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연애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연애관계

우리가 잘 연애할 수 있을까

유의미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한 사람과 지속해서 깊은 교류를 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와 함께 재즈 페스티벌에 가고 싶을 때 고민 없이 제안할 사람이 있는 게 좋다. 뜬금없이 어제 읽은 책의 감상을 말하고 싶고, 상대가 내가 오래전부터 그 작가를 좋아했다는 걸 아는 채로 들어주면 좋겠다. 일터에서 영혼을 갉아 먹힌 일을 얘기하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 어제도 그저께도 나랑 얘기했던 사람과 연속성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 새로 산 니트가 내게 잘 어울리는지 봐주고, 갑자기 시간이 맞으면 같이 밥을 먹고, 예쁜 핸드폰 케이스를 발견하면 사다 주고, 오늘따라 유난히 고양이가 귀여우면 사진 찍어서 보내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 게 조금 덜 외로울 것 같다.

그걸 연애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걸 연애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연애를 했다. 내가 타인과 맺고 싶은 관계의 모습이 있고,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비슷한 건 연애였다. 물론 연애에 딸려오는 것 중 원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감자튀김이 안 끌려도 햄버거를 세트메뉴로 시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단풍 구경하러 갈 때 제일 먼저 고려할 사이가 되자고, 오늘 택배로 뭐 받았는지 말해주는 사이는 어떠냐고 하나씩 합의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차라리 쉽게 ‘우리 연애하자.’하면 얼추 서로 원하고 생각하는 상이 비슷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비슷하지만 역시 똑같지는 않았다. 연애에 으레 따라오는 어디에서 무얼 했고 누구랑 뭘 할건지 모두 공유하고 심사하길 원하는 사생활 침해와 통제가 불편했고, 다정하지 않은 쪽이 변명하거나 노력해야 하는 점도 억울했다. 바쁜 일이 있더라도 연락을 하지 않으면 잘못하는 거고, 자주 만나지 못하면 미안해야 하며, 기념일을 챙겨야 하는 것도 싫었다.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면 식당에 자리가 더 많을 거고, 아무리 우리가 연애한 지 100일이나 1000일이 되었어도 휴일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연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외박을 하거나, 기념일에 일을 잡곤 했던 나는 연애가 순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화로 해결했으면 될 일인데, 말할 수 없는 일들과 미처 알지 못한 일들로 짧은 연애가 여러 번 그저 그렇게 끝났다. 짧게 끝나는 건 내가 원하는 관계와도 거리가 멀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 깊은 유대감을 지닌 단단한 관계를 갖고 싶었다.

연애를 잘하고 싶었다. 자꾸만 싸우고 서로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고, 오래오래 만나고 대화하고 아껴주며 지내고 싶었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으면 많이 듣고 많이 치면 되는데,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예습복습을 꾸준히 하면 되는데, 연애는 어떻게 하면 잘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책도 많이 찾아서 봤는데 나에게 맞지 않는 초점이 어긋난 조언뿐이었다. 남자의 생활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연락에 집착하고 투정 부리는 여자친구가 되지 말라는 내용은 성차별적이다. 게다가 동성연애를 잘하는 방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난 방향을 모른 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어떤 연애에서는 ‘연애다운’ 모든 걸 해보기도 했다. 어디냐고 빨리 집에 가라고 집착도 해보고, 왜 말도 없이 딴 여자랑 둘이 술 먹냐고 따져도 보고, 커플 사진도 찍고 맛집도 찾아다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연인이 집에 들어가든 말든 누구를 만나든 자기 자유인데 내가 왜 침해하고 있나 싶었고, ‘내 마음인데 무슨 상관이야!’ 하는 반박이라도 들으면 금세 수긍해버리곤 했다. 어쩐지 우리는 항상 다른 대본을 들고 연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올바른 대본에는 ‘그래도 빨리 집에 안 들어가면 걱정되잖아.’ 하며 달래는 대사가 있을 것 같은데, 내 입에서는 ‘그래, 연인이어도 타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지.’ 하는 말이 나왔다. 마음속으로 동의하지 않고는 흉내 내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연인의 생일에 꽃다발을 보내고, 커다란 곰 인형을 안겨주었다. 기념일에 반지를 선물하고 촛불에 둘러싸여 와인을 마시고 영상 편지를 띄웠다. 노래를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남들 하는 연애를 기를 쓰고 했다. 하다 보니 알게 되었는데, 그 연애 이벤트들도 사실 내 것이 아니었다. 꽃다발을 받고 반지를 받으면 페이스북에 올려 자랑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우팅 위험 때문에 그걸 못 했다. 서로 태그해서 ‘고마워! 너밖에 없어! 우리 영원하자!’하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가득 받아야 의미가 있는데,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랑하기 위해 저런 짓들을 하는 건데, 그사이에 과시하는 절차가 빠지니까 반쪽짜리 이벤트가 되었다. 우리의 연애에 다들 부러워할 만큼 멋진 일들이 일어날수록, 관계를 드러내지 못하는 게 서러웠다. 우리는 우리 관계를 인정하고 연인으로 대우해주는 모임에 자주 나가게 됐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자리를 싫어하는 나는 그 연애가 점점 더 힘들었다.

