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줍는 시 16. 엄마, 이토록 긴 글을 쓰게 만드는

생각하다

다시 줍는 시 16. 엄마, 이토록 긴 글을 쓰게 만드는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엄마

엄마는 지금 내 나이에 나를 낳았다고 한다. 스물 여덟. 엄마는 전라북도 부안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평안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고 한다. 엄마는 고향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온 후 서울로 상경하였다. 서울 남대문 새벽 시장에서 일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남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나처럼 폭력적인 아빠를 가져본 적이 없고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거꾸로 나 역시 딸이라고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딸이기에 대학에 보내지 않는 부모를 만나본 적이 없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몇몇의 남자와 연애했지만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퐁당 빠져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또 사주팔자에 이른 나이에 남자를 만나면 위험하다고 나와, 엄마는 조심 또 조심했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를 중매로 만났고, 아빠가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기에 함께 먹고 살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아빠의 구애 끝에 엄마는 7살 많은 아빠와 결혼했다. 만난 지 두 달만의 결정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물으면 엄마는 결혼 전 친구들과 동거했을 때를 꼽는다. 이러한 단서들로 나는 엄마가 자기 정체성을 미처 발견하고 발전시키지 못한 퀴어가 아닐까 의심해왔다. 지금도 엄마는 동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참 많다.

엄마 덕분에 나는 세상에 나왔다. 엄마는 작은 꽃집에서 쉴 새 없이 일하며, 예정일보다 늦는 나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엄마는 먹고 살기 위해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연중무휴로 일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나를 기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내게 미안하다고 자주 말했다. 비 오는 날 학교에 데리러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다른 엄마들처럼 간식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가 그러하듯이 나는 한 손엔 즉석식품을 한 손엔 투니버스 채널을 끼고 살았다. 다행히도 학교에 다녀와 종일 학원을 뺑뺑이 돌고 조그만 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갈 때, 나는 씩씩했다. 빈 집 부엌에 혼자 앉아 해질녘을 보는 것이 나는 즐거웠다.

우리의 삶에는 불행한 일도 많았다. 집에 돈이 한창 없던 시절, 엄마와 아빠는 정말 죽어라 싸웠다. 아빠는 엄마를 때리거나 엄마에게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한 번은 엄마가 나와 동생을 데리고 바닷가 근처로 도망을 간 적도 있다. 그때 우연히 들어갔던 어시장 가운데의 식당 풍경은 아직도 선연하다. 또 어떤 시절 엄마는 낡은 아파트의 부서진 거리를 걸으며, 내게 절대 커서 결혼하지 말라고 돈 많이 벌어서 혼자 위풍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언제 시집 갈 거냐고 사람을 달달 볶지만 말이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며 남자와의 결혼을 거부하면 엄마는 제발 과거의 일은 잊어버리라고 호소한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다. 엄마를 사랑하고 아빠를 죽여버리고 싶은 여자아이의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이고 구질구질한 것처럼 느껴지니까. 나의 10대 때 목표는 오직 아빠를 닮지 않은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성찰, 검열하는 사람으로, 무엇이든 참고 견디며 책임지는 사람으로 자라나버렸다. 엄마를 아주 많이 닮은 모습으로 자라나버린 것이다. 나는 엄마의 우울과 신경증 아무도 모르게 오랜 시간 지켜내 온 고독까지도 닮았다.

닮았지만 다른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엄마는 다른 사람이다. 엄마는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서 모성애가 실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엄마는 본인이 그것을 생생히 경험해보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세상의 사랑을 분별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면, 엄마에게 나는 태어나 처음 경험해 본 사랑이다. 엄마는 평생 나를 위해 헌신했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는다. 엄마에게 평생 가장 잘한 일은 자식을 낳아 기른 일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무서워진다. 만약 나도 아이를 낳으면 내 존재를 모두 끌어다 바치게 되는 것 아닐까. 내가 배운 모성애는 헌신이니까.

얼마 전 나의 친한 친구 하나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다. 어쩌면 그녀는 아이를 혼자 기르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힘을 합쳐 미혼모 센터도 알아보고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나의 친구는 사는 게 너무 버거워서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죽음을 두고 살았다. 친구는 적어도 아이를 낳은 후에는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것은 모성애일까, 정말로 그런 것이 있어서 사랑의 힘을 발휘해 누군가의 삶을 바깥으로 끌어당기기도 하는 것일까. 나의 친구는 아름답고 강한 사람이다. 친구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아이와 살아가기 위하여 아이와 살아남기 위하여.

엄마는 요즘 하루 한 번 내 친구의 근황을 묻는다. 입원은 했는지 기분은 많이 나아졌는지. 엄마는 결의에 차서 말한다. 엄마가 된 사람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엄마가 된 사람은 아이에 의존하여 사는 일을 견딜 수 있다고. 우리 엄마도 나를 지키고 나에 의존하여 삶을 견뎠을까. 엄마에게 삶이 견뎌야 하는 그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쓰다. 모성애가 실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자에게 좋은 사랑일까. 모성애는 너무 가혹하여 여자를 힘들게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모성애는 책임감과 헌신으로 일구어진 너무 뜨거운 사랑 아닐까. 엄마는 그것을 쥐고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몸이 다 녹아버린 것은 아닐까.

일러스트 : 이민

처음 만난 타인

나에게 어린 시절은 보물 창고이자 되풀이되는 악몽과도 같다. 어쩌면 어린 시절은 우리 삶의 전반을 결정짓는 것일지도 몰라, 나는 친구들과 끔찍한 농담을 하며 하하호호 웃는다. 우리는 그것과 합치하는 삶을 위하여 혹은 그것에 반하는 삶을 위하여 모진 애를 쓴다. 누구든 나처럼 끝없이 스스로를 탐색하는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과 부모는 계속 들춰보고 싶은 근원일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엄마는 아주 특별한 의미다. 엄마가 있건 없건, 엄마를 사랑하건 사랑하지 않건. 나에게 엄마는 평생 동안 질문을 던지고 싶은 존재, 옆에 앉으면 가만히 빛이 쏟아지는 존재다. 내게 엄마는 처음 만난 사랑이자 처음 만난 타인이다.

오늘 핀치의 글에서는 조금 특별하게 근대 문학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김명순은 일제 강점기와 가부장주의, 문단의 남성 중심주의 하에서 한국 근대문학을 주도해갔던 여성 문학인이다. 당시 남성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김명순을 성적으로 방종한 신여성으로 그려내며 그녀를 모욕하고 조롱하며 문단에서 추방하고자 했다. 예컨대 작가 김동인의 <김연실전>은 김명순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문단의 공격과 생활고로 인해 김명순은 불우한 삶을 살다가 일본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김명순은 당대의 어떤 시인들보다 뛰어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 그녀의 작품들에는 스스로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세상의 억압에 대한 치열한 저항이 새겨져 있다. 작품 <재롱>은 고독하고 불안하며 고통스러운 삶에서, 김명순에게 어머니와 아이의 존재가 기쁨이자 광명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김명순은 그들에게 말주머니였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이야기가 없다/내 딸에게 매 저녁/말주머니를 털리어서”에서 우리는 김명순의 사랑과 기쁨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아마 김명순은 어머니와 아이에게 힘이 되는 말주머니로 살아가기 위하여 그리고 살아남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한 최선이 김명순이 삶을 견디게 하는 뿌리 깊은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엄마와 나와 내 친구와 친구의 아이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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