고 브로드웨이 극장가가 현재의 ‘브로드웨이’를 따라 자리 잡기 전에도 극장가는 있었다. 뮤지컬 ‘집시’는 오래 전 보더빌이나 벌레스크라고 불리던 장르가 공연되던 시기의 이야기이며 그 장르가 경제 대  공황을 기점으로 우르르 무너지고 현대적인 뮤지컬이 시작되던 초기의 미국의 엔터테이너들의 이야기다. 

그 시절의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부모들에 의해 일찌감치 아역배우로 나서서 고달픈 인생을 산 배우로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보더빌 배우 출신의 부모를 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쥬디 갈란드일 것이다. 쥬디 갈란드가 험난한 헐리우드에서 기반을 다지고 있던 바로 그 삼십년대 초반에 뮤지컬 집시의 주인공들은 미국 전역을 떠돌며 오디션을 보고 다녔다. 똑같은 시기를 다룬 영화로는 나오미 왓츠와 잭 블랙이 주연한 영화 ‘킹콩’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 대공황 시기에 보더빌 극장이 망해가고 샌트럴 파크에서 배급을 기다리는 실업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뮤지컬 집시는 실존 인물이었던 ‘집시 로즈 리’ 라는 벌레스크 스타의 전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주인공은 그 스타 ‘로즈’가 아니라 로즈의 엄마인 마마 로즈가 주인공이다. 집시 로즈 리의 이름도 마마 로즈에게서 따왔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인물이라 소개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 사람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연예인의 극성 엄마. 

*아래로 뮤지컬 <집시>의 줄거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성 엄마

마마 로즈는 보더빌의 전성기에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되지 못했다. 세 번의 결혼을 실패했고 그 결과로 두 명의 딸을 얻었다. 언니인 루이즈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무대체질이 아니라고 판단한 로즈는 둘째인 금발의 쥰을 중심으로 쇼단을 꾸린다. 아이들은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정상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치자 로즈는 아버지의 은퇴 명판을 훔쳐 아이들과 야반도주를 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역 배우인 로즈가 나름 유명해져서 브로드웨이 유명 보더빌 극장에 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획사에서는 마마 로즈가 메니지먼트에서 손을 떼야만 계약하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로즈는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쥰을 잡아끌고 나와버린다. 결국 쥰이 코러스 보이인 튤사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해버리자 로즈의 일을 봐주던 로즈의 애인 허비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하자고 로즈에게 청혼을 한다. 하지만 로즈에게는 아직 딸이 하나 더 남아 있다. 바로 루이즈. 

로즈는 재능 없는 딸이라고 돌아보지도 않았던 루이즈를 무대에 세우지만 루이즈의 숫기 없는 모습에 그들은 점점 변두리 극장으로 내몰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대공황이 시작돼 보더빌 극장들이 속속 문을 닫기 시작한다. 마침내 스트립쇼를 하는 벌레스크 극장까지 밀려가 의상 바느질을 하던 루이스에게 스트립쇼의 대타 자리가 들어왔을 때 이 쇼가 코러스걸이나 앙상블 댄서가 아닌 단독 공연이란 사실을 알게된 마마 로즈는 딸 루이즈의 등을 떠민다. 옷을 벗지는 말고 벗을 듯 말듯 애만 태우라고 설득해서. 

순진하면서도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옷을 벗기를 주저하는 모습은 큰 인기를 모아 루이즈는 집시 로즈 리라는 가명으로 벌레스크 스타가 되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마마 로즈와 크게 다툰다. 모두 자식들을 위해서 한 건데 왜 인정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지, 뭘 잘못했는지, 자신의 순서는 언제 오는지를 서럽게 외치는데...

난 집에만 머물면 죽어요!

로즈라는 인물은 뮤지컬 속에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강렬한 인물로 나오지만 변하지 않는 하나의 특징을 잡으라면 고집일 것이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며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이는 인물이다. 두 딸의 어머니지만 어머니로서의 특징을 드러내는 장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로즈의 첫 대사는, 아니 첫 외침은 “더 크게 불러, 더 크게, 루이즈!” 다. 그리고 로즈는 거의 이 톤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그닥 많지 않다. 자신의 딸들이 오디션을 보고 있지만 연출가에게 서슴없이 무식하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바로 말투를 바꿔 연출가를 꼬드기다가 이내 또 말투를 바꿔 설득을 하려 들다가 거절당하자 무서운 협박을 서슴치 않는다. 결국 연출가로부터 기어이 ‘내 수많은 애 엄마들을 봐왔지만...’이라는 한탄이 흘러나오게 한다. 

