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넷플릭스: 채울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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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넷플릭스: 채울 수 없는

이그리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드라마 제목: <채울 수 없는>

러닝타임: 편당 50분 내외

시즌: 두 개(시즌 1 12편, 시즌 2 10편)

 

한때 ‘김치 싸대기’와 같은 기념비적인 장면들을 보면서 막장 드라마계에선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한국이 막장 드라마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반복되는 여성혐오적 레토릭에 지쳐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알 수 없을 뿐. 마라탕처럼 얼얼한 막장맛이 그리울 때, 나는 이제 넷플릭스를 켠다. 그리고 막장 레이더를 동원해 드라마를 찾아낸다. 이번에 레이더에 걸린 드라마는 <채울 수 없는(Insatiable)>.

*글에 <채울 수 없는> 시즌 2까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뚱보 패티’에서 ‘미인대회 패티’로

패티 블라델은 뚱뚱하다. 간식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갔는데, 자신을 뚱보라고 부르는 노숙자를 만났다. 화가 났다. 펀치를 날렸다. 그도 패티를 쳤다. 그렇게 패티 블라델의 턱이 망가졌고, 패티는 90일 동안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병상에서 일어나니 살이 죄다 빠져있었다. 패티는 날씬해졌다.

그렇다. 뚱뚱하던 사람이 날씬해졌다. 여기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유효한 모티브다. 우리가 뚱뚱하나 날씬하나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이런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었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몸무게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날씬해진 패티는 노숙자를 폭행한 죄로 형사 법정에 서게 되고, 이 사건을 어쩌다가 맡게 된 변호사 밥 암스트롱은 패티의 예전 사진만 보다가 날씬해진 실물 패티를 보자 변호 전략을 바꿔 그의 무죄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왜냐면, 변호사 밥 암스트롱은 미인 대회 코치 밥 암스트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갓 고객을 잃은 밥은 새 미인대회 고객으로 패티를 코치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밥과 패티가 만나 미인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게 <채울 수 없는>의 큰 스토리 줄기다.

여기까지만 봐도(에피소드 두 개 정도 분량이다) 이미 막장맛이 은은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가? 그러면 이 드라마에 대해 더 이야기하기 전에, 이어 등장하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클로짓 게이. 짝사랑. 레즈비언. 폴리아모리를 하고 싶은 바이섹슈얼. 마약 중독과 재활원. 성형수술. 출생의 비밀. 스토킹. 살인. 연쇄 살인. 감옥. 탈옥. 동업자의 뒤통수. 은폐. 누명. 하지만 그 수많은 자극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소재를 꼽으라면, 섭식 장애다. 이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기에 <채울 수 없는>은 내게 막장 드라마라고만 말하기엔 어려운, 미묘한 드라마가 되었다.

섭식장애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다

주인공 패티 블라델은 뚱뚱했다. 우연한 사고로 날씬해진 뒤에도 뚱뚱했던 시절의 낮은 자존감이 알아서 돌아오진 않는다. 패티는 그 불안함을 먹는 것으로 해결한다. 패티는 불안할 때, 화날 때,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먹는다.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는 시신을 은폐하기 전에 우선 햄버거 가게에 들러서 햄버거부터 먹는 식이다. 번갈아 나타나는 폭식과 거식을 지켜보던 미인대회 동기가 말한다. 너, 그거 섭식 장애지? 패티는 처음에 부정한다. 하지만 병원에 들렸다가 보이는 도넛을 한 접시 다 먹어치웠는데, 그 도넛 접시가 소아암 환자를 위한 접시였다는 걸 알고는 스스로의 심각함을 깨닫는다.

나는 섭식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섭식 장애라는 말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내가 아는 섭식 장애의 종류는 폭식증과 거식증 뿐. 과하게 먹거나, 너무 먹지 않아서 자주 토하게 된다는 사실만 알았다. 하지만 섭식 장애 모임(OA, 마치 알콜중독자 모임AA처럼 말이다)에 패티 블라델이 가게 되면서 시청자로서 나는 섭식 장애에 대한 일종의 속성 교육을 받게 된다. 이제는 안다. 섭식 장애는 꼭 토하는 증상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음식에 대한 집착도 포함된다. 음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덮어버리려고 애쓰는 것도, 음식으로 스스로를 벌주는 것과 같이 생각하는 것도, 먹는 행위에 스스로 역겨움을 느끼면서 먹는 걸 멈출 수 없는 것도 모두 섭식 장애다.

드라마에서는 패티가 섭식 장애를 극복하게 도우려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패티의 섭식 장애를 해결해 주진 못했다. 그들의 도움과 해결책 제시가 부족해서라기보단, 패티가 스스로의 문제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패티는 자신의 불안정함을 다른 행위로 덮을 때에만 섭식 장애를 멈춘다. 좋아하던 애랑 연애하거나, 누군가를 죽일 때에만. 패티는 섭식 장애가 불안정한 상태의 표현이라는 점을 무척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러스트 이민

막장맛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전개를 따라가고 나면 드라마의 제목 ‘채울 수 없는(Insatiable)’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도저히 채울 수 없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욕구. 드라마 안에서는 이 욕구가 성욕일 때도 있고, 식욕일 때도 있고, 살해 욕구일 때도 있다. 그 ‘채울 수 없는’ 욕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매우 다르지만.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심각하게 비뚤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의 채울 수 없는 욕구에 대한 대응은 무척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주인공답게 멋지기보단, ‘주인공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못나 보일 때가 더 많다. 질투심과 불안감이 넘실대는 고등학생답게.

거기에 패티의 미인 대회 도전기라는 큰 플롯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그래서 그는 왕관을 쓸 수 있을까? 왕관을 쓰면 모든 게 해결될까? 전개가 조금 지루해진다 싶으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메이슨빌(패티 블라델이 사는 마을이다)의 주민들이 양념처럼 끼어든다. 작은 마을답게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가 자연스러운 막장맛을 자아낸다. 그러니까, 보는 재미가 있다.

종종 정말 이렇게까지 자극적이어야 하나 싶은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바라고 이 드라마를 틀었으므로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적당히 생각할 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그것만으로 시간 때우기용 드라마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채울 수 없는>은 넷플릭스에서 시즌 2까지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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