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루트의 '어떤 게임이냐 하면' 1. Peace,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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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루트의 '어떤 게임이냐 하면' 1. Peace, Death!

딜루트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딜루트의 '어떤 게임이냐 하면'>에서는 매달 스팀에서 플레이 해 볼 만한 게임을 직접 고르고 플레이 해 본 후 소개합니다. 

이미지 제공 AZAMATIKA

어떤 게임이냐 하면

방에 앉아 하릴없이 TV를 보고 있는데 배는 고프고, 고양이도 굶고 있다. 냉장고를 열어보지만 텅 비어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출근해서 서류를 검토하고 사인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퇴근한다. 여기까지는 여느 평범한 직장인의 일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게임의 주인공은 사신이다.

<Peace, Death!>는 죽은 영혼들의 모습과 행동들을 검토하여 지옥에 떨어트릴지, 천국으로 올려보낼지 정한다. 게임 방식은 무척 단순하다. 지옥에 가야 한다면 마우스 좌클릭, 천국으로 보내야 한다면 마우스 우클릭을 누르면 된다.

사신이지만 그날그날 실적에 따라 평가가 매겨진다. 이미지 제공 AZAMATIKA

이 세계는 놀랍게도 노동자 편의적인 환경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람들을 분류해냈느냐로 그날 봉급이 결정된다. 실수로라도 천국과 지옥을 헷갈려 안내를 잘못하고, 실수가 누적이라도 된다면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쫓겨난다. 수없이 쏟아지는 사람들을 분류해 컨베이어 벨트에 옮겨야 하는데 그 와중에 다른 부서들 (역병, 전쟁 등)의 눈치를 보며 비위까지 맞춰야 한다. 전쟁이라도 터지면 비슷한 옷을 입은 사망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날이 갈수록 상급자가 요구하는 건 까다로워지기 시작한다. 내 일을 처리하기도 숨이 찬데 어리버리한 직속 후임도 가르쳐야 한다. 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마치 일을 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느껴진다.

아, 이 얼마나 직장인스러운 시뮬레이션인가.

신선하지만 익숙해

이런 방식의 게임은 <Peace, Death!>가 최초는 아니다. 3909의 <Paper, Please>에서는 공산국가인 야스토츠카의 입국 심사원이 되어 수없이 줄 선 사람들의 입국 허가/거부 도장을 찍는다. 두 게임 모두 단순한 도트 그래픽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 한 가지 요소만 가지고 천국과 지옥을 분류하던 게임 난이도는 스테이지를 거듭할수록 조건이 추가되어 복잡해진다. 이를테면 전날까지는 보지 않았던 옷 안에 흉터가 있는지, 서류(도구)를 조작했는지 등 검토해야 할 요소들이 늘어나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게임 속 긴장감을 유지해준다.

Paper, please 이미지 제공, 3909

두 게임의 차이라면, <Peace, Death!> 는 게임 내에 서브컬쳐에 대한 다양한 패러디가 존재하며 상대적으로 가벼운 반면 <Paper, Please>는 앞선 게임보다는 한결 무겁고 어둡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웃음거리가 되는 여성

처음에 정신없이 서류에 사인만 하다 게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게 되면 비로소 NPC들의 대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닥터 후와 같은 서브컬쳐의 캐릭터나 코난 오’브라이언처럼 현실 세계의 유명인사들도 저승에 등장한다. 패러디게임의 요소를 띄고 있기 때문에 각종 유명인사들이 죽음의 심판대 앞에 선다. 물론 죽음은 만인에게 공평하기에 여성 영혼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영혼의 심판대에 오르는 여성 영혼의 비율은 매우 낮다. 30명~50명의 영혼을 매일 통과시켜야 하는데, 여성 영혼의 수는 5명이 될까 말까 하다. 심지어 다양한 체형의 남성 영혼들의 모습에 비해 여성 영혼들의 모습 또한 전반적으로 슬림하다. 그리고 그 영혼들의 대사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갑갑해진다.

이런 대사를 계속 봐야한다니. 이미지 제공 AZAMATIKA

여자들만을 위한 천국으로 보내주세요.
난 사격 실력보다 엉덩이가 더 예뻐.
여성은 죽음을 맞이할 이유가 없어!

게임을 신나게 하면서 유명인의 패러디를 보거나 인터넷의 유머 요소를 보며 웃으며 박수를 치다가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면 잠깐 멈칫하게 된다. 그래서 이 여성 영혼들의 비율이 적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 어이없어하는 지점이 생긴다.

단순하고 잘 만든 게임이긴 하지만

<Peace, Death!>는 죽음과 사신이라는 소재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냈지만, 2017년에 발매된 게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에 대해 차별적으로 묘사한다.

물론, 게임의 본 목적인 “빨리 그날의 할당량을 심사하여 좋은 점수를 얻는다” 는 것에 집중 한다면 많은 NPC의 대사들은 그저 지나가는 요소일 뿐이다. 게임 자체가 재미없는 편은 아니니 많은 여성 유저들이 그동안 많은 게임을 하며 평상시에 그래왔던 것처럼 이런 요소들을 무시하고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을 하면서 분명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은 존재할 것이고 굳이 그것을 참아가며 게임을 하기엔 비슷하거나 더 나은 대안이 이미 존재한다. 비슷한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3909의 <Paper, Please>가 더 낫지 않을까. <Peace, Death!>는 소재도, 게임성도 나쁘지 않았지만 단 한가지 요소가 발목을 잡아버렸다. 그리고 그 요소를 무시하고 게임하기엔 이미 좋은 게임들이 많이 나와있다.

<Peace, Death!>

2017.03.24 발매

한글 패치 발매일 201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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