마마 로즈는 세 번의 결혼에 실패하고 홀아버지가 살고 있는 친정집에 애들을 데리고 들어와 살고 있지만 아버지와의 사이도 결코 원만하지 않다. 네가 있을 곳은 집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집에만 머물면 죽어요! 난 죽어도 의자에 앉아 죽지 않고 나가려고 싸우다 죽을 거야!’라고 외친다. 이 뮤지컬의 초연은 1959년이었다. 아이를 가진 여성이 거침없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로즈는 말 그대로의 인생을 산다. 문제는 로즈가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 싸울 때 거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딸들이라는 데에 있다. 딸을 스타로 키우겠다는 로즈의 결심에는 심지어 그 딸들의 의견조차 필요없다. 쇼단의 스타인 금발의 쥰이 뉴욕에서 콜을 받아도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알자 야멸차게 거절한다. 정말 딸의 성공이 목표라면 쥰을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소속사와 계약을 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로즈는 딸의 애원도 듣지 않는다. 그 순간, 쥰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쥰의 성공이 아니라 어머니가 포함된 쥰의 성공이고 거기에 어머니가 포함될 수 없다면 쥰 자신 역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괴물같은 어머니'?

뮤지컬은 마마 로즈의 과거에 대해 일말의 힌트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딸들은 착실하게 나이를 먹어가는데도 여전히 아기처럼 옷을 입혀 조금이라도 더 어리게 보이려고 애쓴다. 대체 로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로즈의 유년에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로즈는 억척스러운 성격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다르게 극중에서 항상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존재다. 로즈가 무슨 말을 하든 언젠가는 로즈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하비라는 애인도 있다. 

그 당시의 평론가들은 로즈를 괴물같은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로즈가 했던 싸움 중에는 아이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내주지 않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아이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자 쥬디 갈란드의 어머니가 사용했다던 그 시절에는 흔하디 흔했다던 성상납은 로즈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로즈의 쇼단은 쥰이 떠난 후 루이즈의 숫기 없음으로 인해 추락하기 시작하지만 그 때조차도 로즈는 루이즈의 섹슈얼리티를 상품으로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단독공연의 기회를 얻지만 그것이 스트립쇼라는 사실 앞에서 절망하기보단 발상의 전환을 거쳐 새로운 아이템으로 쇼를 성공시킨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하비는 결국 로즈에게 작별을 고하지만 로즈의 진짜 슬픔은 하비와의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스타로 키운 딸 루이즈와의 작별이다. 루이즈에게 진짜 배우가 아니라고 독설을 퍼붓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유명해진 딸 옆에서 할 일이 없어진 데 대한 자괴감 때문이지만, 바로 그 때 루이즈는 엄마에게서 독립을 선언해버린다. 학교 한 번 다니지 못했지만 자신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며. 로즈는 홀로 남는다. 모든 게 자식을 위해서였다고 말해보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더 잘 안다. 나도 유명 배우가 될 수 있었어! 아니 되고 싶었어... 하는 로즈의 모습은 지나간 1막과 2막 전체를 관통하는 로즈의 마음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두 사람의 화해, 두 사람의 결별 등을 연상케 하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결국은 항상 열어둔 채로 끝나는 편이다. 어느 쪽이든, 로즈의 꿈은 이루어졌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타인을 갈아서 만든 꿈은 독배일 뿐이기에. 현실의 로즈는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르는데, 한 번은 쥰과 결혼해서 도망간 배우를 찾아내 권총으로 쏴 죽인 사건이었고 두번째는 자신의 젊은 애인이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로 또 총을 든 일이었다. 그 애인은 여성이었다. 마마 로즈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은 극중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그 시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정체성은 마마 로즈의 가장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마마 로즈는 초연 이후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런던의 웨스트 앤드에서 불같은 성격으로 큰 인기를 모은다. 집시처럼 떠돌던 로즈는 아직까지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가장 강력한 여성 등장인물로 남아있고 여전히 연구의 대상이다. 하지만 아직도 로즈의 정체는 다 밝혀지지 않았고 새롭게 리바이벌 될 때다 새로운 로즈를 만나는 두근거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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