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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내 성폭력을 말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언론계_내_성폭력

제목을 이렇게 시작하려고 써 놓고는 깜빡이는 커서만 한 30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해 SNS를 중심으로 '#XX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이어졌고, 이를 통해 생존자들은 각종 업계에서 만연하게 벌어졌던 성폭력을 집단의 목소리로 끄집어냈다. 그러나 유독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는 공론화되지 않았다고 느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쉽게 글이 이어지지 않는다.

지난해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새로운 집단에서의 고발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양 달려들고 해시태그가 붙어 올라오는 글들을 열심히 엮어 기사로 송출하기에 바빴다.

이런 기사를 미친듯이 써댄 각종 언론사와 기자들은 줄곧 각종 성범죄에 짐짓 엄중한 척 잣대를 들이댔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그들이 실상 자기 스스로가 속한 조직에서 벌어진 일에는 쉽게 눈을 감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러면서 언론사들이 더욱 정체돼 가고 있다고 느낀다.

트위터에서 '#언론계_내_성폭력'으로 일부 용기 있는 고발자의 글도 보기는 했지만 그 수는 다른 업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그렇다고 내가 언론사 안팎에서 벌어지는 갖은 성폭력에 대해 고발자로서 나설 자신은 없다. 겁이 난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어떤 해결책이 나오리라는 기대감도 없다.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마음을 안고 익명으로나마 여기에 작은 내 생각과 경험담만을 풀어보고자 한다.

여자 기자는 각종 성폭력에 쉽게 노출돼 있다

나는 햇수로는 아직 한자리수에 불과한 기자생활을 해 오면서 크든 작든 이상한 일을 많이도 겪었다.

'언론계'라고 표현하면 범위가 꽤나 넓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여성 취재기자의 경험만을 한정해 보겠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여자 기자는 일하는 현장 곳곳에서 각종 성폭력에 쉽게 노출돼 있다. 조직 안에서는 마치 군대와도 같은 계급 문화 때문에 성폭력이 손쉽게 발생하고, 조직 바깥에서는 취재원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성폭력이 발생한다.

'찍'소리도 못하고 손부터 잡혔다

나는 이 두 경우를 모두 당해본 적 있는데, 조직 내에서는 연차가 낮을 때 특히 그랬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씩 수습기자 제도를 둔다. 이때 경찰청에 가입한 언론사들은 수습기자를 각 경찰서에 보내 숙식을 하며 밤새 발생한 사건사고를 알아오도록 하는 '하리꼬미'라는 것을 시킨다. 이것이 요즘은 폐습으로 지적돼 몇번이고 없애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그나마 깨어있는 언론사 몇 군데를 제외하면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수습기자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말도 안되는 폭력적인 언행과 요구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를 거치며 수습기자는 자연스레 주눅들게 되고, 선배의 부적절한 행위에도 쉽게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설사 어떤 성적 발언이나 신체접촉이 벌어진다고 해도 말이다.

요즘은 갓 입사한 수습기자에게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이나 하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의 경우는 이런 것에 대한 교육은 하나도 없이 일단 짐부터 싸서 경찰서로 가라는 지시만이 떨어졌다. 내가 경찰서에서 별다른 사건을 잘 물어오지 못하자 이를 답답하게 여겼던 선배는 "미인계로 경찰이라도 꼬셔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상태인데 회식은 또 어찌나 많은지 여기서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봤다. 특히 평소에는 점잖다 술만 마시면 이상하게 변하곤 했던 한 부장은 나를 포함한 일부 여기자에게 온갖 추태를 부렸다. 내가 아직 수습기자 신분이던 어느 회식자리에서 그 부장은 나를 본인 옆자리로 불러 앉히더니 손부터 잡았다.

나는 '하늘같은' 부장과 말을 섞는다는 아주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하느라 손이 잡혔다는 사실은 인식도 못하고 있었다. 혀가 꼬부라진 채 부장이 던지는 알아듣기 힘든 질문에 일일이 귀를 기울여 정신차려 답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몇번이고 반복됐다. 멋모르던 나는 여러차례 회식을 거치며 다소간의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그 부장이 고생하는 나를 가엾게 여겼다거나, 본인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인 나를 친밀하게 여긴 것이 아닐까 하면서 오히려 합리화를 하곤 했다.

나설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는 수습기자 딱지를 뗐고 후배까지 받은 어엿한 선배기자가 되었는데도 회식자리에서 그 부장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 손은 내 손을 넘어 허벅지까지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사내에 알려지는것은 너무나 부끄러웠고, 나설 수 없었다. 회사에 어디 말할 곳도 따로 없었다.

