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종묘공원, 파란 간이 의자

알다노인

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종묘공원, 파란 간이 의자

어니언스

어버이연합이 떠난 자리

종묘공원에서 어버이연합이 사라졌다. 2016년 4월 22일, 어버이연합의 추선희 사무총장(57, 남)이 청와대와 ‘관제데모’를 논의했다는 일명 ‘어버이연합 게이트’의혹이 터진 후부터다. 어버이연합이 사라진 후,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을 대표하던 정치 발언들도 사라졌을까.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은 본래 시국 강연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에 일조한 노인들의 공로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면 노인들은 그 앞에 빼곡히 앉아서 환호했다. 그러나 공원이 재정비된 이후에는 그 풍경도 달라졌다. 옛날 같으면 하루 2000~3000명이 오가던 공원이었으나 지금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몇 백 명 정도 오갈까 말까다.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이제 공원에서 안 보이는 뒤꼍에 모여 있다.

오후 12시, 태양이 한창 열을 낼 시간이었다. 종묘시민공원 화장실 옆에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이아무개(79, 남)씨가 지나갔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그는 말없이 웃어줬다. 종묘시민공원에서 처음으로 말을 걸어줬던 사람이 그였다. 그때 그는 대뜸 질문을 던졌었다.

“신공항 부지 선정을 김해공항 확장으로 바꾼 것이, 어떤 것 같아?”
“네?”
“아니, 젊은 친구 생각이 궁금해서 그래.”
“이미지 포장하는 거죠. 말장난인데.”
“그렇지? 포장도 그걸 잘해야 하는데.”


(옆에 있던 남성노인이 거들었다.)


“포장이라고 한 것도 포장이 아주 까만 비니루 포장이여. 봉다리로 싸놨어 기냥.”

만담처럼 시사 이슈를 토론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이 반가웠다. 이씨 옆에 서있던 김아무개(69)씨는 초면이었지만 그는 이씨를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이 사회 현안에 대한 내 입장을 물었다. 이번에는 사드 배치 건이었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리기도 전에 우병우 민정수석, 진경준 검사장,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주제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김씨는 자신을 ‘중용좌파’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종묘공원에 출근 도장을 찍어왔다. 어버이연합이 보수집회를 하면 맞서 싸워왔던 것이 ‘자신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버이연합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어버이연합, 거기는 말여. 낮 오후 한 시부터 계속 행사 같은 것을 했어. 태극기 같이 생긴 것을 다 모자에 달고 다녔는데 지금은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자유총연맹, 어버이연합, 그런 단체 사무실도 저 건너편에 있었는데 다 종적을 감췄어.

그는 여유롭게 시위하던 그들이 내심 부러운 듯도 했다.

어버이연합은 점심에 가면 컵라면 주고 보수도 줬어. 2만원 줬다고 하지만 말 잘하고 젊으면 5만원도 줬어.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가 봐. 라면도 주고 하루 2~3만원씩 주고. 사무실 월세가 800이었다던데.

진보남성노인모임

종로 탑골, 종묘공원은 어버이연합의 주 활동 무대였다. 그런 만큼, 흔히 생각하는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많을 것이라는 통념이 있다. 탑골공원 앞을 지나다보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해체, 정부의 4대 개혁 추진을 위한 서명을 받는 노인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공원 내에는 진보 성향 남성노인들이 의외로 여럿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정치성향을 밝히기 꺼려했다. 

"여기 와서 정치 얘기 해봐야 싸움만 나지. 남의 입장은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야."

그런데 종묘시민공원에서 만난 ‘중용좌파’ 김씨는 자신과 비슷한 좌파노인들이 모인 곳이 있다고 했다. 그를 뒤따라 공원 끄트머리까지 걸었다. 파란색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있는 남성노인무리가 보였다. 서로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주춤주춤 걸었다. 혹시 싸움이라도 났으면 휘말리지 않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그저 사회 현안에 대해서 핏대를 세우고 불만을 ‘공유’하는 성토의 장이었다.

진보 남성 노인들은 점심을 먹고 집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거나 시위를 갔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외식 같은 데에 헛돈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오후 1~2시쯤 사람들이 슬슬 몰려들었다. 혼자 사는 사람,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 아내와 사는 사람. 모두 제각각이었고 고향도 달랐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수도권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진보 남성 노인들은 공원 안이라고 할 수 없는 경계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이 의자는 뭐예요?” 묻자 모임 사람들은 내게 일제히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원 재정비 사업으로 앉을 자리가 없어져 이쪽으로 쫓겨났다는 거였다.

