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 GEAR

룬컵 - '여성을 위한' 기술은 실재하는가

일러스트레이터: 해일

생리컵 판매금지국의 스마트 생리컵

나는 오로지 생리대 하나만 알고 살던 시절을 거쳐 탐폰이라는 이름의 신대륙을 발견하는 과정을 지나 마침내 생리컵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흔한 여성 중 한 명이다.

IUD (자궁내 피임장치)를 시술받은 후 생리혈이 대폭 줄어 지금은 그 효용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생리컵을 처음 사용하면서 느꼈던 그 신기함과 해방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주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집 근처 드러그스토어만 가도 브랜드별로 비교해 가며 쉽게 생리컵을 살 수 있었던 나와는 달리, 친구를 통해 전해 듣는 국내 상황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여성의 몸, 월경 및 관련 도구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더불어 생리컵의 편리함도 입소문을 탔다. 바다 건너 다양하고 예쁘고 편리한 제품들을 지켜보던 한국 여성들은 보다 못해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제품을 들여오기 시작했고, 그러자 정부는 ‘관련 법령이 없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국내 생리컵 판매 금지 조치로 이에 화답했다. 이 어이없는 촌극을 지켜보며 뒷목을 잡던 중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 최초의 스마트 생리컵 (the world’s first SMART menstrual cup)'이라는 카피와 함께 등장했던 ‘룬컵(LOONCUP)'이었다.

룬컵은 IoT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 생리컵으로, 한국 스타트업 ‘룬랩 (LOON Lab)'에서 개발 중인 제품이다. 2015년 10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 펀딩이 시작되고 전세계 각지 여성들로부터 뜨거운 성원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펀딩을 완료한 바 있다. 룬랩에서 설명하는 룬컵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 생리 주기 측정

• 생리혈의 양 측정

• 생리혈의 색 분석

• 위의 정보들을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제공하며, 생리혈이 생리컵에 어느 정도 찼는지 수위 역시 확인 가능

• 블루투스 4.0 탑재

이 프로젝트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룬컵을 다룬 기사가 여기저기서 보도되었고, 나 역시 일찌감치 룬컵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저 기능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해 후원하지 않았지만, 생리컵을 써온 입장에서 제품 자체에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 생리컵'이라는 문구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마침 한국 스타트업 제품들이 줄줄이 킥스타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무렵이기도 했다. 생리컵이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지던 당시의 국내 분위기와는 달리, 세계 최초의 스마트 생리컵을 만든다는 곳이 다름 아닌 한국 업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 과연 이 성공이 국내의 생리컵 보급과 인식 전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했다.

그 후, 별 생각 없이 나의 평범한 생리컵을 사용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2017년 1월 어느 날, The Establishment 속 한 기사에서 나는 다시 룬컵을 만나게 된다.

지연, 침묵, 의문

• "Is The Looncup Menstrual Tracker A Scam?" By Tessa J. Brown

기사 속 룬컵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은 그리 순조롭지 않아 보였다. 아니, 사실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2015년 10월 크라우드 펀딩 시작 당시 룬랩에서 약속한 제품의 발송 시기는 그 이듬해인 2016년 1월이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수차례 거듭하여 제품 발송이 지연되었고, 룬랩은 이메일 문의는 물론 킥스타터 페이지에서의 빗발치는 환불 요구 및 항의에도 반 년 가까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구글에 룬컵을 키워드로 넣으면 나타나는 연관 검색어 중 세 번째가 무려 'looncup hoax (장난질, 사기)’이다. 제품 후원자들은 어느 나라의 누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건지, 이 제품이 과연 실제로 개발이 되고 있기는 한 건지 온라인을 뒤져가며 수소문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해당 기사가 보도된 뒤인 2017 2월, 룬랩은 킥스타터 페이지에 장문의 사과문을 게재하며 돌아와 후원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거나 요청된 환불을 처리하는 등의 고객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럼에도 내게 여전히 이 프로젝트는 위태로워 보이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언제 룬컵의 개발과 생산이 완료되어 후원자들이 제품을 받아볼 수 있을지, 추가적인 일정 지연이 정말로 발생하지 않을 것인지가 여전히 미지수다. 룬컵 개발 상황과 관련된 최근 소식들을 살펴 보면 걱정은 더욱 깊어진다.