용기를 쥐어짜내 팀장 격인 남자 선배에게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못한 채 부장과의 회식을 그만하거나 그 자리에 안가면 안 되냐는 내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그나마 이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한 남자 후배기자들이 내가 부장에게 붙들려 갈때마다 자연스레 나와 부장 사이를 떼어놓느라 안간힘을 써줬다. 부끄러웠지만 고마웠고 수치스러웠다.

나는 이 일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여기자들과 몇번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회사 내에 끝내 공론화하지 못했다. 한차례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를 꺼낸 적도 있었는데 특히 남자 선배 기자들이 "그 부장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불신의 눈빛을 보내면서 더 이상의 할말을 잃고 말았다. 이건 몇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취재원은 '기자'가 아닌 '여자'로 나를 봤다

부서에 배치를 받고 정식으로 출입처를 다니면서 내가 느낀 것은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남자기자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과 받지 않아도 될 오해를 너무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빠'라고 불러주면 뭐라도 하나 주겠다는 듯이 느물대는 경찰이며, 술자리에서 이상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고위 공무원(한번 기사를 써서 옷을 벗겨버릴까도 생각할 정도로 괘씸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참았다)도 겪어봤다.

술자리에서는 각종 '러브샷' 등 말도 안되는 스킨십을 요구받기도 했고, 노래방에서는 이미 무르익은 분위기를 깨기가 싫어 아버지뻘 되는 나이의 아저씨들과 세미 '블루스' 같은걸 춰 본것도 같다. 그런 날이면 집에 가는 길에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이런 기분을 참아가며 친분 관계를 다지겠다고 몇번 만나 술도 마시고 웃으면서 이야기도 들어주고 했더니, 공사 구분 못하고 이상한 연애 감정을 들먹이며 오밤중에 전화를 걸어오는 인간들을 상대하노라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어리고 예쁘시니까

어떤 기업 홍보담당자는 칭찬이랍시고 식사 자리에서 "기자님은 어리고 예쁘시니까 말만 잘 하면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 인간이 칭찬으로 했든 뭐로 했든 간에 이런 말이 왜 기분 나쁘게 들리는지조차 인식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황당했다.

모든 일들이 과연 남자 기자였다면 이렇게까지 했을 일이었을까 싶은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남자들이 만든 '이너서클' 안에 성별이라는 하나의 진입장벽을 뚫어보려고 여자 기자라는 이유 만으로 별 쓸데없는 공을 너무나 많이 들여야 했다.

그들은 나를 '기자'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들 눈에 나는 그저 나이 어린 여자아이로 비춰진 것은 아닐까 싶어 겁이 난 적이 많았다. 기자에게 있어 인간이 쌓아올린 네트워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굽혀가며 허울뿐인 친분을 쌓아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써 왔다.

애쓰기 역시 업무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일이지만, 직장 내에서의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업무 현장에서 부딪히게 되는 바깥 사람들로부터의 성폭력에 대한 보호 장벽도 당연히 없다. 말했지 않은가. "미인계로 경찰이라도 꼬셔봐라"던 선배까지 있는 마당이다.

술잔 몇번 기울여 신뢰 관계가 쌓였다고 생각했지만, 일로서 기자가 필요해지면 결국 다른 남자기자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뒷통수를 맞았다고 느낀 적도 있다. 그래서 이제 애초에 그래야만 친해질 것 같은 사람이라면 친해지기를 포기하고 있다.

요즘은 이 일도 어느새 지치고 환멸을 느껴 굳이 분위기가 이상한 술자리는 따라가지 않게 됐다. 그런 자리에서 나온 기사 몇개 물먹는다고 한들 세상이 무너지는것도 아니다. 네트워크고 뭐고간에 어지간하면 1차에서 자리를 마치고, 그보다 일단 대부분 점심에 만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는 결국 나 혼자 조심하면 된다는 결론 안으로 도망쳐버린 셈이다.

답을 못 찾겠다

이런 일이 나한테만 유독 빈번하게 일어났을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의 처지인 여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내가 겪은 경우가 딱히 심한 수준도 아닌 것 같다.

언론계는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신입기자는 매년 들어오고, 그 중 여자의 비율도 상당하게 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여기자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이들이 쉽게 놓이게 되는 성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근절할 방법이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심각하게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회사에서 후배 기자들을 받을 때마다 특히 여자 후배들에게는 취재원과의 사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즉각 항의하고 선배에게 보고할 것을 당부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언제까지 기자 스스로가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하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말이야 쉽지만 사회 초년생인 기자가 겪게 되는 온갖 이상한 상황에, 직업의 특성상 단호하게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일단 내가 잘 알고 있다. '까라면 까'야 하는 직장 분위기도 좀체 바뀔 줄을 모른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기자라는 사람들이 더이상 자신의 기사 뒤에 숨어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대한다고 끝날 일일까. 좀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 본다면 이 업계도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나 답을 못 찾겠다. 

2017.04.18 15:19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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