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만든 여자 1. 용감히 착하지 않기 : 윤사라

알다여성 주인공웹툰

여자가 만든 여자 1. 용감히 착하지 않기 : 윤사라

꽈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여자가 만든 여자>는 <책 속의 여성들>을 연재한 크리에이터 꽈리의 후속 시리즈로, 웹툰부터 장편소설까지 여성 작가가 엮어 낸 훌륭한 서사 속 눈에 띄는 여성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마법과 마녀를 다룬 수많은 이야기에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효과나 물리법칙을 넘어서는 색다른 현상을 주된 소재로 하는 것과 달리 나윤희의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은 발현자로 불리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마법을 부릴 수 없는 다수의 일반인들 사이에서 겪는 인종차별과 편견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작품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마법적 요소는 주인공 박하가 각종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마법이 있는 평행 세계를 특유의 따뜻함으로 그리는 작가의 섬세한 빛 표현이 돋보인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어 완결되었다.

줄거리

약학대 학생인 박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에덴의 요람이라는 보육원에서 수녀가 되기 위해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사라를 만난다. 마법에 편견을 가진 사라는 인종차별적 발언과 오해로 박하와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그후 박하의 소꿉친구 상엽의 아직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발현자인 동생 솔이가 능력을 노린 패거리에게 납치되자 사라는 용감히 나서 솔이를 구한다. 

박하를 좋아하지만 여러모로 사회성이 모자란 배우 민혁까지 우여곡절 끝에 넷은 가까운 친구가 된다. 솔이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보육원의 동생인 율리아의 해외입양과 장수 능력 발현자 제임스의 과거사를 접하면서, 무엇보다 박하와의 우정을 통해 이전에는 겪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한 사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입소한 수녀원에서 다시금 중요한 삶의 결정을 내린다.

착한 여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여자의 삶은 고달프다. 착한 여자의 삶은 그보다 더 고되다. 착해야 한다는 틀에 애써 맞추고 있다면 고되다는 말로도 부족할 것이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착해지고자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착한 여자는 희생하고, 인내하고,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은 우선 순위 바깥으로 치워야만 한다. 착한 여자는 그래서 답답하고, 멋지기 보다는 안타깝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착하기를 그만두기를 내심 바라게 된다.

사라는 착하다. 누군가에게 착한 여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응축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라는 보육원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고,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님이 자신을 거둬주셨다고 생각해 수녀가 되고자 한다. 자신과 다투는 바람에 박하가 봉사활동을 그만두게 되자 박하가 하던 일까지도 자신이 도맡겠다고 나서며 솔이를 구한 답례로 받은 사례비도 거절하려고 한다. 갚을 수 없는 호의는 애초에 받지 않는다.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성장 배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라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빚’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자신은 삶을 통해 그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고 믿고, 따라서 자신이 바라는 것 보다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을 행하는 데 집중한다. 사라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고, 커다랗게 웃으며 쏘다니거나 방탕하게 놀지도 않고, 여느 또래처럼 게으름을 피우는 일도 없었다. 사라는 그저 온화하고 친절하고 의젓했다. 모든 것은 빚이고 그것들은 전부 갚아야 하는 감사함이므로.

아마 사라는 천성적으로 상냥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의무감만으로 20여년을 한결같이 이타적일 수는 없고, 의무감에만 묶여 있는 사람들은 사라처럼 꼬이거나 맺힌 데 없이 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은 사람

사라가 자신의 감정과 희망보다 바깥의 사정을, 의무를 우선시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게 당연한 것일까? 사라는 원래 착한 사람이므로 그래도 괜찮을까? 사라는 부채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에 부채감을 느끼고,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 미움을 살까 지레 몸을 사리고, 주제넘은 것일까 두려워 마주치는 호의를 좀처럼 있는 그대로 받지 못한다. 스스로의 기쁨, 슬픔, 놀라움과 분노를 온전히 느끼고 표현하는 대신 그래도 되는 상황인지를 먼저 따져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일일이 자책한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기는 커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헤아려보지 못하고 해야 하는 일을 따라간다. 사라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실제로 사라는 불행하지 않다. 하지만 정말 사라는 괜찮은 걸까? 사라는 착한 사람이지만 착함이 족쇄가 되어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박하를 만나기 전까지는.

착하지 않아진 여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박하를 만난 사라는 전처럼 착하지 않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봉사활동 온 사람을 내쫓고, 전에 없던 고집을 부린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고, 진상 손님의 험담을 하고, 성소 모임에서 딴 생각을 하고, 밤늦게까지 놀며 시간을 보낸다. 사라는 친구들이 생기고, 막연히 편견을 갖고 있던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편협했음을 깨닫고, 기꺼이 자신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수정하고, 타인을 부러워하고 타인을 안타까워하고 이제껏 한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의 길이라고 믿어왔던 것에 의구심을 갖는다. 아무도 사라에게 강제한 적이 없지만 사라 스스로 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굴레를.

그리하여 언제나 손해보는 착한 여자, 자신은 항상 뒷전이었던 여자가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찾아나서기로 할 때 사라는 전에 없이 단호하게 “여기에 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조각들을 찾아 자기를 점점 더 키우고 싶다고 말하며 겨우 입소한 수녀원에서 나오겠음을 말할 때 사라가 생각하는 것은 박하다. 착한 사라가 더 이상 착하기만 하지 않도록 소리지르게 하고, 때리게 하고, 화를 내게 하고, 암 수술을 마친 원장 어머니 곁에서 또 한 번 자신을 미루며 간호하지 않도록 결심하게 만든 박하다. 착한 사라는 당당한 마녀 박하를 만나 용감한 사라가 된다.

하지만 사라는 사실 원래도 용감했다. 이전에 한번 마주쳤을 뿐인 어린 아이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보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선뜻 도우려 나섰고 상대는 여럿이고 자신은 혼자라는 사실로 망설이지 않았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위해 스스로가 원하는 것은 눈 딱 감고 미룰 수 있는 사라. 옳다고 생각했던 삶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레 포기하지 않기로 분명히 결정할 수 있는, 용감한 사라.

그렇다. 박하를 만나 변화한 것은 사라가 본래 가지고 있던 용감함 덕분이다. 박하는 응원했고, 착함에 가려 묻힐 뻔한 사라의 용감함을 끌어냈다. 고대하던 자리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사라는 여전히 착한 사람이겠지만 이제 사라에게는 착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있다. 자신이 착하지 않은 세상을 함께 할 박하와 용감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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