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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시청자 1. 김구라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는 단순한 게 좋다. 단순함에 이르기까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1.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며 충돌하는 사안들에 결과를 내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것. 
  2. 아니 뭐 이렇게 생각해야 될 게 많어. 그냥 넘어가. 대충 여기서 마무리하고 때려치우자! 같은 행패. 

나는 일상에서 종종 2번과 같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며, 지향하는 것은 1번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단순함이다.

단순함의 이중잣대

나는 단순함에 대해서 정말 할 말이 많다. 태어나서 겪은 모든 합의의 과정 중에 ‘단순하게 생각하자. 여기선 대충 마무리 지을 줄 알아야 돼’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간과하거나, 짚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을 지적했을 때, 융통성이 없다는 말들이 나오곤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단순한 게 좋은 거라는 것엔 동의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같은 집단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이건 “너희들”같이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아까까지는 우리가 너무 많은 걸 따지고, 복잡하게 생각해서 일을 지연시킨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이 이야기는 중대한 것이어서 우리처럼 단순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끼워줄 수 없다니. 사안에 대한 전문성과 숙련도에 따라 미숙하거나, 경험이 없는 개인의 비중이 조절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이 오래된 이중잣대는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이 일을 하며 겪는 익숙한 배제의 방식 중 하나다.

눈속임

방송국은 늘 여성 시청자를 생각하는 척 한다. 시간 많은 중년여성들을 위한 막장드라마와 속풀이 한마당, 구매력 좋은 젊은 여성들을 위한 PPL 범벅의 뷰티쇼와 멜로드라마들. 우리는 이렇게 여자들을 위한 방송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할 때 내세우는 것들이지만, 위의 네 장르 모두 고정된 문법만 있으면 아무런 변주나 혁신이 필요 없는 것들이다. 눈속임이다. 너희에게 이만큼 파이를 줬으니 나머지는 남자들을 위한, 남자들이 나오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선전포고가 가능해진다. 그래서인지 매주 다양한 실험과 사람들의 생각, 영향이 오고 가는 황금시간 대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남성 연예인들의 말과 생각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텔레비전이 싫다고 외치면 ‘안보면 되잖아’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남자들끼리 하는 복잡한 이야기쇼에 여자들은 단순해서 끼워주지 않으면서 그게 불만이라고 하면 뭘 그렇게 혼자 심각하냐고 단순하게 좀 생각하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기만이 어디 있나. 내가 하는 요구는 단순하다. 복잡한 말을 하는 여성 인물도 텔레비전에서 좀 보고 싶다는 것뿐이다. 남자들의 단순함은 경제성, 여자들의 단순함은 멍청함, 남자들의 복잡함은 대의, 여자들의 복잡함은 히스테리. 김구라는 정확히 여성 방송인과 여성 시청자에 대해 행해진 이러한 기만의 방식으로 지금의 자리에 앉은 인물이다.

