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남팬들: 티셔츠 한 장으로 여성을 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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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남팬들: 티셔츠 한 장으로 여성을 해고하다

이가온

소녀에겐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문장의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우가 업계 1위 게임회사에서 퇴출당했다. 크리에이티브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들에게 문제의 본질은 명확했다. 기업과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개인의 의사 표명만으로 콘텐츠가 삭제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 김자연 성우에게 공감을 표한 이들 중에서도 웹툰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번역가가 유독 많이 눈에 띄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은 김자연 성우와 마찬가지로 회사-개인의 계약을 맺은 ‘을'이었고, 그렇기에 사태의 부당함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목소리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김자연성우를_지지합니다

이 해시태그와 함께 소셜 미디어에서 다양한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불쾌함을 표한 곳은 티셔츠 한 장 때문에 성우를 교체한 넥슨도 아니고, 유명 웹툰 작가들이 웹툰을 연재하는 플랫폼 측도 아니고, 바로 그들의 -소위- ‘팬'들이었다.

“작가님, 차라리 입을 열지 마세요.”

넥슨의 성우 교체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창작자들에게 팬들은 ‘차라리 조용히 있어 달라'고 주문하기 시작했다. 웹툰 작가들의 입장 표명을 불쾌해 하고 우려하는 팬들의 입장은 명확했다.

김자연 성우가 입은 티셔츠는 메갈리아4라는 과격 페미나치 단체를 후원하는 티셔츠이다. 당신은 IS가 만든 티셔츠를 단지 예쁘거나 멋지다고 생각해서 사서 입나? 아닐 것이다. 당신이 티셔츠에 지불한 그 돈은 바로 그 과격한 단체의 자금으로 쓰이니까. 마찬가지 맥락으로, 문제를 일으킨 성우가 입은 티셔츠는 여성우월주의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티셔츠다. 그래서 우리는 콘텐츠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산자를 보이콧할 수 있는 권리를 발동했을 뿐이고, 이를 당신이 지지하는 것은 저 티셔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1년 여성가족부의 만화 유해매체 지정에 반대해 작가들이 공유했던 ‘No Cut’ 심볼이 ‘Yes Cut’으로 재편집되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포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Yes Cut’ 심볼 아래에는 다양한 문구가 적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을 몇 개 꼽자면 ‘생산자는 벼슬이 아닙니다.’ , ‘독자를 멸시하며 메갈리아에 물든 작가들을 거부합니다.’, ‘규제로부터 작가를 지켜주던 독자는 이제 없습니다.’ 등이 있다.

하지만 김자연 성우의 교체로 촉발된 팬들의 ‘Yes Cut’운동에서 팬으로 스스로를 자처하는 이들의 모습과 양상, 논리는 팬보다는 특정 집단에 가깝다. 한국 남성이라는 특정 집단 말이다.

팬의 권력을 넘어선 남성

일련의 웹툰 작가들이 남성혐오 커뮤니티로 알려진 메갈리아(와 메갈리아 4는 다르지만 일단 그들 눈에는 그게 그것이다)를 지지하자 분노한 것은 자신이 생산자들의 든든한 팬’이었음’을 자부하는 한국 남성 팬들이었다. 콘텐츠 생산자들이 메갈리아를 지지함으로써 메갈리아 지지를 팬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그들은 스스로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콘텐츠 업계에서 한국 남성은 그저 을이고 존재감 없는 고객이 아니다. 한국 남성은 한국 웹툰, 게임, 음반 등 대중문화 업계에서 가장 힘있는 집단이며, 모두가 제 1의 타겟으로 삼는 집단이다. 조금만 돌이켜보면 명확한 일이다. 여성들을 수없이 불편하게 하면서도 여전히 ‘남성향’ 콘텐츠는 꾸준히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남성향 콘텐츠가 대중문화의 주류다.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  51화 중

유사 포르노 판타지를 제공하는 여성 아이돌,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며 여주인공을 발로 걷어 차는 남자 주인공, 여성이 군대에 간다는 설정이지만 군대에 가서 어쩐 일인지 가슴을 드러내는 포즈만을 배우는 네이버 웹툰 1위 만화… 남성이 ‘보시기에’ 불편하지 않은 콘텐츠는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평균’이다. 똑같은 콘텐츠을 가지고 여성이 불편해 하면, 프로 불편러, 아니, 이젠 메갈리안, 메퇘지, 메오후가 될 뿐이다.

게다가 그저 순박하고 꿋꿋하게 작가를 지지해 왔다고 믿는 한국 남성들은 이미 팬을 넘어서는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성우의 교체로 증명했다. 김자연 성우를 넥슨이 결국 교체하게 만들면서, 한국 남성의 입맛대로 재단할 수 있는 범위는 콘텐츠 너머의 사람으로 확장됐다. 만화, 뮤직비디오, 소설이 ‘불편하지 않’더라도 그 뒤의 사람이 불편하면 이마저도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다.