룬컵의 대표는 금년 1월 자신의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우리가 필요한 공정들은 대부분 삼성이나 일부 대기업에서만 쓰는것으로 물량이 비교가 안되게 적은 룬랩 같은 스타트업은 영업부에서 필터링 당해서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전화만 수십통이고 다시 걸려온 전화는 몇 통 안 되며", “양산개발도 전부 거절 당했기 때문에 결국 모든걸 전부 내부에서 다” 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샘플 제작 기간만에도 일반 PCB(인쇄 회로 기판)보다 적게는 5배 많게는 10배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니, 룬컵의 개발 과정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2. 

룬컵이 개발-생산-배송의 모든 과정을 거쳐 무사히 모든 후원자의 품에 안긴다 해도, 거듭된 일정 지연과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생겨버린 룬랩과 룬컵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구글 검색어는 어찌할 것이냐. 주력 생산품명 뒤에 ‘사기’가 붙다니.) 더불어 화가 날대로 난 후원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돌리기도 어려워 보인다.

3.

룬컵 기능의 실질적 효용성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위 Establishment의 기사에도 소개된 산부인과 전문의 Dr. Jen Gunter는 “룬컵에 대한 모든 것은 잘못되었다(Everything about the Loon Cup is wrong)”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문) 그는 ‘생리혈의 색과 양을 정확하게 측정 및 분석할 이유도 없고, 일반인 사용자가 자가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 역시 없으며' ‘과연 이 제품의 개발진 중에 실제로 생리를 겪어본 여성이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 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Thinking blue tooth technology will augment vision makes me wonder if anyone on the project has actually had a period or seen blood and if any women work at Kickstarter.”

4.

룬컵의 현실적인 사용성도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Slate의 L.V. Anderson도 관련 기사에서 일찌감치 여러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룬컵의 스마트폰 앱 연동 기능은 블루투스를 통해 작동하는데, 체내에서는 블루투스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룬컵의 안테나 일부가 체외에 나와 있어야 한다고 룬랩이 FAQ에서 밝힌 바 있다. 안테나 일부가 체외에 나와 있어야 하다니 생리컵 사용자로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분인데, 다행히도 룬랩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 이를 수정, 블루투스 대신 통신 기능이 없이도 작동하는 센서를 통해 생리혈의 양을 측정하도록 개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룬컵의 경우 내장 부품 때문에 다른 생리컵들과는 다르게 끓여서 소독할 수 없으며, 물과 비누로만 세척해야 한다. 게다가 센서와 블루투스 안테나가 들어가 있는 생리컵을 과연 일반 생리컵처럼 접어서 삽입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배터리 지속 기간 탓에 이용 기간이 6개월 남짓이라는 점도 몇 년씩 사용 가능한 기존의 생리컵과는 다른 점이다.

여성을 위한 기술은 실재하는가

많은 미디어들이 룬랩을 인터뷰했다. 그 수많은 기사 중 위 의문점을 언급하거나,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진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찬양 일색인 국내 기사는 특히 그렇다. 딱히 룬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리컵 뿐 아니라 정말 수많은 제품들이 ‘여성을 위해’ 라는 타이틀을 달고 튀어나온다. 여성을 위한 스마트 디바이스,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다. 그 제품들이 여성의 삶에 정말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특히나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안전 문제에는 제대로 대비되어 있는 제품인지, 여성의 입장에서 편리한 사용성을 갖추고 있는, 소위 ‘돈값'은 하는 제품인지.

여성 건강에 혁신을 일으키겠다며 발표 또는 출시된 제품들은 룬컵 말고도 많다. 케겔 운동을 추적하고 피드백을 준다는 ‘Elvie’, 언제 탐폰을 교체해야 할지 알려준다는 탐폰 모니터 ‘my.Flow’, 그리고 헤드셋 부분을 질에 삽입해서 뱃속의 태아에게 좀 더 제대로 음악을 들려줄 수 있게 하는 이어폰 ‘Babypod’ 등(패러디 아니다. 실존하는 제품이다), 과장 좀 보태서 자고 일어나보면 여성을 위한 또다른 ‘혁신적인 기술’ 이야기가 미디어를 타고 있다. 최신 기술을 찬양하고 혁신적이라는 스티커를 서로 붙여주며 박수치기 전에, ‘과연 이 제품이 여성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보는 건 어떨까. “vagina와 tech를 섞으면 관심 받기 딱 좋다”는 자조섞인 농담도 이제는 정말 재미가 없어지려고 한다. 

2017.04.04 16:29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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