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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의 해방자: 일본이라는 어떤 판타지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이 글은 <파이널 판타지 14: 홍련의 해방자>와 그 전편(창천의 이슈가르드, 신생 에오르제아)의 메인 스토리를 다루고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지금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지난 12월 19일, 한국에도 <파이널판타지 14: 홍련의 해방자(Final Fantasy XIV: Stormblood)>(아래 홍련의 해방자)가 업데이트되었다. MMORPG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메타크리틱 스코어를 기록한 <파이널 판타지 14: 창천의 이슈가르드(Final Fantasy XIV: Heavensward)>(아래 창천의 이슈가르드)의 후속작인 <홍련의 해방자>는 업데이트 전부터 직업군별 새 스킬과 새로운 맵, 퀘스트, 레이드 등을 선보이며 꽤 준수한 화제몰이에 성공했다. 

하지만 <홍련의 해방자>가 업데이트 된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한국 플레이어들의 스토리에 대한 실망감과 피로도는 상당하다.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직업별 새 스킬과 던전, 레이드 등을 제외하고 이 글에서는 <홍련의 해방자> 스토리에 대해서만 찜찜하고 불편한 점을 짚어 보고자 한다. 

해방자

특히 모험가1)의 몰입도를 높이는 충실한 스토리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창천의 이슈가르드> 편에 비해 <홍련의 해방자>에서는 모험가들의 스토리 몰입도가 현저히 낮았다고 볼 수 있다. 주된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째서 우리는 '해방자'인가?

하이델린과 교감하는 이방인, 모험가

<파이널판타지14: 신생 에오르제아> 타이틀. 제공 스퀘어에닉스

<파이널 판타지 14: 신생 에오르제아(Final Fantasy XIV: A Realm Reborn)>(아래 신생 에오르제아)에서 시작되는 모험가의 모험은 에오르제아라는 작은 대륙에 거주하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에오르제아가 있는 행성, 즉 하이델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모험가는 이 힘을 이용해 그리다니아, 울다하, 그리고 림사 로민사에서 발생한 이른바 '야만신' 문제를 해결하며 에오르제아를 구하는 영웅으로 성장한다. 야만신은 크리스탈을 매개로 해 수많은 기도와 간절한 바람이 모여 실체화되는 신으로,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나 그 신이 한 번 소환될 때마다 크리스탈을 소비하며 별, 즉 행성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제 7 재해를 겪은 에오르제아는 야만신 문제에 극도로 기민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고, 야만신 문제는 각 도시의 군사와 그 동맹이 아니라 재 7재해를 막아낸 현인의 자손들과 현자들의 중립적 동맹인 '새벽의 혈맹'이 주관해 해결하게 된다. 이 흐름을 따라가며 모험가는 새벽의 혈맹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신생 에오르제아>의 주요 흐름이며, 모험가와 그 힘의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세계에 자리잡게 해준다는 점에서 정석적인 RPG의 전개라고 볼 수 있다. 

거짓을 바로잡는 여정을 거치는 모험가

<파이널판타지14: 창천의 이슈가르드> 타이틀. 제공 스퀘어에닉스

한편 <신생 에오르제아>의 끄트머리에서는 그동안의 야만신과는 달리 한 사람의 기도에 의해 소환된 야만신 시바, 그리고 그 야만신을 소환한 이단자 이젤과 함께 용을 믿는 이슈가르드의 이교도들이 등장한다. 모험가는 이 야만신 토벌에 개입하며 <신생 에오르제아>에서 <창천의 이슈가르드>로 이어지는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뛰어들게 된다. <창천의 이슈가르드>는 에오르제아에 위치하면서도 세 도시와는 다르게 오래토록 문을 걸어잠근 이슈가르드의 문호개방과 천년에 걸친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모험가는 이슈가르드 내에서 오래토록 부패한 세력과 거짓말을 들추어 내고 결국 야만신의 힘을 빌린 교황 토르당 7세를 토벌함으로써 오랜 전쟁과 불신의 막을 내린다. 별의 힘이라는 특별한 힘을 가진 모험가가 오직 그 힘을 통해서만 밝힐 수 있는 진실을 가져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반목을 줄였다. 

