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 : 11-1. 페미 올 오버 더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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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 : 11-1. 페미 올 오버 더 월드

주연

정치 세션 세 번째 모임은 국내외 페미니스트 활동가와 단체를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각국의 페미니즘 정치적 의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해외 페미니즘 운동 중 고무적인 사례인 폴란드의 ‘검은 운동'부터, 그간 생소했던 이슬람과 아시아 국가의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란의 여성운동, 마지막으로 한국의 여성운동사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다.

1. 우리가 몰랐던 페미니스트 운동과 운동가들

위는 인도네시아와 팔레스타인에서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인터뷰 내용이다. 아시아의 페미니스트들은 저마다의 국내 상황에 접목시킨 페미니즘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의 후원자 분포가 다양해서 여성 운동이 오히려 이러한 자금 출처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을사조약이 맺어지던 1905년, 필리핀에서는 페미니즘 단체 ‘Asociacion Feminista Filipina’가 발족했다. 필리핀 최초의 여성단체다. 사회 복지와 공적 영역에서 여성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어 1912년에는 필리핀의 서프러제트 운동이 시작되었다. 여성 투표권 보장 운동은 1935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법원으로부터 ‘여성 30만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게 된다. 

단체와 활동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운동을 지속했고, 1937년 4월 여성 투표권 확대 찬반투표가 실시되었다. 결국 여성 유권자의 2/3이 찬성표를 던지며 “필리핀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어낸다(Filipina got the vote)”.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아시아 국가에 이런 멋진 역사를 만들어 낸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다같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국에서 페미니즘이 시작하고 발현되는 모습은 문화에 따라, 정치적 상황이나 그 외의 여러 요소로 인해 조금씩 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동안 타국의 페미니즘 운동과 이론을 접할 수 있는 경로가 서구권에 다소 편중되어 있었기에 아시아권에도 수많은 운동과 승리, 또 현재 쓰여져 나가고 있는 역사가 ‘있다’는 점을 돌아보게 되었다.

2. 근대 한국의 여성운동 - 근우회

이어 한국의 여성운동사 또한 간략히 살펴보았다. 근우회는 한국 최초의 여성 단일조직으로 1927년 발회했다. 

박용옥, <여성운동>,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특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일체차별 철폐’, ‘일체 봉건적 민습과 미신타파’, ‘조혼폐지 및 결혼의 자유', ‘인신매매 및 공창폐지’, ‘부인노동의 임금차별 철폐 및 산전산후 임금지불', ‘부인 및 소년공의 위험노동 및 야업폐지’ 등 여섯 가지 의제를 내걸고 여성 중심의 운동을 전개했다. 

위의 의제들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주요 의제들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쓰인 발기선언문 내용은 지금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분투하는 것은 조선사회 전체를 위하여 나아가서는 세계 인류 전체를 위하여 분투하게 되는 행동이 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일반만을 고조하여 특수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고로 우리는 조선여성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조선여성의 모든 특수점을 고려하여 여성 따로의 전체적 기관을 갖게 되었나니 이와 같은 조직으로서만 능히 현재의 조선여성을 유력하게 지도할 수 있는 것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여성운동은 세계사정에 의하여 또 조선여성의 성숙도에 의하여 바야흐로 한 중대한 계단으로 진전하였다. 부분 부분으로 분산되었던 운동이 전선적 협동전선으로 조직된다. (중략) 근우회는 이와 같은 견지에서 사업을 전개하려 하는 것을 선언하나니 우리의 앞길이 여하히 험악할지라도 우리는 일천만 자매의 힘으로써 우리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여성은 벌써 약자가 아니다. 여성은 스스로 해방하는 날 세계가 해방될 것이다.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자.

 이 시기 여성 해방 운동을 외쳤던 이 여성들은 이중으로 비난을 받아내야 했다. 이들을 ‘신여성’이라 이름 붙이며 가정을 지키지 않는 비윤리적인 존재, 사치하는 여성으로 바라보며 배척하는 풍조가 있었다. 또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던 여성들은 ‘신여성’들이 전통을 무시하고 서구 문물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한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식민 치하에서 근대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 또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적 자유 사이의 좁은 영역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했다.

이런 모순과 압박 속에서도 계속해서 여성 운동은 이어져 1959년 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 1989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가 창립되었다. 

먼저 여협은 정치/경제/의료/스포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성 권리 증진에 이바지한 이들에게 ‘올해의 여성상’을 시상하며 여성들의 활약을 북돋는 역할을 했다. 남녀차별금지법을 제정한 한국 여성 최초 헌법학자 윤후정 전 이화여대 총장도 수상자 중 한 명이다. 이밖에도 전국여성대회를 꾸준히 여는 등 여성단체의 반경을 넓혀왔다.

여연은 비교적 진보적인 단체로 평가되는데, 9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활동 기반이 된 단체 연합이다. 1985년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첫 한국여성대회 주최를 계기로 21개 단체가 연합의 형태로 맺어졌으며, 현재까지도 한국여성민우회나 한국여성의전화 등 실천적인 페미니즘 단체들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모자보건법 개정을 발의한 남윤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연 상임대표를 지냈으며 가정폭력 방지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던 정춘숙 의원 역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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