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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이 볼모로 잡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29일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아래 입법예고)를 통해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하여 의료관계행정처분 규칙 개정을 통하여 행정처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비도덕적 의료 행위’의 항목에 ‘모자보건법 제14조제1항을 위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를 추가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새로 추가되는 ‘비도덕적 의료 행위’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의학적 타당성 등 구체적 사유 없이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등을 사용하는 경우
  2.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진료 목적외로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하거나 투약한 경우
  3.  진료 중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1항 각 호에 열거된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4. 수술 예정의사가 환자의 동의 등 특별한 사유 없이 다른 의사, 한의사 또는 치과의사로 하여금 수술을 하게한 경우
  5. 변질·변패(變敗)·오염·손상되었거나 유효기한 또는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6. 모자보건법 제14조제1항을 위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
  7.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외의 약물 등으로 인하여 진료행위에 영향을 받은 경우
  8.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금번 개정안은 상기 행위를 하다가 적발될 경우 최대 12개월의 의사 자격 정치 처분을 내리도록 했다. 임신 중절 수술을 하는 행위가 진료 중 성폭행을 하는 행위와 동급의 처분을 받는다는 뜻이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하 직선제 산의회) 는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입법예고 기간인 다음 달 2일까지 개정안이 수정되지 않으면 임신중절 수술 중단 선언을 하겠다”고 밝혔다.

임신 중절을 막으려는 목소리도, 임신 중절 수술을 그만두겠다는 목소리도 정작 임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2016년, 한국 여성은 자신의 몸을 남이 볼모로 잡고 싸우는 황당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국가가 여성의 몸을 
출산 기계로 알고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일차원적인 해석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임신 중절 수술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 저출산 인구 감소 시대의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폭력적 발상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이행이 확실시된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존재해 왔다. 

하지만 임신 중절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울수록 오히려 낙태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통계적 사실이다. 임신 중절 수술을 금지한 국가에서의 임신중절률은 여성에게 임신중절권리를 완전히 넘겨준 국가의 그것보다 높으며, 임신 중절 수술이 어려워질 수록 여성의 건강권은 사지로 몰린다. 

의사가 여성의 몸을 
협상의 무기로 삼고

직선제 산의회는 모자보건법상 허용되는 범위의 수술까지 포함하는 임신 중절 수술 전면 중단을 예고하였는데, 이는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명백하게 위협하는 행위이다. 직선제 산의회가 항의하는 목적에 임신하고 출산하는 여성의 권리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며,  '의사에 대한 징벌적 자격 정지 처분' 조항을 수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제로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산의회가 항의하는 가장 큰 목적이 정말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더 우스워진다.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규칙에 저항하기 위해 여성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수단을 택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피임도 안 하면서 
중절도 못하게 하고 

출산이든 낙태든, 그것이 진정 여성의 오롯한 선택이었던 적이 있는가. 낙태비디오가 아니라 월경주기 계산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고, 약국에서 약사와 눈을 마주치며 “피임약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고, 반항하는 파트너의 성기에 내가 좋아하는 향의 콘돔을 끼울 수 있으며, 임신했다고 학교에서 퇴학당하지 않고,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출산지원이 될 때, 낙태와 출산이 다 건강보험 적용이 될 때, 무엇을 선택하든 소독된 진료대에서 경험 있는 의료진에 의해 적절한 시술을 받을 수 있을 때, 아이를 걱정하지 않고 직장을 다닐 수 있을 때, 내 아이가 엄마만 있는지 부모가 다 있는지에 따라 차별 받지 않을 때, 우리는 출산을 ‘선택’할 지 낙태를 ‘선택’할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적어도, 안전한 낙태를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 '건강권으로서의 재생산권 - 낙태, 사후피임약을 중심으로', 2013, 윤정원

내 몸을 내가 가누지 못하고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보건복지부와 직선제 산의회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듯 하다. 곧 2017년이 다가오는데.

2016.10.12 15:5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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