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노동하는 여성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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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노동하는 여성 노인

어니언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취재에서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있다. 공원과 광장에서 하루를 보낼 수 없고, 외식을 할 수 없으며 즐거운 여가 생활이 멀게 느껴지는 존재들. 이 순간에도 여전히 노동하고 있는, 여성 노인이다.

세계적인 유산이 된 종묘공원에서 언제부턴가 노인들의 성매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성 노인에게 박카스를 건네며 접근해 성매매를 일삼는 여성을 지칭하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까지 등장했는데요. (중략) 해외에서까지 '박카스 할머니'가 악명을 떨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경찰이 노인 성매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습니다.

(2015-03-26 YTN 보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취소는 엄청난 공포를 일으키는 모양이다. 앞선 기사에서 짚어보았듯 유네스코는 현재까지 문화재를 취소한 사례가 단 2건이며, 그것은 문화재 자체가 훼손된 경우에만 해당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었다. 보도처럼 ‘악명을 떨치던’ 박카스 할머니는 대체적으로 소탕됐다. 현재는 종로 일대를 떠돌면서 성매매를 시도하는 소수의 여성노인만 남았다.

불법 성매매 행위는 근절되어야 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박카스 할머니들은 노년기에 들어서 성 노동을 시작하게 됐다. 빈곤 때문이다. 

노점상 하던 아들이 사고를 내서 가세가 기울자 성 노동에 뛰어들게 된 노모가 있었고, 병원 치료비를 버는 할머니, 남편이 시켜 성매매에 나선 장애인 여성도 있었다. 이들은 성매매를 하고 5000원~1만원 남짓의 화대를 받았다. 잘 버는 날은 3만원 정도 챙길 수 있다. 종묘공원에서 지워진 존재 ‘박카스 할머니’는 직시해야만 하는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이었다. 여성노인빈곤 끝에 ‘박카스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먹이사슬 최약체, 빈곤한 여성노인

빈곤한 여성노인은 먹이사슬 최약체다. 노인 2명 중 1명이 빈곤상태인 우리나라에서는 연금이 생계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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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사회공공연구원에서 발표한 ‘국제비교로 본 한국의 노인빈곤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노인들은 소득 중 근로소득 비중이 63%이고 공적 연금은 16.3% 정도다. OECD 국가들은 정반대로 노인가구 소득원 59%가 공적연금과 같은 국가, 사회로부터의 소득이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1위고 연금수준은 최하위권이라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공적연금 수준이 소득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해오지 않았던 여성노인의 경우는 연금 혜택을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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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국민연금 수급률을 살펴보면 남성 전체의 45.5%가 국민연금을 받는 반면 여성 노인의 수급률은 남성의 절반 이하인 20.3%에 그쳤다.

젠더 간 불평등은 여성노인의 빈곤을 고착화시켰다. 분업과 가부장제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복지 재분배 효과가 인구 절반에게만 미치게 된다. 공공부조 수급자 절대 다수가 여성이며, 사회보험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 특성으로 인해 여성노인 빈곤층의 특징이 곧 빈곤의 전형이 된다. 사회의 경제사회적 규범과 상황, 연금정책 등은 국가정책적 선택의 결과였다. 사회안전망이 튼튼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통사회가 무너지면서, 독자적으로 노후 생활을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노인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던 여성노인들이 고통 받는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연금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노인이 할 수 있는 노동은 많지 않다. 그마저도 소득이 매우 적은 일뿐이다. 빈곤층이 가장 쉽게 할 수 있고 보편적으로 하는 일이 폐지 수집이지만, 폐지를 하루 종일 주워도 kg당 70원을 받는다. 많이 받으면 90원이다. 가족에게 도움을 받기 어렵다면, 노인들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손에 쥔 푼돈도 병원비, 약값으로 나가기 일쑤라 과연 ‘먹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똑똑히 마주해야 할 얼굴, 박카스 할머니

박카스 할머니들은 폐지수집과 성매매, 두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생계가 그만큼 곤란했던 것이다. 한국노인상담센터 이호선 센터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에게는 출구가 없다.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들은 계속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며 “박카스 아줌마는 여성노인의 빈곤과 남성노인의 욕망이 만난 자리다. 한국의 빠른 성장의 긴 그림자가 여성노인에게 빈곤이라는 그림자로 투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와 인터뷰했다는 한 박카스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배고프다. 나는 존경이 필요 없다. 나는 명예도 필요 없다. 나는 단지 하루 세 끼 식사를 원한다.

종묘공원을 떠도는 ‘박카스 할머니’는 특히 ‘우리나라의 수치스러운 모습’처럼 여겨졌다. 불법적인 성매매를 장려할 이유야 없다. 근본적인 해결은 여성노인빈곤을 진단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있었다. 생계 곤란으로 성노동 전선에 뛰어들고 폐지를 수집하는데도 서류상 기준으로는 기초수급에 속하지 않았다. 사정을 아는 경찰도 단속을 치열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네스코 문화 유산 취소라는 말에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고 그 장소에서 사람들을 없앴다. 쉬운 해결법이었다. 

그러나 보고 싶지 않아서 그녀들을 치워 버린대도, 수치스러운 존재가 된 그들은, 수치스럽지 않은 일을 찾아 하면서 수치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다. 단지 하루 세 끼 식사를 원하면서.

by 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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