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한가운데: 니나 부슈만

알다여성 주인공

선택의 한가운데: 니나 부슈만

꽈리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별다른 소개글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훌륭하고 유명한 고전 중의 고전인 <생의 한가운데>의 작가 루이제 린저는 여성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작가가 얼마나 성공했든, 작품이 얼마나 유명하든 이 작품이 여성작가가 쓴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름난 것보다 훨씬 가치있고 빼어난 소설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채 지냈던 마르그레트는 동생 니나와 우연히 재회한다. 니나는 곧 떠날 거라며 마르그레트에게 집으로 와주기를 청한다. 마르그레트는 니나와 함께 며칠을 보내며 평생 니나를 사랑해온 슈타인이 니나에게 보낸 일기를 읽는다. 슈타인의 일기는 니나의 생을 면밀히 기록한 내용이다. 니나는 슈타인과 결혼해 편한 삶을 누리는 대신 나치 치하에서 체포될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결혼할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자살시도에서 살아남고, 글을 쓰고, 자신을 얽매는 남편과 이혼하고, 정치활동을 하고, 사형수의 음독자살을 돕고, 체포당하고, 석방되고, 다시 글을 쓰고, 치열하게 생을 사랑했다. 니나와의 대화와 슈타인의 기록을 통해 마르그레트는 관심 밖이었던 동생의 삶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다. 니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고 마르그레트는 뒤늦게 찾아온 니나의 연인에게 니나의 당부를 어기고 행적을 알려준다.

자신이 선택한
생에 대한 사랑

누군가가 생을 사랑했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생은 어떤 것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즐겁고 기쁘고 풍요롭고 충만한 생이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사랑은 그렇게 달콤하고 순조로울 때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지겹고 힘들고 끔찍하고 외롭거나 자발적으로 선택했음에도 괴로운 사랑은 제법 많다. 니나 부슈만은 자유로운 여자다. 자유의 정점엔 생에 대한 사랑이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니나는 한 개인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고, 그에 대한 사랑으로 당장 행동할 방향을 선택하지만 소설 전체를 보았을 때 니나의 근본적인 사랑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니나가 사랑하는 것은, 내내 니나의 충성을 바치는 사랑의 대상은 숨쉬고 걷고 말하고 글쓰는 생 자체이다. 생에 대한 사랑이라 함은 살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고 자기애일 수도 있고 책임감이나 도덕적 가치일 수도 있다. 살아있는 것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니나가 사랑하여 충실한 생은 니나가 선택한 삶이자, 니나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애통해하지 않은 생이다.

슈타인은 꾸준히 니나에게 구애한다. 슈타인 특유의 신중함이나 나름의 통찰력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나는 일련의 과정을 고려하더라도 슈타인은 니나에게 십수년 동안이나 언제나 선택 가능한 도피처이자 안락한 삶을 보장받는 보증 수표였다. 니나가 마음만 먹었다면 니나는 슈타인과 결혼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조금의 부족함 없이 윤택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을 먹을 필요도 없이 슈타인을 그렇게 거듭 거절하고 적극적으로 슈타인이 없는 삶을 꾸려나가지만 않았더라도 니나는 슈타인의 헌신적인 원조를 받으며 평탄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기약없이 묶이거나 자신의 감이 아니라고 말하는 남자와 각오를 다져가며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지도 자살을 시도하게 할 만큼 궁지에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니나는 거동이 수상하다며 감시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체포당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슈타인을 선택했더라면, 슈타인의 보호 아래 있었다면.

얻은 것,
잃은 것,
나의 것 

하지만 니나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 얻었던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체포당할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돕지 못했을 것이다. 두 아이들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자살의 문턱에서 기어나와 굳게 살기로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니나는 글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썼더라도 습작 수준에 그쳤을지 모른다. 니나는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한 일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 이 정권은 곧 무너질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니나가 슈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잃은 것은 얻은 것보다 헤아리기 쉽다. 선택하지 않은 삶은 살아보지 못한 까닭이다. 알고 있는 삶은 모르는 삶보다 언제나 곤궁하고 험난하고 초라하다. 굳이 보편적인 명제처럼 포장하지 않는다면,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가부장제하의 여성들에게 니나가 슈타인을 선택하지 않아 잃은 것은 자신을 선택해서 얻은 것들 보다 명확하고 뚜렷하다. 한결같이 자신만을 아끼는 남편과 그에 따라오는 사회적 지위, 안정적인 물질 기반들. 심지어 1930, 40년대의 시대배경을 고려했을 때 니나가 슈타인의 구혼을 물리치는 데 얼마나 큰 결단력이 필요했을지, 슈타인의 존재가 니나에게 얼마나 큰 유혹인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니나는 알았다. 슈타인과의 결혼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여자 자신의 것이 아님을.

물론 니나는 슈타인과는 아니지만 결혼을 했고, 그것도 슈타인보다도 더 좋지 않은 상대에게 휘둘리듯 이루어졌다. 그러나 퍼시와의 결혼은 슈타인의 경우와 달리 니나에게 일종의 경험의 관문으로 작용한다. 니나는 애초에 이런 삶도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결정한다. 결국 다시, 삶인 것이다. 선택한 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도 니나의 삶이며 니나는 후회를 이유로 선택하지 않은 생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명백하게 쉬운 선택지 앞에서 예전에 선택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 것들, 겪지 않아도 좋았을 고초와 불행을 복기하며 현혹되지 않는다. 놓친 삶이 설핏 슬플지라도 니나의 생은 자유롭고, 가진 삶을 고까워하고 갖지 못한 삶을 질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이르게 한 선택에 모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 삶을 선택하게 한 생 전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선택을 사랑하는 법

모든 경우의 생을 살아볼 수는 없다. 선택하지 않은 삶은 생의 너머로 사라진다. 순간순간 다른 모습을, 다른 장소를, 다른 사람을 가졌을 선택하지 않은 삶이 아쉬워 슬퍼질 수 있다. 괜한 가시밭길을 골랐다며 후회할 수도 있다. 선택하지 않은 삶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매혹적이지만 선택한 삶도 고수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가기 전엔 알지 못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에 있고 삶의 선택지는 늘 하나 뿐이다. 잃을 것이 명확하므로 자신을 버리는 것을 고르겠는가? 불확실함과 불안함으로 출렁거리는, 더 많이 잃을 것이 확실한 생은 사랑할 수 없는가? 니나의 생은 니나의 선택을 충실히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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