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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승리와 한 번의 (?)

1970년, 텍사스주 댈러스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여성은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임신 중절을 할 권리가 있다' 라고 주장하며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결국 이 소송은 연방 대법원 판사 9명 중 7명의 지지를 얻어 위헌으로 판결 되며, 판결문에는 "헌법 제 14조의 사적 자유에 의해 보장되는 사생활권은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중단하거나 혹은 중단하지 않을 결정 또한 포함한다"는 문장이 담긴다. 임신 중절이 여성의 사적 권리임을 인정한 것이다. 바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이다.

그리고 무려 43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성의 임신 중절 권리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미국 몇몇 주에 세워진 임신 중절 클리닉에서는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다. 

여성이 자신의 몸, 그리고 그 몸에서 벌어지는 ‘임신’이라는 과정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투쟁의 역사는 진행 중이다. 힘든 싸움이지만 매일 매일, 전 세계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두 번의 의미 있는 승리가 있었다.

승리 하나 : 텍사스, 
‘임신 중절 수술 클리닉 폐쇄법’ 
위헌 판결

위헌 결정을 환영하는 사람들 ⓒ연합뉴스

2016년 5월 27일, 연방 대법원이 텍사스주의 임신 중절 수술 금지법안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텍사스는 2013년에 엄격한 규정을 가진 임신 중절 수술 금지법을 제정했다. 임신 20주 이전의 태아일 경우에만 임신 중절을 할 수 있으며, 특별 면허를 가진 의사만이, 그것도 충분한 수의 수술실이나 의료 인력을 갖춘 외과병원에서만 중절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된 이후 텍사스에 위치했던 임신 중절 수술 클리닉 30여개가 문을 닫아야 했다. 대부분의 클리닉은 소형 병원이었을 뿐 아니라 외부 의사를 고용해 수술을 진행했기 때문에 기준 미달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신 중절 수술 클리닉 폐쇄법’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자 다수의 여성단체가 소송을 제기했다. 과도한 규제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법안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재판이 3월 2일에 시작되었고 약 2개월 반만에 5:3으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연합뉴스

이번 판결은 미국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큰 의미를 가진다. 우선, 임신 중절 수술을 더욱 엄격하게 규제하는 법안이 텍사스 뿐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추진되고 있거나 혹은 이미 도입되었단 점이 그렇다. 텍사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하여 엄격한 규정을 가진 주는 유타, 테너시 등 이며 임신 중절 수술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임신 중절 수술 금지법을 도입한 주는 총 31개에 이른다. 이번 텍사스주의 임신 중절 수술 금지법 위헌 판결이 다른 주의 법안에 역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미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시기라는 점에서도 이 판결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의 경우 트럼프가 꾸준히 여성혐오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임신 중절 수술 문제에 대한 두 후보자의 태도가 당선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클린턴은 이번 판결 직후 트위터를 통해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승리 둘 : 폴란드 '검은 시위', 
임신 중절 수술 전면금지 법안을 막다

2016년 10월,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우산을 든 여성들이 폴란드의 주요 도시 곳곳으로 뛰쳐나왔다. 폴란드의 집권 여당이 임신 중절 수술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에 대한 항의의 물결이 폴란드에 넘실거렸다.

'내 자궁은 나의 선택' ⓒ연합뉴스

폴란드는 임산부의 생명이 위협받거나, 성폭행 혹은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이 아닐 경우 임신 중절 수술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0월 집권에 성공한 법과정의당 의원이 이러한 예외조항까지 없앤 '임신 중절 수술 전면 금지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여성과 의사는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이에 분노한 폴란드 여성들은 출근 및 가사를 거부하는 파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시위를 벌였다. 자궁 나팔관의 한 쪽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는 그림과 불법 임신 중절 수술 도구를 의미하는 철사 옷걸이가 모두 이 시위에서 등장했다. 이 시위가 ‘검은 시위’ 혹은 ‘검은 월요일’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참가자들이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차려 입었기 때문이다.

결국 폴란드 의회는 임신 중절 수술 전면 금지법을 철회했다. 10월 5일, 폴란드의 하원 본회의에서 임신 중절 수술 전면 금지법의 철회에 대한 표결이 있었고 총 428표 중 찬성 352표를 받으며 법안은 철회되었다.

그리고, 한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임신 중절 수술은 사실상 금지나 다름없다. 강간에 의한 임신일 경우, 법정 유전질환이 있을 경우, 임산부의 건강이 위협받을 경우의 예외조항이 있을 뿐이다. OECD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임신 중절 수술이 합법, 혹은 사실상 합법인 것에 비하면 그 허용 범위가 좁다. 

게다가 예외조항에 해당할 경우에도 본인만의 의사로는 임신 중절을 할 수가 없다. 사망이나 행방불명의 부득이한 사유가 아니라면 배우자(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는 자)의 동의까지 필요하다. 자기 몸의 결정권을 자기가 완전히 가지기는 커녕, 도구화된 자궁을 보기만 해야 하는 여성이 여기 있다.

그리고 여성의 재생산권 역사에 또 다른 의미의 한 획을 그을 사건이 한국에서 벌어지려고 한다. 의사의 비도덕적 행위를 규제하는 시행령에 임신 중절 수술이 슬쩍 끼워넣어지고, 또 이것이 산부인과 의사회의 협상 무기로 전락했다. 임신 중절 수술금지법이 ‘위헌 판결’을 받고, 대통령 후보자가 ‘임신 중절 수술를 하는 여성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발언 때문에 궁지에 몰리고, 10만명의 여성이 거리로 뛰쳐나와 임신 중절 수술 전면 금지법을 막아내는 2016년에 말이다.

여성이 여성의 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의 과정은 길고, 지루하고, 지난하다. 2016년은 한국의 여성에게 과연 어떤 해로 남을까. 여성이 여성이어서 잃어야만 하는 것의 길고 긴 목록에 목숨이 추가된 것도 모자라, 자궁에 대한 권리까지 더해질까. 

2016.10.13 12:23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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