'더 잃을 것 없는 사람'의 무례함

얼마나 단순한걸 좋아했으면 이름을 ‘구라’라고 지어놓고 인터넷 방송(김구라, 노숙자,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 그런 소리들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러나 그는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재밌자고 한 얘긴데’라는 무적의 방패 하나로 공중파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몇 백만 팬을 거느린 아이돌 가수와, 가장 구독자수가 많다는 시사 팟캐스트의 진행자가 그 시절의 김구라를 위인처럼 추억하고, 그의 예전 인터넷 방송 정신을 잇는답시고 밑도 끝도 없는 무례함을 다양한 방면으로 홍보하고 전파한다. 심지어 그 시절 그의 음담패설 피해자였던 이효리, 하리수, 신지, 신애 등은 그가 진행하는 수요일 프라임 예능인 <라디오스타>의 게스트로 초청되어 대인배가 되기를 강요 받았다. 한국의 시청자와 대중들은 그 시절 김구라가 했던 언행을 욕하면서도, 이미 주류로 자리잡은 그를 익숙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그의 가정사와, 아들까지 노출된 뒤로는 그에게 이상한 동정심까지 베푸는 듯 했다. 덕분에 그는 늘 대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주요 방송인이 되었고, 급기여 결국엔 대상을 수상했다. 이제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그의 인물론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재료가 될 뿐이며, 그것이 더 이상 그에게 어떤 압력도 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정말 세상이 김구라의 갱생 프로젝트를 밀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종종 그가 능력 있는 방송인으로 평가 받는 것을 볼 때마다, 어떤 부분이 높게 평가되는지 확인하게 된다. 가끔 본인이 원치 않는 난감한 상황에 엮였을 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같은 것은 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가 가진 방송인으로서의 프로듀싱 능력이나, 진행에 대한 역량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가 제일 잘하는 것은 영리하고 집요하게 본인의 자리를 지키는 일 일 것이다. 전국민이 사랑하는 유재석, 강호동의 대척점에 서서 과거의 불량한 이미지를 안고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캐릭터. 상대방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다 부정한 뒤 반박을 일삼는 패턴의 대화 방식. 개판으로 살아온 과거 덕에 그는 사과를 한 뒤 자존심 상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마치 자신이 응징 당한 것처럼 사람들을 속인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그것이 그의 진행의 묘미처럼 표현되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그럴수록 더욱 뻔뻔하게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확장한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무례함과 게으름을 가리고, 누군가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용도로 단순함을 사용하는 것. 뭘 잘 몰라도, 어떤 권위를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마이크를 차지할 수 있는 방송가의 중년 남자는 자연스럽게 저 방식을 알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마이크는 <썰전>과 <라디오스타>다. <썰전>에서 김구라는 비-방송인 패널들에 의해 여느 방송과는 달리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다가 대충 흐름이나 훑어주는 역할이긴 하지만, 어쨌든 본인이 무언가 대단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1시간 동안 앉아있는다. 세 명의 중년 남성이 수트 차림으로 도원결의의 암실에서 세상 가장 중요한 정치와 천하를 논하고 있는 모습! 일전에 <썰전> 기사 댓글에서 ‘느와르 같은 예능’ 이란 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정확한 표현이다. 그 쇼는 김구라의 텔레비전 느와르다. 여성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멋진 모습을 봐주길 바란다는 점에서. 그리고 항상 여성의 이야기를 꼭 끼워 넣고는 자기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내줬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썰전> 캡쳐. JTBC 제공

2012년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저질렀던 위안부 폄하 발언이 문제가 되자 그는 본인이견딜 수 있을 만큼 자숙을 한 뒤, 슬그머니 다시 방송에 복귀했다. 나는 그때 그가 <라디오스타>에 돌아와 보인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 정말 싫었다. 중년남성 셋과 적당히 재치 있는 어린 남성 하나로 구성된 이 토크쇼 진행자들은 게스트를 맞이 하는데 어떤 연기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방송계에서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퇴출되지 않았기에’ 4050이 된 김구라, 윤종신, 김국진으로서 그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다. 그들의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모습은 여성 게스트, 나이 어린 게스트를 대하는 방식과 민감한 이슈가 대화 소재로 나올 때 낄낄대며 넘어가는 대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김구라가 이 프로그램에 어떻게 애착이 없을 수 있겠나. 적당히 사우나 유머를 섞어가며 속에 있는 얘기를 가감없이 하는데도, 빠른 편집과 매주 바뀌는 게스트를 통해 본인의 참신한 이미지를 유지하게 해주니까.

오래 남을 수 있는 기득권

비록 모두가 ‘하면 안 되는 말’을 지켜가며 줄을 탈 때, 그는 본인의 경악스러운 과거 언행과 갱생의 퍼포먼스를 통해 지금의 포지션을 확보한 것이지만, 김구라는 분위기를 만들고,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곧잘 해낸다. 특유의 뚱한 표정과, 상대의 말 끝마다 걸어대는 딴지, 적당한 시사감각, 적시에 발휘하는 속물근성과 호사가적 기질이 그의 강점이다. 많은 논란 속에도 그는 이처럼 자신의 특질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인 기회를 받아왔다. 그렇게 업계의 기득권이 된 그는 정년이 없는 방송계에서 이제 어떤 변화를 추구할 필요도 없으며 앞으로 새로 맡게 될 프로그램에서도 그 포맷을 자신에게 적당히 맞춰 버티면 그만이다. 

그와 같은 방송계의 사람들은 ‘오래 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 라는 공식으로 자리를 보전해왔다. 오랜 시간 버텨서 쌓은 친숙함과 인지도는 예리한 평가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를 포함해 그가 속한 중년들에게 자꾸만 늘어가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민감하게 변하는 사회의 다양한 담론들을 굳이 파악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방송계의 비정상적인 생태나, 자신이 미칠 영향력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저 길고 조용히 하던 대로 해나가며 연말마다 트로피를 수집해나가는 일 말이다. 

2018.04.06 16:49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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