다른 연애를 해 보기도 했다

또 다른 연애에서는 그런 연애의 허상을 벗어 던지기로 했다. 그는 페미니즘을 배운 활동가였다. 연애가 이데올로기고, 성 역할이 허구적이라는 걸 직시하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연애의 기존 문법에 갇히지 않고 연애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려웠다. 전형적인 연애는 봤어도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은 연애’는 본적이 없으니 어떻게 하는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은’이라는 틀에 갇혀버린 것 같았다. 그 전에는 싫긴 해도 어떻게 하는 게 정답인지 정도는 알았는데, 그러지 말기로 하니까 그럼 뭘 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를 어떻게 대할지 망설여졌다. 오늘은 조금 더 오래 통화하고 싶어도 이게 바로 우리가 경계하기로 한 통념적 연애인 것 같고, 그를 위해 도시락을 싸주고 싶어도 그런 건 여성의 성 역할을 내면화한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 욕구를 구분해서 진정한 욕구는 따르고 사회에서 주입된 욕구는 버릴 만큼 현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구 뒤죽박죽이 된 마음을 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세상은 원래 모든 게 뒤섞여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순간에도 그에게 다정하게 굴어도 되는지 고민했다. 언제나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계속 이게 우리가 하기로 한 그 연애가 맞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는 때때로 세미나와 캠페인 같은 여러 활동으로 바빴고, 나는 그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하더라도 그걸 바라는 게 떳떳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어쩐지 억압을 따르지 않기로 할수록 더욱 그 다짐으로 인해 억압되었다. 가끔은 억누르던 마음이 튀어나와 ‘일이야, 나야?’하고 집착하는 여자친구가 되었다. 벨 훅스는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했는데, 점점 더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없었다. 에리히 프롬은 상대를 존재로서 사랑하라고 했는데, 나는 소유할 줄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잡히지 않는 그 사람을 자꾸 쫓아다니며 잡으려 했고,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나는 늘 외로웠다. 이것도 내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과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란 가능한 걸까?

어떻게 잘

지금 애인과 나는 무리하지 않는다는 점이 비슷하다. 연애를 잘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거였다. 우리의 연애에는 딱히 ‘연애스러운’ 요소들이 많이 없지만 대체로 괜찮은 날들을 보낸다. 특별히 애써서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관계는 잘 굴러간다. 우리 사이는 따뜻하고 다정하다. 서로 위해주고, 관심을 두고, 일상을 응원해줄 사람이 있고 난 이걸로 충분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다 갑자기 이것저것 함께하기 시작하면, 하나하나 서로 맞춰가는 게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어떤 사람과는 유난히 타협되지 않던 부분이 다른 사람과는 또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다. 그래서 같은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드는 에너지의 총량도 다르다. 역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실 사랑이 맞다 해도 너무 아프면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우리도 가끔은 우주의 저 끝에 서 있는 것 같다. 사소한 차이가 어느 날, 넘실대다 은하수만큼 멀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어떻게 잘 연애할 수 있을까 묻는다. 내가 점원에게 망설임 없이 필요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날이 안 올 거고, 네가 옷을 바닥에 팽개치지 않고 세탁기에 바로 집어넣는 날이 안 올 텐데, 우리는 평생 서로를 못 견디며 살까?

우리는 잘 맞는 운명의 단짝이 아니다. 조금 비슷하긴 해도 천생연분은 절대 아닐 거다. 안 맞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고, 어떻게 비틀어 끼워 맞춘 한 쌍이다. 나는 너의 어떤 점들이 지긋지긋하다. 그걸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고, 너그럽지 못한 내 성격을 탓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나는 너에게 유독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세상 사람들이 하면 상관없지만 네가 하면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간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건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지 못하지만, 네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내 세상은 무너진다.

신문 판매소 직원은 따뜻하게 대하면서, 사랑하는 클로이의 구두 취향을 용납할 수 없는 알랭 드 보통 소설의 주인공이 이해된다. 소설에서는 둘이 싸우지만, 그럴 에너지가 부족한 나는 문제를 삼키고 외면한다. 문제가 거기에 존재하지만 하나하나 규명해서 답을 찾지 않는다. 터지지 않아서 해결되지도 않은 갈등의 씨앗들을 늘 안고 살아간다. 사실 나는 우리가 상처받기 전에 어긋나는 부분들을 조율하고 어떻게 더 잘할지 생각해서 나아갈 목표를 수립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서로를 참아내며 살아야 하는 건 혼자가 아니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너는 꽤 무심하다. 흘러가는 대로 살 수 있는 너는 우리가 달라도 그러려니 하지지만, 생각대로 안 되더라도 삶이 흘러갈 방향을 다 정해둬야 안심되는 나에게 잠재적 갈등은 결국 갈등이나 다름없게 느껴진다.

어떻게 잘 연애할 수 있을까?

내가 묻는다. 너는 ‘우리 잘 연애하고 있잖아.’하며 웃는다. 아직도 나는 네가 세탁기에 넣지 않은 옷들이 거슬리는데, 너도 분명히 내가 지긋지긋한 부분이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좋은 관계는 외면할 수 있는 건 끝까지 외면하는 건지도 모른다. 갈등의 씨앗들은 수없이 싸우던 연애 초를 겪고도 지금까지 피어나지 않은 걸 보면 죽을 때까지 잠재돼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서로 다른 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숨어있는 문제까지 다 탈탈 털어내 싸우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그래서 우리 관계에 목표는 없다. 어떤 상태가 좋은 상태라고 정해두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게 되고, 가치를 하나씩 선별해나가다 소중한 걸 잃게 될 거다. 그렇게 우리는 표류하기로 정했다. 난 사실 ‘표류된’ 줄 알고 불안했는데, ‘표류하기로’ 결정하니까 조금 나아졌다. 게다가 어차피 인생은 표류였는데, 우리는 지금 함께 표류하고 있으니 조금 더 낫다. 이대로 오래오래 함께 표류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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