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고발 3. 시가 스타트업

생각하다결혼과 비혼

결혼고발 3. 시가 스타트업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김장 스타트업?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으레 반복되는 시모의 말이 있다. “김장을 좀 해야 할 텐데, 다들 나보고 날라리 시어머니래.” 시모는 평생 김장을 해본 적이 없다. 수십 년 넘게 할 필요 없었던 김장이 아들 결혼을 기점으로 시작해야 하는 무언가가 된다.

다행인 건 시모는 내게 같이 김장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위 말이 반복되는 걸 보면, 김장을 ‘시모의 역할’로 여기시는 것 같다. (나는 시모가 김장에 관한 의무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러나 내가 정형화된 며느리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모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걸 시모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모는 내게 줄 만한 부담과 아닌 부담을 구분하는데, 김장은 아닌 쪽이다. 만약 시모의 기준이 달랐다면, 나는 분명 김장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난 언제까지 시부모의 의중에 내 삶의 평온함 여부를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

시가에서 자꾸만 무언가를 시작한다

제사, 명절, 김장 등 전통적인 가정 행사에서 비교적 자유롭던 집안도 며느리가 ‘들어오’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지금껏 없던 전통 행사에 점차 시동이 걸린다. “우리 집은 제사 안 지내.”라는 애인의 말에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이러한 현상을 ‘시가 스타트업’, 혹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명절 스타트업’, ‘제사 스타트업’ 등으로 부른다.

이와 같은 가부장제적 행사들은 여성을 착취해야만 굴러갈 수 있다. 그런데 며느리가 생기자, 구시대적인 풍습이 부활하는 현상. 이는 며느리가 여전히 착취 당하는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혼 제도는 진보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음을 이 스타트업이 시사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시가 스타트업의 기저를 추측해본다. 며느리라는 무료 노동력이 생겼으니 우리도 남들 하는 것 부럽지 않게 해보자, 혹은 며느리 보기에 그럴듯하게 번듯한 집안처럼 체면 좀 차려보자.게다가 며느리를 부림으로써 시가의 권력을 확인하고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시부모 생일에 며느리가 직접 끓인 미역국으로 생일상 차리기를 기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시부모는 며느리의 미역국을 애정의 표현으로서 원하는 게 아니다. 자식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생일상 스타트업’은 그저 노예의 임무이자 복종을 나타낼 뿐이다.

명절도 스타트업

5년 넘게 연애하는 동안 들은 바로, 남편의 집안 행사는 없었다. 남편은 명절이 되면 여유롭게 부모와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음식노동이나 감정노동과 관련 없이 보고 싶은 친척-주로 외가 쪽-과 편안하고 단출하게 만난다고 했다. 거창한 차례상도, 화려한 음식도 없이 정다운 사람만 있는 남편 집안의 명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일 년에 두 번씩 친가 쪽 친척들을 거나하게 대접하면서 명절에 외가 쪽 친척들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는 남편 집안이 천국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결혼 후 맞은 첫 명절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시부가 남편의 큰집, 그러니까 당신의 큰형댁에 다녀오자고 하셨다. 평소에도 차로 7시간쯤 걸리는, 명절에는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는 곳, 가는 길이 멀고 고단해서 시부모도 소원했던 곳이었다. 남편 집안의 기존 명절 패턴과 전혀 달랐다. 첫 명절이니까 남편 친척들에게도 인사드리는 게 ‘도리’일 수 있겠으나, 시모의 가족들은 왜 찾아뵙지 않는지, 나의 할머니를 비롯한 내 친척들을 만나는 일정은 왜 고려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 집안의 명절이 새롭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가장의 권위를 세우는 일

시가 스타트업. 며느리가 들어오고 나서야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제사로 표현해야 한다는 신념이 갑자기 생겼을 리 없다. 갈비찜, 생선전 따위의 명절 음식을 갑자기 좋아하게 되지도, 겨울철에 대량의 김치를 저장해놓고 먹어야 할 필요성이 커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스타트업은 내용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형식적 필요에 의한 것이다.

바로 가장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남성의 집에 남성 혈연을 중심으로 모이고, 이에 부수적으로 묶인 여성들이 남성들을 위해 노동한다. 많은 수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수록, 많은 수의 친척이 명절에 모일수록 남성은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한다. 부엌은 여자들로 북적이고, 방마다 아이들이 모여 놀고, 거실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이 차려낸 음식과 술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어쩌면 이 나라 모든 가부장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권위가 세워지던 시대는 지났다고 믿고 싶다. 제사를 간편하게 지내거나 없앤다고 하여 떨어지는 권위라면 애초에 그 권위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명절에 본인의 아내, 딸, 며느리 등 집안 여자들을 착취하여 음식을 받아먹는 게 그들이 말하는 권위라면 그 권위는 떨어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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