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을 때 턱을 당기기 싫은 자의 변

생각하다여성혐오

사진 찍을 때 턱을 당기기 싫은 자의 변

염문경

얼마 전에 사진을 찍었다.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의 프로필 촬영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순식간에 끝나서 어리둥절했다. 찍은 사진들을 대강 모니터로 체크하며 나는 머쓱해서 선수 치듯 말했다. “제가 원래 턱 당기란 말을 자주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짧은 촬영 중에도 나는 사진 작가님께 ‘예, 턱 쫌만 더 당기시고’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디터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뇨, 전 턱 든 것들이 더 좋은데요. 더 강해 보이고. 멋있네요. 잘 나왔다.”

그 한 마디가 내게 준 충격의 파장이 의외로 컸다는 것을, 그 분은 모를 것이다. 뭐 그냥 해준 말일 수도 있지만... 사진작가님께, 감독님께, 매니저님께 언제나 ‘너 턱 들면 얼굴 크고 못생겨 보인다, 턱 좀 당겨라’고 잔소리 잔소리를 들어왔던 내게 그 반응은 너무나 반갑고 상큼한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비글처럼 외치고 싶어졌다. 네, 사실은 저도 이 사진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거랑, 이것도! 전부 턱을 치켜든 사진들이었다. 사진 찍을 때 턱을 당겨야, 눈이 좀 더 커 보이고 얼굴이 보다 작아 보인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증명사진에서도 프로필사진에서도 그건 불변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찍힌 내 얼굴이 이상하게도 나는, 언제나 묘하게 별로였다. 나는 내가 턱을 든 사진들이 종종 더 괜찮아 보였다.

"쟤는 사진에서 맨날 턱을 들고 있더라. 너 그게 예쁜 줄 알아?”

나는 턱이 좀 길고, 주걱턱이랄 것까진 없지만 튀어나온 편이다. 그래서 평범하게 있어도 턱이 살짝 부각된다. 소심해빠진 실제 성격과 다르게 강한 인상을 주는 데는 굵직한 이목구비 뿐 아니라 이 턱도 한 몫 할 것이다. 내가 고개를 들면, 그나마 날렵하게 떨어지던 하관은 넓적하게 각이 진다. 상대적으로 이마가 뒤쪽으로 갔으니 눈은 더 작아지고 콧구멍과 입술이 부각될 것이며, 정색하면 거만해지고 웃으면 무방비해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고를 때면 나는 종종 턱을 든 사진을 선택한다. 그게 더 멋져 보이고 편안해 보이고, 무엇보다 뭔가를 위장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다. 보통 취업을 위한 증명사진도 ‘턱은 당기고 눈은 동그랗게, 서글서글한 미소로 위스키’ 하고 찍는 마당인데, 최대한 얼굴의 결점을 가리고 예뻐 보여야 하는 배우 프로필에서 사람들이 내게 더 더, 턱을 당기라고 요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의문이었다.

그게 진짜 예쁜가?

아니, 턱을 든 사진이 내 마음에 들었다는데도, 왜 여전히 턱을 당기라고 할까?

배우는 다른 사람이 예쁘게 보는 방식으로만 예뻐야 하는 걸까?

아니 그보다, 나 어차피 초미녀도 아닌데... 배우니까 어쨌든 이뻐야 하는 거냐?

턱을 쳐들면 기분이 조크든요

최근 누군가 내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는 쑥스러워하며 ‘여자 배역의 범위를 넓히는 배우’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젠 하도 많이 나오는 얘기라 다들 알 것이다. 아름다운 소녀, 엄마, 노파, 창녀. 현대로 오면 조금 늘어난 듯 하지만 사실 비슷하다. 예쁜 값 하느라 싸가지 없는 년, 예쁜데 착하기까지 한 그녀, 뚱뚱해서 인상적인 개성파 조연, 착한 엄마 나쁜 시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안다, 안다. 요새 안 그런 영화 드라마도 얼마나 많은데 내가 막 억울하게 싸잡고 있다는 거. 그래도 남자 배역에 비하면 택도 없이 제한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걸 깨부수긴 정말 쉽지 않은 거다. 심지어 작가가 그걸 깨부수고자 작정해도 그렇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일반적인 캐릭터 특성을 지나치게 벗어나는 작품은 실험영화나 패러디 영화가 될 순 있지만 감미로운 대중적 소구력을 잃는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그나마 일하는 엄마를, 게이를 주연급으로 내세우면서 큰 틀의 가부장적 로맨스는 유지한 채 점진적인 변화를 꾀한다.

안일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우겨봐도 아직 명백히 특이한 것을 당연한 것인 양 그려놓으면, 뭔가 편하고 재밌는 걸 보고 싶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의 ‘고스트 버스터즈’ 논란도 아마 거기서 비롯됐을 거다. 그 영화는 관습을 뒤집었다는 패러디성에서 웃음과 통쾌함의 대부분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세계를 환영하는 나 같은 관객의 마음은 사로잡았지만 그런 전복에 별 감흥 없는 대다수에겐 뻔하고 유치한 장난으로밖에 읽힐 수 없었다.

