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줍는 시 24. "여자인간"

생각하다

다시 줍는 시 24. "여자인간"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든 것

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내가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인 것이 좋다. 앞으로도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인간 개인과 사회 구조에 저항하고, 여성들과 연대하고 노력하여 이 세계의 가부장제를 박살내고 말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퇴행적인 대학본부와 성폭력 가해자 교수, 문단 내 성폭력, 일상에서 마주하는 폭력적인 경험들까지.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가 나의 삶의 굴곡을 만들고, 결국은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든 것이다.

가끔은 너무 화가 난다.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싶지 않아. 나는 소수자이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나이고 싶다. 나는 그냥 사회에서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한국 사회에게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이곳의 여성혐오가 여성들이 동일한 삶의 궤적을 갖도록 만들고 폭력적인 경험을 갖도록 만들고, 무엇보다 여성들의 내면에 동일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새겨 넣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여성을 피해자로 만들고 여성들의 내면에 공포, 두려움, 고통, 슬픔, 서러움, 억울함, 피해의식을 새겨 넣었다. 

물론 내가 그러한 내면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고통받는 다른 여성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나아가 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폭력의 피해자만이 폭력의 상처와 피해에 대해 평생 골몰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짜 너무나도 화가 난다.

작년에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을 읽고 좋았던 이유는, 이 작품이 한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공통의 폭력적 경험을 부여하고 결국엔 여성들을 미쳐버리도록 만든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 김지영이 출산 후 육아 과정에서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증세를 얻게 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후 작품은 김지영이 태어날 때부터 30대가 될 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녀의 생애사를 서술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작품은 여성혐오가 사회 문화적 체제이자 구조로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김지영의 삶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쳐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김지영 주변 여성들의 삶 역시 그려내면서, 여성혐오라는 체제, 구조가 모든 여성들의 삶에 공통의 경험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 미만으로
취급당하는 감각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조남주의 소설이 한국 여성의 한스러운 삶의 굴곡을 서사로 보여준다면, 신해욱의 시는 인간이 한사람의 몫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갈 때 느끼게 되는 감각을 보여준다. 신해욱은 이 세계가 자신에게 날짜와 요일을 배당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해욱의 시는 살 만한 날들을 배당받지 못한 인간이 자신의 생일을 조금 빌려와 적어 내려가는 일기다. 신해욱은 이 세계에서 숨 쉬기 어려워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공들여 숨을 쉬고 살아가보려 한다. 

“날짜와 요일을 배당받지 못한 날에/생일을 조금 빌려/일기를 쓰게 된 기분입니다./산소가 많이 부족한데/저는 공들여 숨을 쉬기나 한 건지/모르겠습니다.”(「시인의 말」 중)

신해욱에게 한 세계에서 사람 취급을 받는 존재는 얼굴과 정돈된 눈코입을 가진 존재이다. 신해욱은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에만 자신의 눈코입이 제자리로 돌아옴을 느낀다. 생일을 제외하고는 늘 제멋대로 존재하던 눈코입이었기에, 신해욱은 생일날 제자리로 돌아온 자신의 눈코입을 어색해한다.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나는 내가 되어가고/나는 나를/좋아하고 싶어지지만/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축, 생일」) 

하나의 얼굴과 정돈된 눈코입으로 숨을 쉬는 일이 도리어 어색하다고 느끼는 날, 이런 상태로 지금껏 숨을 쉬고 살아온 것이 그리고 앞으로 숨을 쉬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끔찍하게만 여겨진다. 

“나는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간다.//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축, 생일」)

나는 사람인데

생각해보면 하나의 세계에서 누군가는 사람 취급을 받고 1인분의 몫을 갖고, 누군가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 하고 1인분의 몫을 갖지 못 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신해욱은 이 세계가 공평하지 않으며 자신은 제대로 된 몫을 받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앞으로는 이름을 나눠 갖기로 하자./아주 공평하게.//지금까지의 시간은/너무 이기적이고 외로웠어.//우리는 두 개의 눈과/두 개의 귀와/수많은 머리칼이 있지만//나의 몫은/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손금은 제멋대로 흐르다가/제멋대로 사라지고”(「따로 또 같이」) 

그리고는 물어본다. 왜 이 세계는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여기지 않는 것일까, 왜 이곳에서는 사람이 사람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일까.

 “2.나는 사람이다//나의 웃음과 함께/시간이 분해되고 있다./그런데 왜 나는 나로/사람은 사람으로/환원될 수 없는 것일까.”(「레일로드」)

신해욱은 한 번에 한 사람으로 환원되고 싶어한다. 한 번에 한 사람이 되는 일은 충분히 좋은 일이요, 은총이 가득한 일이기 때문이다. 

“1.한 번에 한 사람이 된다는 건 충분히 좋은 일//매일 다른 눈을 뜬다.//아침은 어김없이 오고//뜨고 싶은 눈을 뜬 날엔/은총이 가득하다.”(「눈 이야기」) 

그러나 신해욱은 매번 약간의 사람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건 영 슬픈 일이고 나의 엄마를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약간의 사람은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수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없다. 

“3.부탁이 있다//한 개의 눈을 미리 뜨고/약간의 사람이 되는 건 옳지 않은 일./엄마는 슬퍼서 눈물을 흘리겠지만/나는 이제 그만/맑은 액체를 닦아낼 수가 없지//함께 흘릴 수도 없지.”(「눈 이야기」)

약간의 사람

슬퍼할 수도, 슬픔을 위로할 수도 없는 약간의 사람. 약간의 사람은 얼굴이 없음을 느끼며 살아간다. 약간의 사람은 자신이 얼굴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터무니없이 부끄러워하고 풀이 죽고, 병들어간다. 

“한쪽 눈에 하얀 안대를 하고/하얀 마스크를 썼다.//쥐에게도 개에게도 얼굴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나는 터무니없이 부끄러워지고/풀이 죽는다.//토끼의 목소리를 들었다./나는 알비노야. 자네는?//제발 가라. 한쪽 눈을/강제로 감았다.”(「생물성」) 

왜 나는 이 세계에서 얼굴을 부여받지 못한 걸까. 이 세계의 폭력성에, 그로 인한 나의 얼굴 없음에, 아무리 슬퍼해도 그 슬픔은 매번 너무나도 강렬하다. 얼굴 없음을 숨겨보고, 얼굴에 제멋대로인 눈코입을 숨겨봐도, 얼굴이 없는 불행은 내게 그대로 다가온다. 

“나는 단련되어가고 있었으나/그것은 상상 불가능한 표정이었다//여분의 마스크와 안대를/주머니에 넣었다.//얼굴이 없는 불행을 견디기엔/나는 너무 나약했다.”(「생물성」)

신해욱은 첫 번째 시집에서 폭력적인 세계로 인해 지워져가고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이야기했고, 두 번째 시집에서 폭력적인 세계로 인해 1인분의 몫을 부여받지 못하고 얼굴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신해욱의 존재들이 세계의 폭력성에 어리둥절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면, 세 번째 시집에서 신해욱의 존재들은 오랫동안 날카롭게 갈고 있었던 송곳니를 드러낸다. ‘여자’라는 단어에 ‘사람’이라는 단어를 붙인 제목, ‘여자사람’은 여자라는 단어가 사람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여자는 사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연히, 화가 나지 않겠는가. 

“알아? 나는 여자인간이니까/생리를 한다.” 이런 식이면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다. “마른 빨래에 입과 손을 닦고/잠깐만.//(꺼져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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