창작자의 사상을 검열하는 남성

‘Yes Cut’이라는 문구를 내세우면서 창작자를 보이콧하고 검열, 규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팬들은 그들의 운동이 독자로써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혹은 팬이 창작자의 콘텐츠에 호불호를 표시하는 것을 넘어서 창작자의 발언과 생각을 규제할 수 없다. 아니, 사실은 그 누구도 창작자의 의사 표명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 남성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페미니즘과 메갈리아에 창작자가 ‘물드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창작자가 이렇게 위험한 사상에 동조하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결국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대화를 거부하는 남성

메갈리아를 지지하거나, 메갈리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은 창작자에게 쏟아지고 있는 한국 남성의 비난은 사실 메갈리아 태동 이전에도 있었던 ‘한국에서만 비뚤어진 이상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과 같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고 새롭지도 않은 일이란 뜻이다. 한국에서만 비뚤어진 이상한 페미니즘이 너무 길다면, 그 자리에 ‘이대’나 ‘김치녀’, ‘된장녀’ 등의 단어를 대입해 보자.

단지 한국 남성 팬, 혹은 일방적인 남편-팬들은 모든 토론과 논의를 차단하는 단 하나의 방패로 메갈리아라는 허상을 골랐을 뿐이다. 이미 2015년 겨울 즈음부터는 새 글의 업데이트조차 거의 되지 않고 있는 소위 ‘남성 혐오' 사이트를 꾸준히 재소환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 남성 뿐이다.

창작자를 자신의 아내처럼 대하는 남성

그들은 메갈리아가 얼마나 위험한 사이트인지, 얼마나 남성 혐오를 부추기고 반사회적인지, 얼마나 일베나 IS처럼 감히 접촉해서는 안 되는 단체인지 힘주어 외치고 다녔다. 아니, 그러한 생각에 순응할 때까지 무차별적인 인신 공격을 퍼부었다.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다고 밝힌 웹툰 작가들은 모두 ‘작가님도 메갈입니까?’와 같은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했다. ‘메갈리아를 해본 적 없고, 모든 방향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성과는 인정되어야 한다'와 같은 답변을 내놓은 창작자들은 또다시 메갈리아의 위험성과 잔악함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무한 반복이다. 자신의 말에 순응하고 자신의 ‘편’으로 진입하기 전까지는 이들을 깨우쳐야만 하고, 깨우치려면 때로는 무자비한 조롱과 악성 댓글을 달아도 괜찮다는 한국 남성의 심리는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의 심리와 닮아 있다. 일련의 한국 남성식 계몽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가해는 모두 깨끗이 지워지거나 정당화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 남성 팬들이 남성 창작자와 여성 창작자에게 보내는 적대적 반응의 온도 차이를 보면 특히 ‘무지한 여성 창작자'를 계몽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할 수 있다. 한국 남성 팬은 여성 창작자가 남편의 말을 잘 듣고 고분고분한 아내와 같기를 바란다. 그들은 조용히 창작이나 열심히 하면 되고, 모든 의견 표명과 사상은 그들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생계를 꾸려올 수 있게 해 준 - 실제로 대부분의 웹툰 플랫폼에서 돈을 지불하는 것은 회사이지 독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 남성 팬들을 따라야 한다. 최소한 따를 수 없으면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에 반발하는 발언을 감히 하지 않고 마음 속에만 생각을 꽁꽁 숨겨두어야 한다. 자신이 내놓은 의견에 토를 달아서도 안 된다. 이것은 생산자와 소비자, 창작자와 팬의 관계가 절대로 아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가부장제다.

그래서, 팬이 아닌 한국 남성

‘작가를 지켜주던 팬은 이제 없습니다.’

예스 컷, 혹은 노 쉴드(No Shield) 운동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 한 줄의 캐치프레이즈다. 그들에게 작가는 멍청한 여성부가 만든 규제로부터 지켜 왔던 소중한 아내였고, 아내의 구수한 된장찌개를 좋아하듯이 그들은 작가의 꾸준한 연재와 창작물을 좋아했다. 아내, 아니 작가가 이들에게 감히 반기를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금은 슬프고 웃긴 것은, 작가는 이들에게 자신을 지켜달라 요청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작가들에게 작가와 팬의 관계는 생산자-소비자의 동등한 관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둘 중에서 지금 정말로 ‘갑질'을 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자신의 생각과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유롭게 떠나라고 말하는 작가인가, 이들을 어떻게든 계몽시키려는 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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