턱에 대한 고민이 쌩뚱맞게 고스트 버스터즈로까지 이어진 이유를 밝힐 때가 왔다. 자, <고스트 버스터즈> 인물 포스터를 찍는다고 생각해보자. 거기 나오는 네 여자가 굳이 ‘턱을 당기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야무지게 혹은 섹시하게 위스키 찰칵’, 사진 찍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뭔가 이상하다. 나만 그래? 그럼 다시, 가령 영화 <조선미녀삼총사>의 세 여자가 도발적인 조선 여전사의 인물포스터를 찍는다고 상상해보자. ‘턱 당기고, 날렵하면서도 섹시한 미소! 어 지원씨 지금 좋아 너무 이쁘다~ 그렇지!’ 그 광경, 어색하지 않다. 둘 다 여전사지만, 두 영화가 ‘여전사의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 판이한 차이가 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어디 골상학이라든지 모델학 교본 같은 데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나와 남들의 사진을 찍고 또 보면서 이해한 바를 토대로, 턱을 당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 정도 약은 팔 수 있을 것 같다.

“동그란 눈과 좁은 턱은 일단 갸름하고 인형 같은 얼굴이라는 보편적 미의 기준을 충족시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기본적으로 얼굴은 작아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
또 보세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떠 자연스럽게 올려다보는 듯한 눈빛, 어딘지 모르게 섹시하면서도 순종적이잖아요? 성형외과 광고의 모델 구도가 다 똑같은 덴 이유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예뻐 보이려면 턱을 당깁시다.”

뭐 말이 그렇단 거지, 턱을 치켜든 예쁜 화보도 물론 많다. 턱의 방향성 여부가 사진의 컨셉을 완전히 좌우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분명, 턱을 들고 내려다볼 때의 무심한 표정이나 당당한 도발에는 턱을 당긴 사진과는 좀 다른 뉘앙스가 있다. 그건 이를테면 군림하는 자의 여유, 상대를 신경 쓰지 않는 편안함, 무방비한 자신감이다. 수트를 입은 남자 배우의 화보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정서 말이다.

이건 결국 턱의 위치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피사체의 태도에 대한 얘기다. 귀여움이건 거만함이건, 화보마다 각각 필요한 분위기가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컨셉 없이 ‘일단 예쁜’ 사진을 찍고자 할 때, 이를테면 증명사진을 찍을 때나 일반적인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은 보통 턱을 들기보단 당길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우리의 대중적 감각에 있는 공식적인 ‘아름다움’이다. 갸름한 하관, 최대한으로 커다란 눈, 적당한 만큼만의 미소. 나는 지금까지 프로필을 찍으며 그 기준에서‘성공적인’ 사진을 몇 번 건졌다. 그러나 그 사진들은 아무리 봐도 나 같지가 않아서 도통 쓸 수가 없었다.

‘아빠가 전업주부’인 게 주제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아빠 캐릭터를 전업주부로 그린 드라마를 쓰기 어렵듯, 나 역시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건지기 위한 노력을 대뜸 멈출 수는 없다. 나이 어린 미남이 아니어도 개성 있는 남자 배우는 많지만 예쁘지 않아도 다양한 매력의 여자 배우는 여전히 적다는 현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목구비나 체형에서 아주 엄청난 특이성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역할에 ‘예쁨’이 필요 없을지라도 여자 배역은 미녀가 디폴트다. 미녀가 관객들에게 시각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인지, 뽑는 사람들의 호감이 캐스팅에 반영되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경향성이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어중간한 외모의 나는 ‘화끈하게 못생기거나 뚱뚱해지려는’ 노력보다는 아무튼 좀 더 예뻐지려는 노력을 하는 게 보통이다. 모두가 그것을 추천하고, 조언하고, 가끔씩 종용한다. 그냥 나 자신의 생겨먹음을 받아들인 채 배우로 선택받기란 쉽지 않다. 연기 연습을 아무리 했더라도 게으른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배우로서 ‘아름다움 관리’를 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까지 다른 사람에게 맞춰야만 하는 걸까? 내가 아이유보다 제니퍼 로렌스를 닮고 싶고, <조선미녀삼총사>가 아니라 <고스트 버스터즈>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도, 아무튼 일단 턱 당기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건가? 전신 프로필을 찍기 전에 가슴에 뽕 좀 더 넣으라는 조언은 카메라 보면서 턱 좀 최대한 당기라는 조언과 얼마나 다른 걸까 (실제로 둘 다 듣는다).

백번 양보해 턱이나 쳐든 사진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촌스럽다 치더라도, 분명 내가 선택한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괄시하며 끊임없이 자기 취향대로 조언할 자격은 도대체 누가 여기저기다 던져준 거냐. 그리고 가장 불만인 거. 

그들의 취향은 도대체 왜 아직도 대다수의 취향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정상성에 대한 취향과 상상력은 제각각이다. 대중매체의 창작자들은 그 중 자기가 생각하는 ‘주류의 취향’을 반영하기도 하고 창조하기도 하면서 드러내는 가장 큰 주체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자의 인식은 언제나 더 부지런해야 한다. 이야기를 만들거나 대사를 쓰는 자는 물론, 캐릭터를 연기하고 사진에 찍히는 자도 마찬가지다. 그건 책임이면서 동시에 자유다. 이걸 좋아해줄까, 눈치 보기를 접어두고 나의 세계를 실현하고 설득시킬 자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걸로 벌어먹고 살려는 입장에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중간하게 턱을 당기는 게 불편할 땐, 아예 고개를 쳐들어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의 미디어는 분명히, 취향의 폭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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