<창천의 이슈가르드>는 모험가가 단순히 별을 구하는 영웅이라고 자리매김 되어버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존하는 가치관의 갈등 사이에서 '옳은 것'을 쫓아가는 서사를 제공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고 MMORPG 중에서도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창천의 이슈가르드> 막바지에는 하이델린과 대립하는 세력 '아씨엔'을 따르는 빛의 전사들이 등장함으로써 영웅들간의 갈등과 가치관의 대립을 명확하게 보였다. 이후 글로벌 서버를 기준으로 2017년 6월에 막을 연다는 <홍련의 해방자>의 트레일러와 각종 예고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모험가들은 이에 기대를 걸었다. 별을, 도시를, 거짓과 기만으로부터 구해낸 모험가가 이번에는 해방군의 역할까지 맡게 된다니. 확장팩이 공개됨에 따라 점점 커지는 기대감을 충족할 만한 스케일이었다. 

무엇의 해방자? 

하지만, <홍련의 해방자>에서는 전의 두 확장팩과 달리 모험가가 이 사태에 개입할 어떠한 마땅한 이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제국은 나쁘기 때문에. 제국의 지배는 알라미고인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홍련의 해방자>에서 벌어지는 제국과의 싸움에서 결국 모험가는 알라미고, 혹은 도마라는 '편'을 들게 되는 셈인데 이렇게 특정 국가나 도시를 지지하는 행위를 영웅인 모험가, 그리고 그가 속한 중립적 성격의 구세시맹인 새벽의 혈맹이 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행성을 구하고 세계의 존속을 목표로 하는 새벽의 혈맹이 제국에 맞서야 하는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가?

<홍련의 해방자> 메인 시네마틱 트레일러에 등장한 바로 이 사람, 리세. 제공 스퀘어에닉스

그 이유의 설정이 비어버린 자리를 <홍련의 해방자>는 굉장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서사로 메우려 한다. '이다'의 행세를 해 왔던 알라미고 출신의 리세가 그 서사의 고리다. 새벽의 혈맹이 존속하는 이유와는 사실 전혀 상관이 없다. 거기다가, 제국을 거대한 악으로 규정한 에오르제아의 3도시와 이슈가르드까지 알라미고의 해방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무엇을 위해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제국이 '절대악'이라는 단 하나의 느슨한 설정밖에 없다. 그 제국을 물리치기 위해 모험가가 거친 모든 여정의 조연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험가가 거친 여정과는 성격도, 이유도 너무나도 다르다. 

이질적인 입장에 놓인 모험가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개입시키기 위해 <홍련의 해방자>에서는 유독 NPC들과 대화를 나누고, (비록 제한되긴 했으나) 답하는 대사의 선택지를 고르는 필수 퀘스트가 많다. 이를 통해 제국의 통치 하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알라미고인들과 도마인들의 이야기에 모험가는 깊숙하게 개입되고 그들이 25년동안 억눌리며 체화한 체념과 순종을 부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 과정에서, 모험가, 특히 한국인 모험가는 이들을 해방시킨다는 대의에 공감은 커녕 동의조차 하지 못하며 서사 밖으로 거의 완벽히 튕겨나가는 듯한 기분을 체험할 수 있다. 내가 해방시켜야 하는 것의 본질이 일본이라는 어떤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어떤 판타지

<홍련의 해방자>는 그 진행 전반에 걸쳐 이른바 '동방'으로 일컬어지는 문화를 상당히 많이 차용했는데 그 핵심은 일본의 문화유산이다. 다만 <홍련의 해방자>의 배경이 되는 나라와 지역 중 어느 곳이 일본을 상징하는지 꼽으라면 조금 난감해진다. 근대 일본의 무역항 오사카를 레퍼런스로 삼은 것이 분명한, 성과 사무라이 치안유지대(적성조)가 있고 길거리의 모든 이들은 기모노와 게다를 입고 다니는 '동쪽 나라'의 쿠가네인가? 혹은 홍옥해에서 평저선을 몰고 일본식 스카쟌을 걸치며 나라를 잃었다고 스스로 칭하는 도마 출신의 해적들인가? 혹은 잃어버린 주군을 기다리며 제국의 지배를 견디는 약소국 도마인가? 