“처음에 이 사람들이 200명, 300명 모였는데 있을 자리를 치워버리니까 점점 줄어들어서 이제 30명 정도 남은 거예요.”

“아무 데도 쉴 자리가 없잖아, 여긴. 이렇게 하는 곳이 어디 있어.”

“의자 놓은 것도 봐. 저기, 공원에 그늘 하나 없잖아. 저런 데에 왜 의자를 갖다 놓느냐고. 왜 그러는지 알아? 
노인네들을 쫓아내기 위해서야. 노인네들이 나라를 전부 다 지킨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박대를 하는지 모르겠어.”

공원에 그늘이 사라지자 모임에 나오는 사람도 줄었다. 앉을 데가 필요했던 진보모임은 자체적으로 돈을 걷어 의자 60개를 구매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자가 없어져 버렸다. 도둑맞은 것인지, 공무원들이 치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신참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최영식(65)씨가 자발적으로 돈을 내서 파란색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또 사 왔다. 이들의 의자는 한 쪽에 가지런히 쌓여 있다. 앉고 싶으면 하나씩 들고 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된다. 

보통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앉고 열띤 토론을 나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신공항 부지 결정, 성주 사드 배치, 김영란법,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침을 튀기고 이야기한다. 손에는 담배 한 개비씩 들려 있다. 같은 정치색을 띤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불편함을 마음껏 토로하는 자리인 셈이다. 

일종의 커뮤니티지만 이름이나 닉네임이 없어도 낄 수 있다. 주변에 슬쩍 와서 듣다가 공감하면 의자를 두고 앉아서 같이 이야기하면 된다. 노인들은 서로 나이나 이름도 딱히 오픈하지 않았다. “어이!” “저기!” “저 양반!” 그 정도면 충분했다. 

오후 2시쯤, 최씨가 시원한 박카스를 사들고 왔다. 종일 주전부리로 박카스 하나면 족했다.

처음에는 김씨도 데모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런데 호기심에 데모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몇 번 말을 붙이고 나니, ‘아, 이런 사람들이 데모하는구나’하고 납득했다. 그때부터 ‘납득이 가는’ 집회를 찾아다녔다.

집회 아무리 다녀봐야 효과가 없더라고.
나도 물대포도 맞아보고 쌍용 자동차 때 평택까지도 갔어. 시청에서 여의도까지 걸어서도 가보고. 한나라당 당사 가서 떠들어도 보고.
사실 달걀로 바위치기지. 떠든다고 무슨 의미가 있어.

그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참여하면 변할 줄 알았지만 현실이 변화하는 속도는 너무도 느렸다. 그래도 그는 일주일 3~4번은 이곳을 찾는다. 21일에는 성주 주민들이 상경해 사드 배치 반대 시위를 한다고 해서 서울역에 구경을 갔다.

"누가 보면 우리 돈을 준 줄 알어. 현수막이고 뭐고 다 우리 돈으로 하는 거야. 없는 사람은 안 내지, 있는 사람끼리만 내는데 혼자 10만원 내는 사람도 있어."

데모하고 붙은 딱지

근처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은 이쪽의 노인들에게 관심도 없었다. 너무 구석에 있다 보니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저쪽에서 정치 토론하는 분들 아세요?”
“저기에 뭐가 있다고?”

공원 한켠에서 열을 올리며 토론하는 ‘진보적인’ 노인들은 노인 중에서도 소수자였다. 진보남성노인들은 오후 3시에 있는 집회에 참여하냐, 안 하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12시~17시, 노약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세요. 며칠 걸러 한번씩 국민안전처로부터 폭염주의 문자가 발송되고 있었다. 한 진보남성노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라가 없어. 이 나라 사람이 아니야.”
“외국에서 오셨어요?"

너무 순진하게 대꾸해버렸다.

“아니. 우리더러 죄 종북빨갱이라니까 우리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거지. 북한 가본 적도 없는데 북한 사람이 됐어.”

종로는 마음 맞는 사람을 찾으러 오는 곳이랬다.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날이 너무 더웠다. 매미는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by  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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