<홍련의 해방자> 시네마틱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쿠가네. 실제 인게임도 이렇게 생겼다. 풍경은 정말 예쁩니다. 제공 스퀘어에닉스

나는 답을 그 모두라고 본다. 그것이 <홍련의 해방자>가 일본의 문화적 요소들을 그저 충실히 재현하고 빌려온 것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련의 해방자> 모험가는 메인스토리를 따라가며 이 재구성된 문화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게 된다. 하지만 사실 <파이널 판타지 14> 시리즈의 모험가는 유사 일본을 해방하기 위해 싸우는 독립 투사가 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이 과정에서 모험가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이유만으로 식민 지배에 앞장섰던 문화의 단면을 피지배자의 이야기와 인물에 투영해서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독립'과 '해방'과 '저항'이라는 가치를 빛 바래게 한다. 

게다가 도마를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실제 일본의 식민 지배에 피해를 본 몽골 지역을 레퍼런스로 한 아짐 대초원 부족의 힘을 빌린다는 이야기는 완벽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확장팩의 타이틀인 <홍련의 해방자>의 '홍련'마저 이 아짐 대초원 부족이 붙여준 이름 아닌가. 약간 기가 막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홍련의 해방자>는 오리엔탈리즘적인 판타지를 모두 버무려냈지만 그 핵심을 일본 문화와 일본인으로 재구성했다. 주인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모험가는 충실한 조력자로 행동하는 선택지뿐이다. 

해방자가 되기 싫으면요

모험가와 모험가가 속한 '새벽의 혈맹', 그리고 모험가가 지금껏 큰 도움을 준 울다하, 그리다니아, 림사 로민사, 이슈가르드 4도시가 모두 힘을 합쳐 도마와 알라미고에서 제국을 몰아내는 이야기의 진행을 통해 시나리오 팀이 의도한 바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모두가 힘을 합쳐 제국이라는 절대악을 부수었다'는 것인데, 절대악에 신음하는 약자, 그리고 해방을 이루어낸 주인공 자리에는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일본이 올라와 있고 알라미고의 해방과 그 과정은 도마의 해방을 통해 '추진력'을 얻어 이뤄낸 것으로 그려진다. 

<홍련의 해방자>는 밸런스나 조작의 재미 면에서는 혼재된 평가가 존재하지만 비주얼 면에서는 꽤 흡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대 레벨 상향이나 전반적으로 지루하지 않고 할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스턴스 던전 및 레이드의 빛을 오히려 바래게 할 정도로 스토리의 방해가 크다. 전 확장팩에서 스토리를 통해 플레이어의 몰입을 이끌어냈던 것과는 정반대다. 해방자라 이름이 붙은 조력자가 아닌, 플레이어를 진정한 주인공으로 세우는 전 확장팩의 스토리들이 상당히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홍련의 해방자>의 전반적인 구성이 <파이널 판타지 14> 답게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로 인해 그 빛을 잃는 점이 시리즈를 꾸준히 플레이해 왔던 게이머로써 상당한 아쉬움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지속적인 메인 스토리 업데이트를 통한 보완을 기대해 본다. 

각주 1: <파이널 판타지 14> 시리즈에서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단어로, 이 글에서는 인게임 플레이어를 모두 모험가로 표기하기로 한다.

추신 1: 트위터의 어떤 모험가는 '홍련의 해방자 너무 재미 없으니까 이슈가르드에 문제 좀 다시 만들어주라'고 성토하셨는데 백 번 공감합니다. 

추신 2: 그래서 모험가의 투지를 불태우기 위해 제노스라는 얀데레를 만들어 넣으셨나요. 전 솔직히 제노스 보려고 메인퀘스트 견뎠습니다.

2018.01.11 15:01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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